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코딩한다? 조만간 자동차 제작을 설명하는 문장의 동사가 바뀔지도 모른다. 약간의 과장을 섞는다면 말이다. 1886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 자동차 산업의 혁명적인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130년 내연기관 자동차의 역사는 곧 종언을 고할지도 모른다. 전기 모터로 무장한 소프트웨어화 된 디지털 자동차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다.

테슬라모터스가 선두에 섰다. 테슬라모터스는 자동차를 코딩한다. 대부분의 차량 제어가 소프트웨어에 의해 이뤄진다. 서비스로서 자동차(Vehicle as a Service)라는 표현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비유한다. 테슬라 전기차는 커다란 스마트폰 같다고. 그만큼 테슬라 전기차는 소프트웨어 의존도가 높다. 그렇다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이 감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적 가치는 공동창업자의 전공으로 확인된다. 공동창업자들은 자동차 제작 경험이 없는 컴퓨터 관련 전공자들이다. 첫 CEO이자 공동 창업자였던 마틴 에버하드는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마크 타페닝은 컴퓨터과학을 공부했다. 투자자로 참여했던 일론 머스크도 자동차 제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14살에 전기 골프 카트를 발명했던 ‘천재’ JB 스타라우벨의 경험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테슬라 전기차가 작동하는 방식

▲  테슬라 모델 S(왼쪽)와 사이드미러가 없는 모델 X(출처 : 테슬라 홈페이지)
▲ 테슬라 모델 S(왼쪽)와 사이드미러가 없는 모델 X(출처 : 테슬라 홈페이지)

현재까지 테슬라의 주력 차종은 모델 S다. 지난 10월 SUV 전기차 모델 X가 공개됐지만 아직 정식으로 시판되지 않았다. 모델 S는 60, 85, P85D 3가지 브랜드로 구성돼 있다. 특히 가장 최근 출시된 P85D는 85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최상급 모델로 가격이 10만달러에 이른다. 이전 모델과 달리 앞뒤 2개의 모터로 주행한다.

모델 S에는 17인치 터치스크린이 장착돼 있다. 테슬라의 전체 작동을 관할하는 차량 내 관제센터라 할 수 있다.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기술은 이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속 메뉴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터치스크린 속 메뉴는 인포테인먼트와 편의 장치 2가지를 영역으로 나뉜다. 미디어, 내비게이션, 캘린더, 에너지, 웹, 카메라, 전화 등 7개 메뉴는 인포테인먼트를, 스크린 하단에 배치된 콘트롤 메뉴는 주요 편의 장치 조작을 담당한다.

콘트롤 메뉴에서는 터치 한 번으로 썬루프를 여닫고 위치에 따라 자동으로 서스펜션 높낮이를 조작하며 냉·난방 장치를 설정할 수 있다. 핸드브레이크(parking brake)도 스크린 속 버튼으로 대체했다. 테슬라 전용 스마트폰앱을 이용하면 원격으로 시동을 걸 수 있고 문을 여닫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차량 충전을 통제할 수 있고 현재 주차된 위치도 확인해볼 수 있다. 겨울철 출근하기 전 미리 차량 내 온도를 설정해놓는 것도 어렵지 않다.

17인 터치스크린의 홈메뉴는 일종의 앱스토어다. 테슬라가 제공하는 7개 애플리케이션에 접근해 내비게이션을 열거나 웹브라우저를 실시간으로 실행할 수 있다. 펌웨어 6.0부터는 캘린더 동기화 기능을 제공한다. 사용자가 이용하는 캘린더에 목적지를 설정해두면 내비게이션이 자동으로 안내해준다.

테슬라 전기차는 무선 인터넷에 상시적으로 접속돼 있는 커넥티드 자동차다. 미국에선 AT&T 3G 무선망을 활용한다. 스마트폰처럼 SIM 카드가 자동차 내에 심어져 있다. 가끔 인터넷이 끊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접속이 여의치 않아도 운전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테슬라 움직이는 펌웨어 소프트웨어

▲  테슬라 펌웨어 6.0으로 업그레이 된 터치스크린 화면. (화면 캡처)
▲ 테슬라 펌웨어 6.0으로 업그레이 된 터치스크린 화면. (화면 캡처)

테슬라 소프트웨어 기술의 핵심은 펌웨어다. 2012년 테슬라 모델 S 구매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돼 있다.

“당신은 역공정이나 분해, 역컴파일, 무단으로 테슬라 차량에 손대는 행위 등을 하거나 시도해서는 안된다. 또한 제3자에게도 이 같은 행위를 허락해서는 안되며...”

▲  2012년 테슬라 모델 S, 소비자 구매 약관.
▲ 2012년 테슬라 모델 S, 소비자 구매 약관.

소비자 구매 관련 약관은 테슬라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약관에 명시된 역공정, 역컴파일 등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약관은 테슬라에 대한 해킹을 시도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펌웨어 소프트웨어가 테슬라의 거의 모든 기능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자동차를 접근하는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테슬라 펌웨어 소프트웨어는 현재 버전 6.0까지 출시됐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처럼 OS는 버튼 한번이면 업그레이드 된다. 지난 9월 배포된 펌웨어 6.0는 흥미로운 기능들을 지원한다. 예를 들면 ▲캘린더 기능 ▲위치 기반 에어 서스팬션 기능 ▲교통량을 고려한 내비게이션 기능 ▲스마트폰 시동 걸기 기능 등이다.

테슬라의 펌웨어는 파워트레인, 운전자 피드백, 에너지 스토리지 등 3가지 제어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다. 파워트레인은 차체 제어를 비롯해 운행 관련 기능을, 에너지 스토리지는 배터리 관련 기능을, 운전자 피드백은 타이어압과 각종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관할한다.

다만 모터 등 운전자의 안전과 관련된 핵심 소프트웨어는 우분투 OS로 운영되지 않는다. C와 같은 로우 레벨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됐다.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와는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 JB 스트라우벨은 2012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과 터치스크린, 설치된 애플리케이션 등은 차량 주행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다”라며 “운전 중 스크린이 꺼지더라도 차는 문제없이 운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펌웨어 해킹 가능성과 보안

▲  테슬라 스마트폰앱으로 현재 자동차의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출처 : 테슬라 플리커)
▲ 테슬라 스마트폰앱으로 현재 자동차의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출처 : 테슬라 플리커)

테슬라에는 수십명의 소프트웨어 보안 연구팀이 존재한다. 기존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사물의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차량 보안은 중요한 기술 영역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자동차가 외부 사물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시작하면서 그만큼 해킹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기도 하다. 해킹을 통한 차량 탈취, 원격 제어 등 운전자의 재산과 안전이 직결된 영역이다.

테슬라는 최근 들어 보안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테슬라는 보안팀 총책임자로 화이트 해커 크리스틴 파젯을 2014년 2월 영입했다. ‘해커의 여왕’으로 불리는 크리스틴 파젯은 테슬라로 스카우트 되기 전까지 애플의 보안을 담당했다.

테슬라가 펌웨어 보안 문제를 관리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더 개방적이다. 테슬라는 데프콘(Def con)에 테슬라 모델 S를 전시하고 해킹 대회를 개최했다. 테슬라를 해킹할 경우엔 특전이 주어졌다. 실력이 탁월한 해커 20~30명을 공개 선발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하지만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의 해킹 실력을 뽐낸 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지난 7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운행중 문 열림 시도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은 있다. 테슬라는 상시적으로 펌웨어 버그도 신고 받는다. 버그가 확인되면 테슬라 홈페이지에 마련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다. 2013년 이후 현재까지 모두 20명이 등록됐다.

기본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오픈소스로

테슬라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높은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전통 차량 제조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개방과 공유의 철학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테슬라 펌웨어는 안전과 직결된 핵심 소프트웨어를 제외하면 오픈소스를 활용하고 있다.

우선 펌웨어는 자유 소프트웨어인 리눅스 계열 OS인 우분투를 탑재했다. 17인치 터치스크린의 웹브라우저는 오픈소스인 파이어폭스를 사용한다. 방대한 차량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는 아파치 하둡이 곧 적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테슬라는 오픈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외부 조달에 의존하는 기존 차량 제조사와 달리 테슬라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내부에서 자체 개발한다. 대응 속도와 애자일 문화 때문이다. 제이 비자얀 테슬라 CIO는 “외부 상용 솔루션은 특정 산업에만 특화돼 있지 않고 수많은 산업군의 보편적 요구사항에 맞춰져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 솔루션들은 (환경 변화에) 빠르지도 않고 유연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데이터 수집과 개인정보 침해

자동차가 네트워크 연결성을 지니게 되면서 운전자의 주행 데이터는 더 이상 차량 내부에만 저장되지 않는다. 3G 통신망을 통해 테슬라 데이터센터로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테슬라는 데이터 수집 범위를 약관에 명시해두고 있는데 상당히 방대하다.

마이테슬라 정보 : 차량 주문 현황, 보증 기간 문서, 차량 식별 번호, 서비스 플랜 정보, 인터넷 라디오 계정, 보험 양식, 운전자 면허, 파이낸싱 동의서
텔레매틱스 정보 : 차량 식별 번호, 속도 정보, 주행 정보, 배터리 사용 정보, 배터리 충전 이력, 전기 시스템 기능, 소프트웨어 버전 정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데이터, SRS 시스템 정보, 브레이크 정보, E-브레이크 정보, 보안
원격 차량 분석 : 전화 연락처, 웹브라우징 이력, 네비게이션 이력, 라디오 청취 이력, 현재 위치 정보

단순히 차량 주행 정보 수집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소소한 이력 데이터까지 수집한다. 테슬라 측은 구매자의 동의를 얻어 제한적으로 활용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보 수집 범위가 과도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테슬라는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펌웨어 업데이트와 차량 기능 개선에 활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이 비자얀 테슬라 CIO는 지난 11월5일 <CIO INSIGT>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수집한 데이터는 우리 상품을 개선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진단과 R&D 목적으로 사용될 뿐”이라고 밝혔다.

자동차가 자동차이던 시대는...

▲  테슬라 '보디 센터' 내부. 대부분의 공정이 로봇으로 구성돼있다.(출처 : 테슬라 플리커)
▲ 테슬라 '보디 센터' 내부. 대부분의 공정이 로봇으로 구성돼있다.(출처 : 테슬라 플리커)

테슬라는 자동차의 재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펌웨어로 제어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독특한 유형의 자동차가 컴퓨터 과학자들의 손에서 빚어지고 있다. 이들에 제조한 자동차가 충분히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증명됐다. 자동차 코딩 시대의 문을 열어젖힌 셈이다.

자동차 제조에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서는 운전자의 안면 인식 기술로 주행 중 전화 연결을 자동으로 해제하는 알고리즘도 소개되고 있다. 생체 정보와 결합된 기능도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스마트폰을 내부 스크린에 미러링하는 수준을 넘어 외부 사물과의 유기적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은 차량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는 흐름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 자동차로 진화하면 할수록 개인정보 수집은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테슬라의 판매량이 늘어나면 날수록 테슬라가 그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이미 테슬라는 개인의 전화통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스마트폰 기업이면서 웹사이트 사용 내역을 추적하는 웹포털 기업이다. 개인의 라디오 청취 이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사이고 운전자가 어디로 자주 이동하는지 확인하는 내비게이션 제조사이기도 하다. 자동차가 소프트웨어화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은 불과 몇 년 뒤가 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해보인다. 자동차가 자동차였던 시대는 종착점이 가까워졌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