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세계적인 과학저널인 <사이언스매거진>에 ‘누가 해적질한 논문을 다운로드 받고 있는가? 모두’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가 게재됐다.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사이언스 매거진에 해적 사이트와 그 ‘우두머리’를 다룬 기사가 다섯 페이지를 장식한 사실은 분명 놀랄 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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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매거진>이 조명한 해적 사이트는 하루 수만명의 연구자가 방문하는 논문 아카이브 서비스인 ‘사이허브’다. 학술 논문의 ‘파이어리트 베이'로도 불리는 곳이다. 디지털 논문 판매로 몸집을 키워온 글로벌 논문 출판사들엔 그야말로 눈엣가시인 사이트다. 실제로 학술 전문 대형 출판사 엘스비어는 지난 2015년 6월 사이허브를 저작권 위반으로 미국 뉴욕지방법원에 고소했다. 그리고 사이허브의 운영자인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의 해명을 요구했다. 엘바키얀은 당시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엘스비어 입장을 반박했다.

“엘스비어가 이들 논문의 창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엘스비어 웹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논문은 연구자들이 쓴 것이다. 연구자들은 엘스비어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 이는 창작자들이 팔린 만큼 돈을 받는 음악이나 영화 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략) 왜 연구자들은 (돈도 받지 않는데도) 자신들의 논문을 엘스비어에 제공할까? 그렇게 해야 하는 압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스비어는 소위 영향력 높은 저널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저널들에 게재됐다는 커리어를 만들 필요가 있어서다.”

엘바키얀의 항변에도 그해 겨울, 뉴욕지방법원은 사이허브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 따라 사이허브가 사용해왔던 sci-hub.org라는 주소로는 더 이상 접속할 수 없게 됐다.

엘바키얀은 뉴욕지방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대신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 주소지를 여러번 옮기는 수고를 감내했다. http://sci-hub.org → http://sci-hub.io/ → http://sci-hub.bz → sci-hub.cc까지. 지금은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bref desc="토르는 분산 네트워크를 활용해 ‘익명의 섬‘의 구축해왔다. 분산 환경과 암호화 기술을 더해 정보기관 등의 감시활동을 피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핵심은 다시 강조하지만 분산이다. 토르의 뿌리는 미 해군이 개발한 어니언 라우팅이다. 그래서 토르를 분산적 어니언 라우팅 네트워크라고 부른다."]토르 네트워크 [/bref](scihub22266oqcxt.onion)와 http://sci-hub.bz 안착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이허브의 시작

▲  사이허브를 개발한 카자흐스탄 출신 연구자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사진 출처 : Apneet Jolly, CC BY 2.0)
▲ 사이허브를 개발한 카자흐스탄 출신 연구자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사진 출처 : Apneet Jolly, CC BY 2.0)

사이허브는 2011년 카자흐스탄 출신의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이 구축한 디지털 논문 저장소다. 올해 28살인 엘바키얀은 카자흐스탄대 대학원 재학 시절, 자신이 찾던 논문에 접속할 수 없다는데 한계를 느껴 사이허브를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자였던 그는 사이허브 개발 이후 뉴욕지방법원의 명령을 거부하게 되면서 지금은 숨어지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혹시나 모를 신변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뉴욕타임스>가 그를 학술 논문계의 에드워드 스노든이라고 부른 까닭이다.

엘바키얀이 사이허브를 개발한 배경은 특별하지 않다. 여느 평범한 연구자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논문은 인용이 곧 가치인데 인용하기 위해 논문을 찾아보려면 건당 평균 32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엘바키얀은 이 같은 현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연구자가 논문 한 편에 약 30건의 논문을 인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모두 구매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무려 900달러에 달한다. 논문 10편을 발표한다면 9000달러를 오로지 논문 구매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엘바키얀과 같은 저소득 국가 연구자들에게 편당 900달러, 9천달러는 너무나도 높은 지불장벽이다.

물론 도서관이 개인의 논문 구매 비용을 대부분 절감해주고는 있다. 하지만 학술 논문 출판사들이 이용료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면서 도서관들마저 혀를 내두르는 상황이다. 이미 전세계 많은 수의 도서관들이 특정 저널의 온라인 구독을 중단했다. 하버드대나 코넬대도  버거워 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서강대, 경희대, 이화여대 도서관 등 다수의 대학 도서관들이 올해 초 디비피아가 제공하는 일부 학술지의 구독을 중단한 바 있다.

사이허브는 학술지 출판 기업들의 수익 독점에 저항하기 위해 젊은 연구자가 시도한 지식 해킹 실험이다. 지식은 공유될 때 가치가 높아진다는 명백한 전제가 위협받으면서 나타난 저항 운동인 셈이다. 엘바키얀은 <사이언스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사이허브는 인류의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도록 돕고 싶었던 내 꿈의 확장판이다”라며 “학술지 지불장벽은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움직임의 사례”라고 말했다.

사이 허브의 작동 방식

▲  전세계 사이허브 다운로드 요청 분포 지도.(이미지 출처 : <사이언스매거진></div>)
▲ 전세계 사이허브 다운로드 요청 분포 지도.(이미지 출처 : <사이언스매거진>)

사이허브는 현재 4700만 건의 논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자료 식별 코드인 doi 번호를 입력하면 기존 유료 논문 사이트에 게시된 논문 자료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사이허브 측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총 2800만 건의 논문 다운로드 요청이 접수됐다. 다운로드 요청 상위권은 이란,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경제국들이 차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 서울 지역의 다운로드 요청 건수는 12만5000건이 넘는다. 국내 사용자도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는 근거다.

사이허브가 논문을 축적하는 방식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사이언스매거진>의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1차적으로는 개별 연구자들의 논문 혹은 계정 기부에 의존한다. 학술지 출판사 유료 계정을 갖고 있는 전세계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계정을  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허브는 이렇게 수집한 계정으로 논문에 우회 접근하거나 내려받아 아카이브로 구성한다. 논문 아카이브 운영에 요구되는 막대한 서버 비용은 연구자들의 기부로 충당한다. 러시아의 '라이브러리 제네시스' 프로젝트도 사이허브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일부 출판사들은 사이허브 쪽이 연구자들에게 피싱 이메일을 발송해 유료 계정을 탈취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엘바키얀은 “인증서의 출처를 확인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피싱 이메일도 나 자신이 발송한 적은 없다”고 했다.

구축된 논문 아카이브는 분산적 환경에서 관리된다. 사이허브 접근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사이언스매거진>은 “사이허브 서버의 한 곳이 폐쇄되더라도 서비스가 당장 중단되는 일은 없다”라며 “4700만 건의 논문이 여러 곳에 이미 분산 저장돼있어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이허브 의미 ’핵티비즘‘

▲  경희대학교 도서관의 디비피아 일부 학술지 구독 중단 공고문.(이미지 출처 : 경희대 도서관)
▲ 경희대학교 도서관의 디비피아 일부 학술지 구독 중단 공고문.(이미지 출처 : 경희대 도서관)

논문은 전문적 지식이 응축된 연구 결과물이다. 논문의 질이 높아지고 양이 늘어나면 한 사회의 지적 수준도 동시에 깊어지고 넓어진다. 단 조건이 있다. 논문에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이 낮아야 한다. 질 높은 수준의 학술 논문이 양산된다 하더라도 연구자들에게 인용되지 않고 대중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공허한 연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사이허브는 “모든 지식은 널리 확산되고 공유돼야 한다”는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엘바키얀의 도전이다. 말하자면 핵티비즘(해킹+액티비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이허브가 내세우는 3가지 가치를 보면 보다 뚜렷해진다. ▲ 모두에게 열린 지식 ▲ 저작권 없음 ▲ 오픈액세스 등이다. 모두에게 열린 지식이 해킹과 파괴를 의미한다면 저작권 없음은 부정과 저항을 나타낸다.

해킹의 근본 철학은 해체와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개방과 공유와 확산이다. 독점 학술지 출판사는 모방을 거쳐 변형되고 재창조되는 지식의 ‘창조적 순환’ 고리를 끊어버렸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했다. 지식 생태계에 해킹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이허브는 지식 접근의 불평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커와 독점 출판사 간의 싸움이다. 무엇보다 사이허브는 학술지 출판사가 틀어쥐고 있는 지식 아카이브의 접근 독점을 해체하기 위한 해커적 저항이라고 볼 수 있다. 사이허브를 불법 논문 아카이브쯤으로 치부해선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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