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해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머리에 한 인물이 스쳤습니다. 팀 쿡 애플 CEO입니다. 누군가 제게 올해의 인물을 위해 의자 하나만 마련하라고 한다면, 저는 그 자리를 팀 쿡 CEO를 위해 비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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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_rainbow_tim_cook_800

 

팀쿡의 커밍아웃과 동성애자의 인권

미국 현지시각으로 10월30일, 팀 쿡은 <비즈니스위크>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기고문을 올렸습니다. 원문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졌고, 각 나라 언론이 이를 주요 소식으로 다뤘습니다. 이날은 팀 쿡이 대중 앞에 애플의 CEO가 아니라 성소수자의 얼굴로 선 날로 남았습니다.

애플은 전세계 IT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발표할 때마다 미국 증시에 올라가 있는 애플의 주가가 요동칩니다. 애플은 애플이 만든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과 관심 없는 이들이 함께 씹고, 뜯고, 맛보는 몇 안 되는 IT 업체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언론에 직접 글을 써 자신이 게이임을 밝힌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어떤 기업의 성적을 책임지는 전문경영인이고 동성애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팀 쿡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나는 ‘인생의 영원하고도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남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마틴 루서 킹의 말을 깊이 믿는다. 나는 종종 저 말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사생활을 지키려는 욕심 때문에 더 중요한 뭔가를 미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오늘로 나를 이끌었다.”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이들의 마음은 보통 편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로스앤젤레스 LGBT센터가 12월12일 발간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 같은 양상이 도드라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LGBT센터 실험 결과, 동성애자와 직접 만나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비교해 약 5배나 빨리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를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를 대하는 편견이 해소된 것이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라고 논문은 설명합니다. 동성애 차별의 근거는 편견에 있음을,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함을 잘 나타내는 연구결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동성애자를 '대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거리낌 없이 밝힐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으로 유명한 이들의 커밍아웃이 편견을 씻는 방아쇠입니다. 팀 쿡 CEO의 커밍아웃 이전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여배우 엘렌 페이지가 동성애자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  '퀴어문화축제'의 행진을 방해하려 현장에 난입한 기독교 단체
▲ '퀴어문화축제'의 행진을 방해하려 현장에 난입한 기독교 단체

6월의 신촌, 11월의 서울

“애플은 사람들의 차이를 포용할 때 전체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기업이며, 창조성을 사랑하는 기업이다.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사실입니다. 팀 쿡 CEO와 같은 행운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서울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려던 지난 6월, 축제의 거리 신촌에서 큰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퀴어문화축제’였지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성애자들이 벌이는 축제입니다. 각종 단체와 모임에서 부스도 차리고, 저녁 시간 즈음 신촌 일대를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행사입니다. 토요일 신촌 현장을 방문해보니 이미 많은 이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날 축제는 어쩐 일인지 신촌 명물 거리의 절반 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정문과 가까운 거리의 절반은 이미 다른 쪽에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와 관련 없는 다른 행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거리에 나온 이들에게 사정을 들으니 상황을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려는 이들이 다른 축제를 위해 선점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뿐인가요. 등에 십자가를 짊어진 이들이 축제 현장 곳곳을 누비며 확성기를 들고 외쳤습니다.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2000년전 예수는 십자가 밑에서 포용을 가르쳤지만, 신촌의 확성기에서는 연신 증오가 흘러나왔습니다.

5개월이 지난 11월의 서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반려된 것입니다. 인권헌장에 포함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5개 조항이 어떤 이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때문에 몇 차례나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이를 막아서려는 이들과 지키려는 이들이 대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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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좀 더 다양성 갖춘 사회가 되길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당연한 명제에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맞서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요. 존재하는 것조차 죄인 취급을 당하는 이들이 지천인 2014년 한국 사회에서 팀 쿡 CEO의 동성애 선언이 더욱 값지게 다가옵니다.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정체성입니다. 정체성에 대고 반대 의견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권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모든 인간이 똑같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이니까요. 팀 쿡 CEO는 구성원의 다양한 개성이 한 곳에 모일 때 사회가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답 하나로만 사람을 가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입니다. 2015년에는 사회 구성원을 너무도 당당히 차별하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은 잦아들기를 기원합니다. 지금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한 발 더 내딛길 희망합니다. 팀 쿡의 말을 되새김질하면서.

“나는 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는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게이이기 때문에 소수자인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른 소수자 그룹은 매일 어떤 어려움을 감내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창을 내주었다. 나를 더 공감으로 이끌었고, 이로 인해 내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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