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황창규 회장이 취임 5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니지만, 전략 발표와 경영 전반을 소개하는 자리는 처음 마련된 것입니다.

황창규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융합형 기가 시대 선도와 5대 미래 융합서비스 육성, 고객 최우선 경영을 통해 1등 KT와 기가토피아를 실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네트워크를 탄탄히 하고 사람과 사물이 인프라로 연결되는 융합 서비스를 갖춰나가겠다는 것이 ‘기가토피아’라는 메시지에 담긴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KT는 초고속 인터넷인 ‘엔토피아’부터 ‘유토피아’의 이미지를 즐겨쓰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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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회장이 가장 힘을 실은 것은 ‘5대 미래 융합 서비스 육성’입니다. KT가 꼽은 5가지는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등입니다. KT는 이 시장이 2017년에는 119조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사실 이 사업들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닙니다. KT가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올해 초 소비자가전쇼(CES)나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발표된 내용들이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그리드 사업이나 클라우드, UHDTV, 사물인터넷 등을 처음 듣는 건 아닐 겁니다. 통신사들의 고민이기도 하지요. 통신망으로 차별점을 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보니, 망 위에서 어떤 서비스와 인프라를 제공할지에 대한 정비가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묶어 부가가치를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황창규 회장은 여전히 망 자체에 대해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망 위에서 일어나는 기본 서비스들이 배제되진 않았지요. 결국 빠른 인터넷으로 방송과 음악 서비스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모양입니다.

“그 동안 통신 시장은 포화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아닙니다. 여전히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차별된 속도의 데이터 서비스 위에서 KT와 계열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들을 발굴하는 것으로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KT는 일단 인터넷 망 고도화를 위해 3년간 4조5천억원의 유·무선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기존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인터넷’이 핵심이 되겠네요. LTE와 무선랜을 묶는 이종망 기술이나 구리선 기반 초고속 전송 기술로 기존 망들도 3배 가량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망 위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융합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입니다. 이건 기존 KT 기조와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KT만의 이야기도 아니지요. 결국 망의 상향평준화 다음 단계는 빠른 망에서 뭘 할 것이냐, 어떤 가치를 줄 것이냐입니다. 그 단골 메뉴가 사물인터넷이고, 고화질 영상입니다. 이런 서비스들은 결국 기존 OTT 사업자들의 진입을 막거나 혹은 충돌을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습니다. 황창규 회장이 FCC의 급행 인터넷 회선에 대한 즉답을 미룬 것도 그 걱정을 키우긴 했습니다.

기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전임 CEO의 흔적을 얼마나 살리고 덮을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석채 회장에 대한 잡음이 상반기 내내 KT를 괴롭혔기 때문이겠지요. 황창규 회장은 딱딱하지도 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 등 의외로 여유로웠습니다.

“KT가 그 동안 잘 하고 있던 부분을 찾아내고 소통이 잘 되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주 목표입니다. 승계해야 할 것들, 가꿔야 할 것들을 찾아내 빛이 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올레라는 브랜드 역시 인지도가 90%를 넘을 만큼 매우 긍정적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겁니다.”

최근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KT미디어허브와 KT스카이라이프의 합병에 대해서는 “KT를 중심에 두고 각각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당장의 합병설을 일축했습니다. 외부 인사 영입에 대해서도 “주요 부문장 9명이 모두 KT 출신”이라며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인사를 할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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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_hwang_05

결론적으로 이 간담회에서 KT의 전략이나 큰 흐름에 대해서는 기대했던 것만큼 파격적인 변화나 움직임은 엿보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기사를 쓰기도 곤란할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건지지도 못했습니다. 이미 KT는 몇 년 전부터 굵직한 전략이 섰고, 그에 따른 준비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정책으로 분위기를 흔들 이유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싱겁다면 싱거운 발표 내용이긴 했지만, 사업 차별화나 전략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다시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황창규 회장의 능숙한 응대 방식이었습니다. 삼성전자 시절을 겪지 못한 신참 기자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에 “잘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황창규 회장은 발표든 질문이든 시종일관 여유로운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곤란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웃음으로 잘 넘어갔고, 그렇다고 질문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지나서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오히려 먼저 나서서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 부문장들을 소개할 때는 한 명씩 직접 소개하기도 했고, 내내 여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았습니다. 구조조정이나 개인정보유출, 매출 부진 등 안팎으로 기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리더십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몇몇 부문장들, 그리고 직원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자간담회 한 번으로 한 경영자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위기라면 위기에 처해 있는 KT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은 엿보였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진흙탕이 되곤 하는 통신시장에도 변화의 에너지를 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어떻게 보면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상처 투성이인 기업의 신임 CEO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해봅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이런 인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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