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핀테크 스타트업 수준에 놀랐어요. 대단한 솔루션을 갖췄더군요. 오늘 만난 9곳 중에서 두세 곳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데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지난주 금요일에 상하이에서 피치데이를 열었는데 말이죠."

▲  마커스 너크 스타트업부트캠프 공동설립자겸 핀테크 부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 마커스 너크 스타트업부트캠프 공동설립자겸 핀테크 부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마커스 너크(Markus Gnirck) 스타트업부트캠프 공동설립자겸 핀테크 부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빡빡한 일정에도 지친 기색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한국핀테크포럼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2월9일 서울 강남구에서 마련한 '테크피치데이'에 참여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10시간 넘게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스타트업부트캠프는 핀테크 분야에서 성공적인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금융업계와 핀테크 스타트업 사이에 다리를 놓고 정부나 규제기관도 연결한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어울릴 장을 마련해 핀테크 생태계를 꾸리는 것이 목표다.

1년에 스타트업 10곳을 뽑아 집중 교육하고 이들의 지분 일부를 받아 수익을 낸다. 지난 2014년 1월 런던에서 핀테크 부문을 새로 꾸린 뒤에 1년 만에 트랜스퍼와이즈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트랜스퍼와이즈는 P2P 방식으로 환전 수수료 없이 저렴하게 외화를 송금해주는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6월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과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등에게 2500만달러(273억원)를 투자받은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안데르센 호로위츠에게 5800만달러(632억원)를 투자받았다.

▲  P2P 해외 송금 핀테크 스타트업 '트랜스퍼와이즈' 운영 방식
▲ P2P 해외 송금 핀테크 스타트업 '트랜스퍼와이즈' 운영 방식

 

스타트업부트캠프는 지역별로 특성화된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교통과 에너지 스타트업을 키우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식이다. 지난해 12월28일 스타트업부트캠프는 싱가포르에도 핀테크 육성 프로그램을 열었다. 아시아에서도 런던처럼 핀테크 스타트업을 끌어모아 키우기 위해서다. 마커스 너크 COO는 “핀테크 분야가 워낙 크기 때문에 누구도 스타트업에 눈길 주지 않을 때부터 우리는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라며 “단 1년 만에 우리가 빨리 큰 걸 보면 핀테크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찾는 수요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금융산업 깊이 이해해야"

마커스 너크 COO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먼저 금융산업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부트캠프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스타트업을 고를 때도 구성원이 전문성을 갖췄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핀테크가 아니라 산업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팀이 중요하죠.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대학생한테 핀테크 스타트업을 시작하라고 하지 않아요. 금융산업에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금융계의 전문성과 스타트업의 혁신성이 만날 때 가장 훌륭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핀테크 스타트업은 10년 동안 금융계에서 일한 사람과 이제 갓 졸업한 말랑말랑한 사람이 함께 일하는 거예요. 대학생은 조언을 얻고, 금융 전문가는 대학생에게서 색다른 시각을 가져가는 거죠."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3박자 갖춰야

핀테크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전문성 외에도 좋은 투자자와 조언자를 만나야 한다고 마커스 너크 COO는 덧붙였다. 이 두 가지가 스타트업부트캠프가 도와주는 부분이다.

그는 핀테크 스타트업의 전문성을 키워주기 위해 멘토 수백명과 얘기할 수 있도록 한다고 얘기했다. 은행, 정부 규제기관 같은 곳에도 다리를 놓는다.

그는 투자 유치가 단순히 돈을 받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 머니”가 좋은 인연을 만들어 스타트업이 빨리 클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보 같은 돈”을 받으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물이 된다고 경고했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바보 같은 돈을 많이 받죠.”

스타트업부트캠프는 멘토십과 투자자 네트워크, 사무공간, 13주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가로 스타트업에게 보통주 8%를 받는다. 마커스 너크 COO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  마커스 너크 스타트업부트캠프 공동설립자겸 핀테크 부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가 2월9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을 만나 노하우를 나눴다
▲ 마커스 너크 스타트업부트캠프 공동설립자겸 핀테크 부문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가 2월9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을 만나 노하우를 나눴다

"한국 스타트업 3곳 육성 지원할 것"

“오늘 와서 느낀 건데, 한국 스타트업은 한국 시장에서 스케일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한국은 좋은 시장이죠. 하지만 1조원(10억달러)짜리 회사를 키우려면 국경 너머 글로벌 시장으로 나와야 합니다."

마커스 너크 COO는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에게 과감히 국경을 넘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날 본 한국 핀테크 회사 9곳 중에서 3곳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커나갈 잠재력을 지녔다고 추켜세웠다. “세 스타트업에겐 직접 연락해서 우리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하라고 할 겁니다."

그는 싱가포르 핀테크 육성 프로그램에 한국 핀테크 스타트업도 많이 지원하라고 말했다. 스타트업부트캠프는 오는 3월15일까지 온라인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심사를 거쳐 12곳을 추린다. 4월 중순에 후보 12팀을 싱가폴로 불러 4~5일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스타트업부트캠프뿐 아니라 스폰서와 투자자도 선발에 참여해 최종적으로 13주 육성 프로그램에 함께 할 스타트업 10곳을 뽑는다. 여기 선발된 10팀은 5월부터 7월까지 3달 동안 스타트업부트캠프가 제공하는 집중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할 자격을 얻는다.

하향식 핀테크 육성 정책, 나쁘지 않은 출발점

해외 핀테크 시장은 금융업계와 IT업계 손에서 태어난 반면, 국내 핀테크 열풍은 정부가 주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가 나서 핀테크 열풍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거품을 만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핀테크 생태계가 잘 마련된 런던에서 활동했던 마커스 너크 COO는 국내 상황을 어떻게 볼까. 대답은 뜻밖이었다. “톱다운 방식이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마커스 너크 COO는 핀테크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문화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은행 고위 임원이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나서거나 정부가 핀테크를 화두로 잡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청와대가 방아쇠를 당겼다고 들었어요. 그래야 규제기관이 사고방식을 바꿉니다. 덕분에 대화가 시작됐죠. 하향식이지만 좋은 출발점입니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생태계를 발전시킬 스타트업입니다. 오늘도 스타트업 9곳이 왔는데 멘토는 15명이 왔잖아요. 은행에서 온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1년 안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는 없죠. 같이 어울려 얘기하는 것부터가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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