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업의 디지털화는 한때 뮤지션들을 무력감에 빠뜨렸다. 근절되지 않는 불법 다운로드, 디지털 음원의 복제 등이 지속되면서 “음악 산업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며 뮤지션들은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저작권법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저작권은 음악인들에겐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제도로 인식돼 왔다.

이러한 인식도 조금씩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뮤지션들의 저작권 인식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음악 경력과 활동하는 장르에 따라 저작권에 대한 태도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작권이 처음 제정된 영국에서 감지되고 있는 흐름이다.

▲  국내 음악 산업 현황. 디지털화로 음악 산업 전체 규모는 커졌다.(사진 출처 : YG 2013년 반기보고서)
▲ 국내 음악 산업 현황. 디지털화로 음악 산업 전체 규모는 커졌다.(사진 출처 : YG 2013년 반기보고서)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톰 필립스와 존 스트리트는 디지털 시대 저작권과 뮤지션들의 인식을 연구한 논문 ‘저작권과 뮤지션들’을 지난 2월 ‘미디어, 문화, 사회’라는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들은 경력과 이력이 다양한 영국 내 뮤지션 16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하며 저작권에 견해를 조사했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 연구진들은 영국 내 성공한 뮤지션을 조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음악 산업의 주변부에서 음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뮤지션들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다. 저작권이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뮤지션들이 저작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취지다.

음악 경력 따라 저작권 태도 갈려

이들 연구진은 뮤지션들의 저작권에 대한 태도가 어떤 음악적 경험을 했느냐에 다르게 나타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음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 논문은 음악 경력이 저작권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음악적 경력이 짧은 뮤지션들은 저작권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들 그룹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음악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행위가 나를 불편하게 하진 않는다”고 응답하거나 “불법 다운로드가 재산을 탈취하는 것과 같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연구진은 “저작권에 대한 태도는 음악적 경험이 길수록 전통적인 산업 관점에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면서 “사적 이해관계가 저작권에 대한 태도를 만들어가는 증거로 읽힌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작업하는 음악 장르에 따라서도 저작권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냈다. 클래식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저작권에 덜 관심을 갖는 반면, 팝이나 록,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은 저작권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연구진은 “클래식 뮤지션은 스스로를 소속된 음악가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클래식 뮤지션은 저작권 유연하게 접근

162명 가운데 2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개별 면접 조사에서는 디지털 음악과 저작권에 대한 색다른 견해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이들 연구진은 설명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음악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데 관심이 크지 않은 뮤지션들은 저작권이 수익의 보루이기보다 제약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효과음을 허락 없이 차용한 경험이 있는 잭이라는 이름의 음악가는 “난 비시장 뮤지션이고 너무 가난하다”면서 “나 정도의 상황에 있는 뮤지션들이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정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거나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뮤지션에겐 창의적 활용이 허용돼야 한다”며 “저작권이 리워드 성격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창의력을 제약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저작권을 침해받은 경험이 있다고 소개한 악기 연주자 크리스티앙은 저작권에 대해 또다른 인식을 지닌 뮤지션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무료로 올려놓은 음악이 한 브라질 음악 웹사이트에 허락 없이 올려진 사실을 확인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음악을 허락 없이 올려놓는 것은 문제가 없다”면서 저작권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다만 그는 “무료로 내려받아서 유료로 판매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라며 “그건 불공정한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  디지털화로 음악기획사 매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변화하고 있다. 위 표는 YG엔터테인먼트의 2013년도 매출 구성.(출처 : 2013년 사업보고서)
▲ 디지털화로 음악기획사 매출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변화하고 있다. 위 표는 YG엔터테인먼트의 2013년도 매출 구성.(출처 : 2013년 사업보고서)

이처럼 뮤지션들마다 저작권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저작권 제도의 이해나 깊이도 천차만별이었다. 뮤지션이어서 저작권 강화를 지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구진들은 “이 연구로 저작권에 대한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논문에 적혀 있다시피 이 연구가 뮤지션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디지털 음악 시대 저작권이 음악 산업을 지탱시키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는 메시지만큼은 분명이 던져주고 있다. 뮤지션들에게도 저작권은 수익과 창작성 저해라는 양면적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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