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업체들이 모인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 분류 결정에 대해 지속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국내 반영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5월28일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와 공동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분류 결정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WHO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라도 WHO-FIC(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를 통해 수정될 수 있다"라며 "WHO에 반대 의견을 지속해서 전달하고, 한국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반영되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충분히 협의하고 입장 전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WHO는 지난 5월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 장애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ICD-11은 게임 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여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반복하는 게임 행동 패턴으로 정의 내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 분류가 사회에 미칠 영향과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은 "게임을 질병의 하나로 규정하고 국가의 치료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상 문화국가의 원리, 개인의 행동의 자유와 기업활동의 자유, 명확성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 등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임상혁 학회장은 "이번에 통과된 WHO의 의결을 보면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게임을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digital gaming or video gaming)'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그 게임에 있어서도 치료의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가 무엇인지 등이 매우 불분명하다"라고 말했다.

패널 토론에 참석한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질병코드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적 낙인효과가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처럼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있고 닫힌 사회에서는 더욱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강경석 본부장은 "2014년부터 5년 동안 2천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 게임 과몰입 군으로 꾸준히 유지되는 청소년은 1.4%에 불과했으며, 과몰입군에서 일반군으로 금방 되돌아오는 모습을 확인했다"라며 "이를 질병이라고 문제 삼는 것은 어폐가 있으며, 게임 과몰입은 게임의 문제보다 청소년들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가 컸다"라고 밝혔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근거자료와 과학적 증거가 배제된 점 ▲불명확하고 신뢰도가 없는 기준 ▲우울증,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등 다른 공존질환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짚었다.

또 보건복지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최 국장은 "국내에서 명백히 문체부와 의견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지난 25일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를 지지하는 일방적인 발언을 했다"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게임이용장애 민관 협의체에 대해서도 "복지부에서 이미 세팅한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들러리로 참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라며 "객관적이고 공정한 협의체가 구성되려면 복지부나 문체부 부처가 아닌, 국무조정실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전영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은 "게임 중독 현상이 게임의 문제인지 사용자의 특질적·환경적 문제인지 충분한 연구나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으며, 게임이 과의존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관련성은 있지만, 게임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됐다"라며 "게임에 의존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포괄적 이해가 현장에서는 더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게임 개발자 출신 김성회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앞으로 게임이 사회 문제,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쓰레기통이 될까 우려된다"라며 "게임을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 문화 중 하나로 바라봐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또 "이번 위기를 통해 업계가 스스로 반성하고 슬롯머신에 게임 껍데기 씌운 게임이 아닌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게임 업계의 자성을 함께 촉구했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ICD-11은 2022년 1월부터 발효된다. 국내에서는 이르면 2026년 이를 반영한 질병분류체계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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