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와 포털의 구원(仇怨)의 관계다. 적어도 국내에선 그렇다. 언론사는 포털을 향해 “저널리즘을 망치는 주범”이라고 힐난한다. 포털은 이런 언론사를 향해 “매일 똑같은 뉴스만 생산하느냐”고 되묻는다. 다시 언론사는 “이제 뉴스 제값받기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포털은 “더이상은 어렵다”고 버틴다.

갈등의 씨앗은 언론사가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싹텄다. 포털 플랫폼이 블랙홀처럼 뉴스를 빨아들이면서 둘 사이 관계에 균형추는 무너졌다. 뉴스 소비의 주된 경로로 포털이 자리를 잡았고 모바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강화되고 있다. 뉴스를 언론사 뉴스 웹사이트에서 보는 이는 희귀종에 속한다. 둘의 관계가 맺어지던 때부터 어쩌면 상생이란 성립 불가능한 단어였을지 모른다.

뉴스 소비의 접점이 포털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풍경이 등장한다. 저널리즘에 대한 책무가 포털에도 부과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포털은 “우린 뉴스를 유통하는 플랫폼일 뿐”이라며 책임을 떠밀기도 하지만 그 운명을 마냥 피하기는 어렵게 됐다. 포털은 국내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어뷰징 기사에 좋은 기사가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  김귀현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콘텐츠 기획 총괄(출처 : 김귀현씨 제공)
▲ 김귀현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콘텐츠 기획 총괄(출처 : 김귀현씨 제공)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 서비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훌륭한 품질의 기사가 포털로 전송돼도 어뷰징 기사에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현실, 고품질 저널리즘을 좇는 언론사가 수익모델 부재로 흔들리는 오늘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태어났다. 언론사의 고민을 포털 기획자가 대신해주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블로터>는 지난 11월25일 서울 한남동 다음카카오 사옥에서 뉴스펀딩 서비스를 기획하고 책임지는 두 청년을 1시간여 동안 인터뷰했다. 콘텐츠 기획을 총괄하는 김귀현 씨와 서비스 PM을 담당한 이경순 씨다.

2013년부터 뉴스펀딩 서비스를 기획했다는 이경순 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하루에 2만건의 기사가 포털로 전송돼 들어오는데 좋은 기사는 묻히고 어뷰징 기사만 읽힌다는 겁니다. 포털에서 아무리 좋은 글을 편집해 올리려고 해도 그런 현상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유통 구조를 바꿔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귀현 씨는 한발 더 나아갔다. 뉴스 유료화를 염두에 뒀다고 했다. 언론사에 실질적 수익을 제공하지 않으면 좋은 저널리즘이 싹트기 어려운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도 일부 주류 언론사들이 미국식 모델을 본떠 디지털 유료화를 시작했지만 아직 성과가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불같이 타오르던 유료화의 확산 움직임도 주춤하는 모양새다. 결국 언론사의 고민이 디지털 수익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귀현 씨와 이경순 씨는 지난해부터 대안을 찾아 헤맸다. 영국 <더타임스> 방식의 전면 유료화(하드 페이월) 모델부터 <뉴욕타임스>식 계량형 유료화(소프트 페이월) 모델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좋은 기사의 유통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기사에 가치를 지불하자는 목표’에 적합하진 않았다. 그 다음으로 찾은 안이 ‘크라우드펀딩’이었다.

네덜란드 <드 코레스판던트>에서 힌트 얻다

▲  크라우드펀딩 기반의 네덜란드 온라인 뉴스 플랫폼인 <드 코레스판던드></div>
▲ 크라우드펀딩 기반의 네덜란드 온라인 뉴스 플랫폼인 <드 코레스판던드>

이들은 뉴스와 크라우드펀딩을 접목시키기 위해 해외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를 죄다 뒤졌다. 킥스타터, 인디고고, 유캔펀딩, 텀블벅 등 이름깨나 알려진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는 빠짐없이 들여다봤다. 심지어 후원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댓글까지도 꼼꼼하게 살폈단다. 정작 그들을 혹하게 만든 웹사이트는 네덜란드 <드 코레스판던트>였다.

<드 코레스판던트>는 ‘뉴스에서 새로움(New)으로’를 기치로 2013년 9월 출범한 온라인 저널리즘 플랫폼이다. 단편적인 사건 보도에서 벗어나 맥락을 보여주는 뉴스를 생산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그래서 탐사 보도나 분석 보도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기꺼이 독자들에 지갑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의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세계적인 언론 비평지인 니먼저널리즘랩 등이 비중있게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 두 청년은 <드 코레스판던트>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벤치마킹하기로 결정했다. 김귀현 씨는 “해외 대부분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들은 ‘이런 기사를 쓸 테니, 펀딩을 해달라’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라며 “뉴스펀딩은 어떻게 보면 포털형 한국식 크라우드펀딩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귀현 씨 말대로 뉴스펀딩은 해외 여러 크라우드펀딩 모델과는 모금 방식이 다르다. 기획안을 등록하고 비용이 모이면 그때부터 취재에 들어가는 사전펀딩 모델이 주를 이룬다. 반면 뉴스펀딩은 기사를 먼저 작성하고 모금하는 사후펀딩 시스템이다. 김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혹시 모금이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거 같아요. 취재 관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내에선 아이템을 먼저 제시하고 취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죠. 비밀 취재가 일반적이니까요.”

스타·콘텐츠·리워드 파워에 지갑 열렸다

▲  다음 뉴스펀딩 최고 모금액을 기록한 주진우 기자의 '당신 소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획 연재.
▲ 다음 뉴스펀딩 최고 모금액을 기록한 주진우 기자의 '당신 소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획 연재.

질문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지불 의사로 이어졌다. 왜 독자들은 뉴스펀딩에 지갑을 열까. 일부 언론사의 디지털 유료화에도 닫아두고 있던 지갑을 왜 꺼내놓을까. 김귀현 씨는 지갑을 여는 요인을 3가지로 꼽았다. 요컨대 ▲스타파워 ▲콘텐츠 파워 ▲리워드(보상) 파워다.

애초 이들은 ‘깊은 분노'를 자아내는 뉴스가 지불 의사가 발생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어림했다. '유용한 팁’을 주는 정보성 기사도 모금을 유도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간주했다. 하지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이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뜻밖에도 리워드 파워도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경순 씨는 “처음엔 리워드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금이 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리워드를 고려한 정도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리워드 프로그램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펀딩에 참여하는 필자들에게 ‘새로운 가치’나 ‘색다른 경험’을 보상으로 제공할 것을 조심스럽게 주문하고 있다. 토크콘서트나 방담회라는 전형적인 형식을 벗어나 ‘후원자들과 함께 봉사하기’ 같은 방식도 시도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후원자만 댓글을 게시할 수 있는 ‘나우’라는 기능도 리워드로서 한몫한다고 했다. 나우에 등록된 댓글을 바탕으로 추가 기사를 작성한 사례도 있다. 교육 취재, 피케티 인터뷰 등이 대표적이다. 반박글도 다음 기사에 반영해 내용을 보완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화 저널리즘‘, ’참여 저널리즘‘이 뉴스펀딩에서 활성화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11월19일 하루 모금액 1300만원까지 치솟기도

▲  이경순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서비스 프로젝트매니저
▲ 이경순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서비스 프로젝트매니저

뉴스편딩은 필자군을 앞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주류 언론사에 프리랜스 작가, 유명 인사까지 조금씩 조심스럽게 확장할 심산이다. 잠시 잊혀져가던 시민저널리즘이 뉴스펀딩을 통해 국내에서 재시도되는 모습이다.

지금도 일부 블로거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야구로 먹고 사는 꿈’을 연재하고 있는 김은식 작가, ‘3040 직장인 위한 스마트 여행 정보'을 선보인 블로거 김치군. 이들은 모두 주류 매체와는 거리가 먼 ’재야의 고수‘들이다. 김귀현 씨는 약간 들뜬 듯 이렇게 말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모든 분들이 우리 필자예요. 재야에 필력 있는 분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텍스트든 영상이든 오디오든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을 거예요. 이를 위한 플랫폼은 모두 갖추어놓았습니다.”

이같은 자신감에는 기대 이상의 성과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뉴스펀딩이 시작된 이후 뉴스 서비스의 전체적인 트래픽 지표가 상승했다. 페이지뷰는 일반 기사의 평균보다 4~5배 가량 높다. 페이스북 ‘좋아요’의 다음카카오 버전인 ‘공감’ 지수도 매번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공감 지수 상위 10건 중 7~9건은 뉴스펀딩 기사다.

펀딩 금액도 들쑥날쑥하지만 서서히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단다. 주로 뉴스 콘텐츠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때 모금액이 폭발하는 형태가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지난 11월19일에는 하루 모금액이 1300만원까지 치솟았다. 화상환자의 가슴절절한 사연이 뉴스펀딩으로 전달되면서 만들어진 성과다. 이경순 씨는 “원래 목표는 올해 5천만원이었다”면서 “지금은 이미 이 목표액을 훌쩍 넘어선 상황”이라고 했다.

"새로운 해설 저널리즘 국내에 안착하는 데 기여했으면"

▲  새로운 해설 저널리즘의 상징 <복스></div>의 에즈라 클라인 기자의 기사.
▲ 새로운 해설 저널리즘의 상징 <복스>의 에즈라 클라인 기자의 기사.

이 씨는 뉴스펀딩이 새로운 해설 저널리즘(new explanatory journalism)이 국내에 안착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복스>의 에즈라 클라인, <야후 뉴스>의 네이트 실버가 시도한 새로운 형식의 저널리즘 실험이 국내에서 시도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독자와 필자가 대화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고 그것을 기사에 넣어서 팩트 기반 위에 해설이 들어가는 방식, 우리가 콘텐츠 만들 때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슈와 트렌드 중심으로 저널리즘이 흘러가고 있잖아요.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내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갓 두 달을 맞은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은 서비스 그 자체보다 기획자들이 언론사에 던지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했다. 언론 현장보다 저널리즘을 더 폭넓게 사고하고 더 깊이 고민하는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선 기자들 못지 않게 저널리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출입처에서 가쁜 호흡으로 뱉어내는 일회성 기사들의 한계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간지 기자들이 호감은 가지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참여를 어려워한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물론 포털이 시도하는 저널리즘 시도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정치적 지향성을 띠는 순간 사업 전반에 치명적인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 뉴스펀딩도 여기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건드리려는 필자에게 어깃장이라도 놓게 되면 뉴스펀딩은 곧장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들 또한 그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지금도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뉴스펀딩이 포털이라는 ‘온실‘에서나 가능한 배부른 시도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뉴스를 공짜로 수집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추측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기획 취지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제약 조건이 명확한 플랫폼 안에서 더 나은 저널리즘을 모색하려는 의지만큼은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저널리즘의 미래를 저널리스트가 아닌 포털 기획자들과 토론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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