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게임회사지만, 근본적으로는 R&D(연구개발) 회사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거죠. 게임 그 자체뿐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는 회사이기도 하고요.”

부산에서 11월20일 개막한 '지스타 2014’ 현장에서 백승욱 엔씨소프트 실장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엔씨소프트가 들고 나온 게임에 의외의 기술이 활용됐다는 질문을 하자 백승욱 실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의외라고요? 생각해보면, 엔씨소프트는 원래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백승욱 실장의 답변에서 엔씨소프트가 가진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백승욱 실장이 개발 중인 게임의 이름은 ‘리니지 이터널’. 온라인게임의 N스크린 시대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게임이다.

▲  백승욱 엔씨소프트 실장
▲ 백승욱 엔씨소프트 실장

"기술이 바로 엔씨 스타일이죠”

‘리니지 이터널’은 이름만 들어도 엔씨소프트 스타일이 짙게 배인 PC용 온라인게임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속내는 좀 다르다. 클라우드 서비스 기술을 도입한 스트리밍 게임이다. 덕분에 PC와 태블릿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개발 중이다. 백승욱 실장에게 리니지 이터널과 엔씨소프트가 지스타 현장에 들고 ‘리니지 이터널’에 관심이 간 까닭이다.

“온라인게임을 만들면서 클라우드 기술에 집중한 까닭은 몇 년 동안 세계가 급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그 어떤 게임 개발자도 안드로이드나 iOS용 게임을 만들게 될지 상상도 못 했어요. 엔씨소프트는 급변하는 환경에 맞는 ‘은탄환’을 찾고 싶었던 거죠.”

게임을 클라우드로 서비스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클라우드 게임의 기본 개념은 게임 그래픽을 게이머가 가진 PC가 아니라 서버가 구현해준다는 데 있다.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을 즐기려면 높은 성능을 내는 PC가 꼭 필요한데, 클라우드 게임에는 고사양 PC가 필요 없다. PC뿐만이 아니다. 태블릿PC나 심지어 스마트폰에서도 똑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래픽 계산은 모두 클라우드 서버 몫이고, 사용자가 가진 기기는 그저 게임 영상을 재생하는 것일 뿐이니까. 마치 고해상도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게임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말하자면, '리니지 이터널'의 클라우드 게임 기술은 n스크린 시대를 한 번에 대응할 수 있는 만능 기술인 셈이다. PC용 게임을 만들어 태블릿 PC용으로, 스마트폰용으로 변환할 필요가 없는 기술 말이다. 백승욱 실장은 클라우드로 구현하는 스트리밍 게임 기술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만능 ‘은탄환’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백승욱 실장은 “너무나 많은 OS가 있고, 각 플랫폼으로 게임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비용의 낭비”라며 “고객 관점에서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게임이 나온 이후 다른 플랫폼으로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임 개발업체에 가장 요구되는 개발 덕목은 뭘까. 게임의 그래픽 품질, 기획과 시나리오의 완성도, 혹은 서버의 안정성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엔씨소프트는 멀티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  지스타 2014 관람객이 PC에서 '리니지 이터널'을 체험하고 있다.
▲ 지스타 2014 관람객이 PC에서 '리니지 이터널'을 체험하고 있다.

▲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이터널'을 체험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태블릿 PC도 마련했다. 시연에는 엔비디아의 '쉴드 태블릿'이 쓰였다.
▲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이터널'을 체험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태블릿 PC도 마련했다. 시연에는 엔비디아의 '쉴드 태블릿'이 쓰였다.

더 많은 게이머를 위한 클라우드 기술

클라우드 게임은 엔씨소프트가 처음으로 소개한 개념은 아니다. 소니에 인수된 미국의 가이카이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유비투스 등의 업체가 이미 클라우드 게임에 필요한 스트리밍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국내에서 클라우드 게임 얘기가 뭉근하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클라우드 게임 얘기가 이내 잦아든 것은 클라우드 게임 기술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업계가 너무 빨리 맛 본 탓이다. 지연 시간이 너무 길어 게임패드 단추를 입력하고 한참이 지나야 캐릭터가 움직였으니 게임 경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엔씨소프트가 차세대 온라인게임에 쓸 기술로 클라우드와 스트리밍을 고른 것은 어쩌면 모험이 아닐까. 백승욱 실장은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클라우드 기술을 시도하는 데 물론 위험요소가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아이폰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와 지금의 아이폰은 모바일 프로세서 속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3G와 LTE-A의 속도 차이가 얼마인지 말이죠. ‘리니지 이터널’이 출시되기 전에 네트워크 기술은 충분히 지연 시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승욱 실장은 “국가의 네트워크 기술은 개개인의 부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라며 “유럽이나 남미, 아시아 그 어떤 곳에서도 곧 클라우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게임은 비싼 장비가 필수다. 개인의 부와 관련이 깊은 영역이다. 하지만 국가의 인프라 발전 속도는 개인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는 것보다 빠르다는 게 백승욱 실장의 주장이다. ‘리니지 이터널’이 클라우드 기술을 품은 것도, 결국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전세계 모든 게이머가 다양한 장비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엔씨소프트가 네트워크 인프라의 발전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핵앤슬래시’ 방식의 전투를 MMORPG에 대규모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수백명의 캐릭터와 수백개의 몬스터가 동시에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부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리니지 이터널’ 개발팀이 현재 가장 집중해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엔씨소프트는 온라인게임의 역사에서 각종 ‘최초' 수식을 보유하고 있다. ‘리니지 이터널’은 클라우드로 서비스되는 최초의 온라인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엔씨소프트에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리니지 이터널’의 비공개 시범서비스는 오는 2015년으로 예정돼 있다.

▲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본 '리니지 이터널'의 대기화면
▲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본 '리니지 이터널'의 대기화면

▲  PC와 안드로이드 태블릿PC,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똑같은 '리니지 이터널'을 즐길 수 있다.
▲ PC와 안드로이드 태블릿PC,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똑같은 '리니지 이터널'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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