세상은 빠르게 바뀝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꼭 일해보고 싶은 IT기업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HP를 꼽았습니다. 이들 사무실은 업무의 집중력, 프라이버시, 보안 등을 위해 직원들에게 방을 제공했습니다. 내 공간이 보장되는 개별 사무실이 운영되는 것이지요.

이 사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IT기업의 ‘오픈마인드’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회사는 직급보다 근속 기간에 따라 더 큰 방을 지급하며 오래 근무한 직원들을 대우하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땅이 비좁은 우리나라는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더 높은 파티션을 세우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지요. 많이 가려진 책상일수록 높은 사람의 자리라고 보면 거의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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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이상 이런 업무 공간이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활짝 열고 있지요. 파티션, 개인 공간 문화가 공공연히 깨지기 시작한 건 구글 때문이 아닐까요? 구글에는 내 자리도 있지만, 꼭 내 자리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원하는 공간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파티션도 없는 개방된 공간입니다. 앉은 건지 누운 건지 모를 이상한 자세로 사람들은 노트북을 하나씩 끼고 일하지요. 누가 지나가든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일이 잘 안 되면 탁구도 치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서 짧은 낮잠도 잡니다. 밥 먹으러, 차 마시러 회사 밖으로 나갈 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 모든 걸 처리하면 시간 낭비도 적고 직원들끼리 이야기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누가 보면 여기가 회사인지 놀러오는 곳인지 헷갈릴 지도 모르지만, 구글의 업무 효율은 상당히 높습니다.

어느 새 구글의 이런 업무 환경이 직원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쉽게 하고 팀원, 더 나아가 전체 직원간의 유대관계를 높인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구글이 많은 수익을 내고 성공한 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런 기업 문화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 탁 트인 공간이 억지로라도 직원들끼리 뭐가 됐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토대가 됐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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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대부분 사무실이 탁 트여 있습니다. 자기 자리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회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과 업무 성과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해서 보여주기라도 하듯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듣자하니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은 아예 큰 건물에 화장실을 1개만 두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하루에 서너번은 화장실을 오가면서 직원들도 보고, 화장실에서 마주치기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 정도로 현재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중요시하는 듯합니다.

에버노트의 개방형 사무실도 유명하지요. 에버노트는 건물의 5층과 6층을 사무공간으로 쓰는데, 이 두 층 사이를 뚫고 큰 계단을 두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위·아래층으로 나뉘어 있지만 이 계단으로 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실제 느낌도 아래층으로 내려간다는 느낌은 거의 없고 계단을 두고 두 층이 물리적인 것 뿐 아니라 느낌상으로도 하나의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거쳐 아래층으로 가는 것과는 시간적으로도, 느낌으로도 달랐습니다. 그 계단은 직원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신제품을 발표할 때 서로 자축하는 공간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물론 책상에도 파티션 하나 없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외부인이 지나다녀도, 심지어 사무실 사진을 찍어도 별로 개의치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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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알토에 있는 플립보드 사무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이 100여명에 이르고 사업 규모도 작지 않은데 코앞에 와서도 이게 플립보드 건물인지 모를 정도로 외관을 소박하게 꾸며놨습니다. 내부는 마찬가지로 방이나 파티션 없이 탁 트여 있습니다. 회의실도, 사장실도 없습니다. CEO는 이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책상을 씁니다. 자리마다 서서도 일할 수 있도록 책상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장치도 눈에 띕니다.

회의는 그냥 자리에서 합니다. 서서 좀 이야기하다가 길어질 것 같으면 의자를 가져오고, 더 길어질 것 같으면 사무실 한쪽에 있는 소파로 자리를 옮깁니다. 주변 사람들도 필요하면 의자를 당겨 앉아 회의에 참여합니다. 이야기는 언제고 부담없이 할 수 있고 회의는 간결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사무실, 엄청 어수선한데 가만히 보면 아주 활기차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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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들에게 업무 공간을 제공하는 액셀러레이터인 네스트GSV의 업무 공간도 그야말로 탁 트여 있습니다. 여기는 여러 작은 회사들이 섞여서 업무하는 공간인데 최소한의 보안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관계자의 이야기는 스타트업끼리도 서로간에 의견을 나누고 뜻이 맞으면 협업할 수도 있도록 활짝 열려 있다고 합니다. 보안이 필요하다면 별도의 임시 공간을 제공해 그 안에서 업무를 볼 수도 있답니다.

또 하나 공통적인 것은 파티 문화입니다. 구글의 TGIF는 유명하죠. 전 직원이 회사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고, 회사도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단순 불만 접수 창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집니다. 제품에 대해 예민한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구글은 특별히 보안에 대해 강요하진 않습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움직이라는 큼직한 메시지 하나만 줄 뿐입니다.

이건 제가 찾아갔던 플립보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요일 오후 4시면 전직원이 사무실에서 간단한 맥주 파티를 하면서 업무를 되돌아봅니다. 5시 이후에는 친구나 가족을 불러도 됩니다. 보안은 억지로 지키려고 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왜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기업 공통의 목표를 확실히 지워줄 수 있다면 오히려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는 편이 좋다는 건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적인 차이도 영향을 끼치겠지요. 출퇴근에 목매지 않고 최대한 업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문화와 시스템이 갖춰지되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따르는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쫒겨나는 것이 미국 기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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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회사들도 서서히 벽을 허물고 있긴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얼마 전 스마트워크 환경을 갖춘 새 사무실로 이사했습니다. 예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365 담당자와 인터뷰에서 “스마트워크 솔루션들 자체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나온 경험들을 서비스로 담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이사한 사무실에서는 주어진 자기 자리가 거의 없어서 일이 잘 되는 자리를 찾아서 일찍 출근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이 사무실은 단순히 좋은 자리를 맡는다는 의미보다도 하루 종일 업무를 하면서 혼자 PC만 들여다보는 것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의사 결정을 하고, 협업하는 환경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업무에 효율을 높여준다는 것이지요.

스마트워크가 열풍입니다.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강조합니다. 시스템이나 솔루션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식상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진짜 필요한 건 기업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그 위에는 회사와 직원 사이의 신뢰가 있었습니다. 신뢰는 믿으라고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주 서서히, 그리고 단단해지는 것이겠지요. 그 이후에는 사실 어떤 스마트워크 솔루션이나 공간을 적용해도 성과가 잘 나올 겁니다. 스마트워크라는 말에 솔깃한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일하는 게 스마트워크가 아니라는 뻔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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