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큰딸아이한테는 얘기 안 했어요.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알면 너무 섭섭해할 것 같아서요. 아내한테만 얘기했네요. 아내도 아무런 얘기를 안 하더라고요. 아마 섭섭할 겁니다. 저도 그런데요.”

양병규 개발자와 마주앉았다. 주로 옛날이야기로 이루어진 대화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소프트웨어를 처음 배포했을 당시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개인 개발자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시장을 넓히고 많은 이들이 쓰는 제품이 됐는지, 그리고 최근 개발을 중단한 이유까지. 재미있고 황당한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지만, 헤어지기 직전 가볍게 한 질문에서 그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프트웨어는 내 자식 같아요. 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해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12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저도 마음이 너무 안타깝죠.”

양병규 개발자는 12년 전 윈도우용 압축 유틸리티 ‘빵집’을 만들어 프리웨어로 배포한 개발자다. 그는 8월 들어 공식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및 추가 개발 중단을 블로그를 통해 선언했다. 12년을 이어온 소프트웨어와 공식적으로 이별한 셈이다. 그를 만나 빵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술적인 얘기보다 감성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오갔다.

▲  양병규 '빵집' 개발자
▲ 양병규 '빵집' 개발자

“OS 개발하고파” 꿈이 잉태한 유틸리티 ‘빵집’

양병규 개발자는 원래 전자문서 전문가다. 최근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2003년 빵집 배포 당시에도 모 업체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 양병규 개발자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바로 윈도우와 같은 운영체제(OS) 개발의 꿈이었다.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는 혼자 못 하겠더라고요. 홍보수단이 필요한데, 그때 유틸리티 만들어 팀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홍보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운영체제 개발은 얼마 못 가 그만뒀어요.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빵집은 2003년 처음 나왔다. 빵집의 원래 이름은 ‘떡집’이었다. 우연히 접한 델파이의 ‘ZipTV’ 컴포넌트가 계기가 됐다. 초기 떡집은 ZipTV 컴포넌트가 제공하는 30여가지 파일 포맷에 관한 압축 알고리즘을 그대로 사용했다. 양병규 개발자가 혼자 쓰기 위해 만든 압축 유틸리티였을 뿐이다.

떡집에서 불편했던 요소를 고치고, 다양한 기능을 추가한 버전이 바로 빵집이다.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 팀을 꾸리는 데 빵집 배포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빵집 배포로 이름을 알리고 팀을 꾸리자는 게 당시 양병규 개발자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영체제 개발은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는 사라지고, 그렇게 빵집만 남았다.

빵집은 사용자로부터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개인은 물론 기업, 관공서, 학교에서 두루 무료로 쓸 수 있는 프리웨어라는 점에서 우선 주목받았다. 당시 이스트소프트가 만든 ‘ALZ’ 압축파일 포맷을 지원한다는 점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알집’을 대체할 수 있는 1인 개발자의 국산 무료 압축 유틸리티가 당시 빵집의 위치였다. 빵집 배포 이후 8년여가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하루 7GB 정도의 내려받기 트래픽이 발생했을 정도다.

개인 개발자가 만든 소프트웨어에 우호적이었던 당시 분위기도 빵집 확산에 도움이 됐다. 압축 유틸리티는 물론이고, 동영상 재생 프로그램 등 분야를 막론했다. 개인 개발자가 만든 참신하고 범용적인 소프트웨어가 시장에 나와 각축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대형 업체나 해외 대기업이 만든 소프트웨어가 마뜩잖은 이들은 손쉽게 국산 무료 소프트웨어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양병규 개발자는 지금은 당시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저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운영체제 안에 메모장이나 계산기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 불만이에요. 웹브라우저까지 다 있으니 사실상 사용자는 다른 제품을 쓸 이유가 없어요. 개발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배포해보는 것인데, 이미 시장에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개발에 나서는 개발자가 적은 것은 당연하죠.”

윈도우가 ‘ZIP’ 형식의 압축 포맷을 기본적으로 지원하게 된 시점이 압축 유틸리티 시장이 사양산업이 된 계기라는 것이 양병규 개발자의 생각이다.

압축 유틸리티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물론, 윈도우가 ZIP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도 한 축을 담당했다. 양병규 개발자는 홈페이지에서 빵집 지원 중단을 선언하며 “이젠 파일 압축하고 풀 일이 거의 없다”라며 “디스크 용량이 엄청나게 커지니 드라이브 공간이 운동장처럼 남아도는 세상이 됐다”라고 말했다. 빵집 개발 중단 선언은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예를 들어 이제 ‘네로(Nero)’를 이용해서 CD를 굽는 사람 없어요. CD 구울 일이 없으니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IT 환경이 바뀐 거죠. 우리가 쓰는 모든 프로그램은 지금 환경에 맞춰 나온 것이고요. 언젠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비슷한 일을 겪게 될 겁니다.”

▲  '빵집' 4.0
▲ '빵집' 4.0

"사용자 입장에서 개발하자"는 개발 철학

빵집에는 독특한 기능이 많다. 예를 들어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누르면, 보고 싶은 메뉴를 사용자가 직접 편집할 수 있다. 또 압축 파일의 속 내용을 미리 보는 미리보기 기능도 빵집의 매력이다. 모두 양병규 개발자가 사용자의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 추가한 기능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인드가 굴뚝같았어요. 빵집도 처음에는 떡집이었고, 제가 직접 쓰면서 느낀 필요를 개발로 구현한 것이니까요. 빵집 외에도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모두 제가 직접 써보고 출시한 것들입니다. 충분한 사용자 경험이 개발자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rel]소프트웨어를 개발에 접근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2가지 정도로 간단히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는 어떤 기능이 사용자에게 먹힐까를 고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기능이 필요하더라는 생각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앞쪽은 기획의 영역이고, 뒤쪽은 공감의 영역이다. 양병규 개발자의 소프트웨어 개발 철학은 사용자와의 공감에 더 가깝다.

하지만 빵집 역사에서 딱 한 가지, 사용자와의 공감이 아니라 개발자의 기획에 의해 탄생한 기능이 있다. 바로 ‘빵폴더’다. 당시 빵집과 경쟁 소프트웨어로 꼽히던 ‘알집’에 영향을 받은 기능이다. 지금도 많이 쓰이는 알집은 첫 출시부터 재치있는 기능으로 주목받았다. ‘새폴더’ 기능이 그중 하나다. 윈도우에서 새폴더를 만들면 조류의 이름으로 된 새폴더가 생성되는 기능이다. 윈도우에서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누르면 메뉴 맨 위에서 ‘새폴더’ 항목을 볼 수 있다.

“압축과는 관계없는 기능인데, 사용자들이 거기 중독이 돼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알집을 제거하고 빵집을 깔아도, 그 새폴더 기능 때문에 다시 빵집을 지우고 알집을 까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빵집도 빵폴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어요.”

처음엔 알집의 새폴더 기능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새폴더를 만들면, ‘카스테라’니 ‘소보로’니 하는 폴더가 생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영 불편했다. 경쟁 제품을 그대로 복제한 기능이니 그럴 만도 했다. 결국, 아내의 말 한마디가 빵폴더 기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도록 했다.

“아내한테 보여주니 딱 한마디로 그러더라고요. ‘자기야, 안 쪽팔려?’ 제가 그랬죠. ‘쪽팔리지, 그런데 어떡해. 사용자들이 원하잖아’라고요.”

아내의 '충격적인' 평가 덕분에 빵폴더는 처음부터 다시 기획됐다. ‘오렌지주스’, ‘생과일케익’ 등 폴더 아이콘 모양을 통째로 바꿔주는 빵폴더는 이렇게 탄생했다. 양병규 개발자는 “빵폴더 자체는 성공적이었다고 본다”라며 “다만 윈도우가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폴더 모양을 다시 그려야 해 일주일 내내 수백개에 이르는 아이콘을 그려야 했던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라고 추억했다.

▲  '빵집' 4.0의 어바웃박스
▲ '빵집' 4.0의 어바웃박스

“언젠가는 딸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빵집에는 독특한 특징이 많았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바로 ‘어바웃박스’다. 빵집의 버전과 개발자를 설명하는 어바웃박스에는 딸이 직접 손으로 쓴 문구가 등록돼 있다. 문구는 이렇다.

“빵집 네 번째 버전 맹근 넘(×)분 양병규(우리 아빠)”

양병규 개발자의 첫째 딸이 7살 당시 손으로 직접 쓴 문구다.

“지금 큰딸이 대학교 1학년이에요. 걔가 7살 때 쓴 문구죠. 뭔가 독창적인 어바웃박스를 만들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어느 날 딸이 크레용으로 낙서를 하는 것을 봤어요. 애한테 가서 그랬죠. “이번엔 ‘맹’ 자 써”, ‘이번엔 ‘근’ 자 써봐’ 하면서요. 한글은 쓰는데, 문장을 만들지는 못했으니까요.”

양병규 개발자가 빵집을 운영하고 유지하도록 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이들이 바로 가족이었다. 빵집 개발을 중단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지난 2012년 둘째 딸의 한마디에 개발 중단 선언을 보류하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딸이 컴퓨터실에 빵집이 깔려 있더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빵집은 양병규 개발자 가족의 자부심과 다름없었다. 현재 중학교 재학 중인 막내아들도 아버지가 빵집 개발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덕분에 양병규 개발자는 가족에게 빵집 지원 중단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단다. 지금은 아내만 알고 있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렇게 비유를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요. 만약 내가 내 딸을 시집보내면 이런 느낌일까, 혹은 내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죠. 아이들도 지원을 중단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많이 서운해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요.”

따지고 보면 빵집은 4.0버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일반 사용자 처지에서는 지원 중단이나 다름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양병규 개발자가 지원 중단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까닭은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다. 개발 중단을 밝히지 않으면, 계속 가슴 한구석에서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그 짐을 덜어내는 것이 공식 선언의 목적이다.

“아주 약간 후회도 해요. 하지만 번복할 생각은 없어요. 이성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후회하는 것은 감정적인 부분이니까요. 아, 정말 개발 중단한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네요. 마음이 아픈데, 이제 잊으려고 노력해야죠.”

이미 개발을 마치고 혼자 쓰고 있던 빵집 5.0버전은 배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빵집 5.0은 64비트 운영체제를 지원하도록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하지만 배포를 하면 마음의 짐을 덜겠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양병규 개발자의 판단이다. 자신의 PC에서도 빵집을 제거했다.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다. 양병규 개발자에게 빵집은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감정적인 무엇이다. 자식과 비슷한 감정을 갖도록 하는 그런 감정이 빵집에 깃들어 있다.

▲  빵집! 니가 있어 행복했었다!(http://blog.naver.com/delmadang/220447632060)
▲ 빵집! 니가 있어 행복했었다!(http://blog.naver.com/delmadang/220447632060)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