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와 이용자가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정당하게 쓴 것인지를 두고 싸웠다. 그 결과, 저작권자가 이용자에게 합의금을 내기로 했다. 거꾸로가 아니다.

이 소송은 미국의 이용자와 호주의 음반사 사이에서 벌어졌다. 소송을 건 쪽은 이용자인 로렌스 레식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고, 소송을 당한 곳은 리버레이션뮤직이다. 리버레이션뮤직은 레식 교수가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내려버렸는데, 레식 교수는 이 행동이 저작권을 남용한 일이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행사하는 걸 이용자가 맞선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레식 교수는 2010년 한국에 왔다. 그가 기틀을 다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란 단체의 한국 사단법인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몇 가지 조건을 지키면 모든 사람이 저작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보급하는 단체다. 레식 교수는 CC코리아가 연 행사에서 '개방'을 주제로 40분 남짓 강연을 했다. 강연 내용은 유튜브에 올렸다.

유튜브에 강연 영상이 올라오고 3년이 지났을 무렵, 리버레이션뮤직은 유튜브가 저작권자를 위해 마련한 장치를 이용해 이 동영상을 내렸다. 유튜브가 이 동영상에 리버레이션뮤직이 발매한 밴드 '피닉스'의 '리츠토매니아'라는 노래가 포함됐다는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

강연 영상에 리츠토매니아가 흘러나온 건 사실이다.

레식 교수는 강연 자료를 만들면서 리츠토매니아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강연 중 보고, 듣고, 읽기만 하는 콘텐츠가 있는가 하면, 이용자가 읽고 수정하는 콘텐츠가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용자가 만든 리츠토매니아 뮤직비디오를 4편 틀었다. 사무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암스테르담 등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사용자가 만든 뮤직비디오였다. 2010년 리츠토매니아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이용자의 손에서 각양각색 버전으로 재탄생한 것과 비슷했다.


▲로렌스 레식 교수가 2010년 한국에서 한 '개방' 강연 동영상 보기


레식 교수가 이용자 뮤직비디오를 보여준 시간은 아주 짧았다. 한 편당 1분이 채 안 됐다.

리버레이션뮤직은 이 강연을 보지도 않고, 피닉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영상을 유튜브에서 내렸다.

레식 교수는 2010년 6월30일 유튜브에서 강연 영상이 내려가자, 유튜브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러자 리버레이션뮤직은 유튜브에 해당 영상이 미국의 저작권법을 침해하였으니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유튜브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레식 교수의 영상을 다시 차단하면서 '이런 일을 반복해 벌이면 유튜브 계정을 삭제한다'고 통보했다. 또 한 번 레식 교수는 유튜브에 공정이용에 해당하니 복원하라고 이의신청을 했다.(레식 교수와 리버레이션 뮤직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은 소장을 참고하자)

공정이용은 보도나 연구, 교육 목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할 때를 말한다. 원래 저작물을 쓰려면 저작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정당한 대가를 내야 하지만, 공정이용일 때에는 이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일이 복잡해지자, 리버레이션뮤직은 레식 교수에게 3일 내로 유튜브에 공정이용이라며 이의신청한 걸 철회하지 않으면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소송을 건 쪽은 레식 교수였다. 리버레이션뮤직이 횡포를 부린다는 생각에서였다. 공정이용조차 막는 것은 저작권을 남용하는 일이라며 2013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반 년이 지나고, 2014년 2월 리버레이션뮤직은 레식 교수와 합의했다. 레식 교수가 올린 동영상이 미국과 호주 모두에서 공정이용에 해당한다는 걸 받아들인 것이다. 합의금은 리버레이션 뮤직이 레식 교수에게 내기로 했다. 그동안 레식 교수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합의금이다.

리버레이션뮤직은 합의금을 내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앞으로 리버레이션뮤직은 유튜브에서 영상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영상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공정이용인지 여부를 검토하기 전에 영상을 내리지 않겠다고도 했다. 또, 저작권을 행사할 때 이번처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한도를 두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소송에서 드러난 사실이 하나 있다. 리버레이션뮤직은 유튜브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영상이 올라오지 않는지 살피는 직원을 단 1명만 두었다.이 직원은 문제의 영상을 보지도 않고 유튜브에서 내렸다. 심지어 이 직원은 법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

레식 교수는 소송이 끝나고 "저작권법은 너무나 자주 합법적인 표현을 막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2009년 자녀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따라부르는 모습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 영상이라고 내려간 일이 있다. 이 이용자도 레식 교수처럼 저작권자에게 소송을 제기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레식 교수는 합의금을 미국 전자프론티어재단(EFF)에 기부한다. EFF는 이 기부금을 오픈액세스 활동에 쓸 예정이다.

2010년 서울에서 강연하는 로렌스 레식 교수
▲ 2010년 서울에서 강연하는 로렌스 레식 교수


▲문제의 동영상으로 2010년 CC코리아 행사에서 강연 중인 로렌스 레식 교수


(CCKorea, CC-BY http://www.flickr.com/photos/wowcckorea/4696242491/sizes/o/in/set-721576241416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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