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의 크기가 곧 성능으로 대변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타워형 데스크톱 컴퓨터는 키가 클수록 좋아보였지요. 5.25인치, 3.5인치 베이는 거의 텅텅 비어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멋이었습니다.

어느새 덩치 큰 PC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특히 광학 드라이브와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가 사라지면서 미니타워에도 슬롯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결정적으로 두께 1cm도 되지 않는 노트북 역시 작고 얇은 컴퓨터 기술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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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크기와 성능 사이에 상관 관계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직접적인 관계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반도체 기술 때문이지요. 지난해에 나온 애플의 워크스테이션 ‘맥프로’를 보면 이전 제품에 비해 컴퓨팅 성능은 7배 이상 높아졌지만 부피는 8분의 1로 줄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반도체 집적 기술과 열 관리 기술들이 좋아지면서 컴퓨터가 작아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성능이 더 빨라진 요즘의 프로세서는 전력을 적게 쓰는 건 물론이고, 열이 적게 나기 때문에 내부의 공기 흐름과 냉각팬 등에 대한 고민을 덜어낼 수 있게 된 겁니다.

PC 설계가 자유로워지면서 극단적인 형태의 컴퓨터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스틱PC’라고 부르는 초소형 컴퓨터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스틱PC는 마치 구글 '크롬캐스트'처럼 디스플레이의 HDMI 단자에 기기를 직접 꽂고, 마이크로 USB를 통해 전원을 공급받는 소형 컴퓨터입니다. 이미 지난해 제품이 나왔던 적 있고, 인텔도 직접 이 스틱PC를 만들어 ‘컴퓨트 스틱(compute stick)’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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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4

이 제품을 처음 보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그마한 기기를 모니터 혹은 TV에 꽂기만 하면 윈도우가 뜹니다. PC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그대로 됩니다. 의심할 게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스틱PC가 그냥 PC이기 때문이지요.

이 PC 속에는 대단한 게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제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톰 프로세서가 들어가고, 저장장치는 플래시메모리를 씁니다. USB 포트도 달렸고, 마이크로SD카드로 저장공간을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PC에 그렇게 놀랄 것도 아닙니다. 이미 손바닥만한 아톰 윈도우 태블릿도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배터리와 디스플레이를 빼고 메인보드만 떼어낸다면 아마 스틱PC와 크기가 비슷할 겁니다. 또한 고성능 코어 프로세서를 쓴 노트북의 메인보드도 손바닥보다 작아진 지 꽤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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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ute_stick

사실 이 스틱PC의 경우 단순히 작다는 것에서 그칠 건 아닙니다. 작기 때문에 벌어지는 효과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가지 형태의 컴퓨터가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스틱PC 역시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PC입니다. 제게 “이걸로 뭘 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곧 “PC로 뭘 할 수 있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PC이기 때문에 성능의 한계 안에서는 뭐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스틱PC는 TV와 연계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윈도우를 쓸 수 있는 스마트TV가 되는 셈입니다. 앞으로 '윈도우10'으로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습니다. 아톰이라고 하지만 성능도 쓸만합니다. 꼭 TV뿐이 아닙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스마일서브의 스틱PC 도입 사례처럼 데이터센터 안에서 관제용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작기 때문에 용도가 다양해지는 겁니다.

꼭 스틱PC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손바닥만한 미니PC인 NUC도 있습니다. 이건 코어 i5 프로세서에 고성능 SSD까지 더한 일반 PC입니다.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PC는 개인용도보다 은행의 ATM 단말기에 들어가는 PC를 대신하기도 한답니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관리가 쉽기 때문에 기가 막힌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PC를 방송국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방송 카메라에 이 PC를 한 대씩 붙여놓았습니다. 그것만으로 각각의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촬영 영상을 전송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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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chssuda_stickpc

소형 컴퓨터는 어디에든 컴퓨팅 성능이 필요한 곳에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스틱PC는, NUC는 하나의 형태일 뿐입니다. 또한 윈도우로만 한정지을 것도 아닙니다. 안드로이드, 리눅스 등이 고성능 프로세서들과 접목해 새로운 형태의 임베디드 시스템으로 태어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동안 반도체의 발전을 성능 그 자체로만 연결지었다면 요즘의 흐름은 효율성입니다. 더 적은 전력으로 작동하고, 더 작은 공간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 컴퓨터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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