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플의 디자인 수장 조너선 아이브(조니 아이브)의 퇴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애플은 지난 6월27일(현지시간) 조니 아이브 애플 최고디자인책임자(CDO)가 올해 하반기 중 애플을 떠난다고 발표했다. 조니 아이브는 ‘러브프롬(LoveFrom)’이라는 독립 디자인 회사를 설립해 애플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2일(현지시간) 아이브가 팀 쿡 애플 CEO의 리더십에 대한 실망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 부족 때문에 퇴사했다고 보도했다. 팀 쿡은 이에 대해 이례적으로 해당 보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  | (왼쪽부터) 조니 아이브 애플 CDO, 팀 쿡 애플 CEO
▲ | (왼쪽부터) 조니 아이브 애플 CDO, 팀 쿡 애플 CEO

이처럼 조니 아이브 퇴사를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오는 까닭은 그만큼 아이브가 현재 애플이라는 브랜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애플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아이브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니 아이브가 지난 30년 가까이 정립한 애플의 디자인을 살펴보자.

뉴턴 메시지 패드


1992년 애플에 입사한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이 처음 대중에게 각인된 제품은 ‘뉴턴 메시지 패드’ 2세대다. PDA의 기준을 정립한 제품으로 알려진 뉴턴 메시지 패드는 터치스크린, 스타일러스 펜 입력, 필기 인식 등의 기능을 갖췄다. 뉴턴 메시지 패드는 2세대에 거쳐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보여주며 여러 디자인 상을 받았지만, 비싼 가격 탓에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며, 시대를 앞서 나간 비운의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이맥 G3


‘아이맥 G3’는 조니 아이브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제품이다. 애플의 일체형 PC ‘아이맥’ 시리즈의 첫 모델인 아이맥 G3는 1998년 5월6일(현지시간) 처음 발표됐다. 이날 공개된 아이맥 G3는 CRT 모니터와 마더보드, CD롬 드라이브 등 각종 부속품이 둥근 반투명 청색 플라스틱 케이스 하나에 내장된 모습이다.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올인원 디자인 덕에 책상 위 공간이 정돈될 뿐만 아니라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도 설치가 간편하고 쉽게 쓸 수 있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당시 인터넷을 쓰려면 복잡한 연결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아이맥은 모뎀 선만 연결하면 바로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간소화했다.

아이맥은 애플의 부활을 알린 제품이기도 하다. 애플은 아이맥 출시 이후 수익성이 회복됐으며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아이맥 G4


아이맥 G3가 아이맥의 시작을 알린 제품이라면, 2002년 출시된 ‘아이맥 G4’는 현재 아이맥 디자인의 시초다. 아이맥 G4는 LCD를 적용해 제품 뒷면이 튀어나오지 않은 얇은 모습으로 나왔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디스플레이 외의 장치들을 제품 하부의 모듈에 모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호빵맥’, 해외에서는 ‘해바라기맥’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04년 ‘아이맥 G5’부터는 LCD와 본체를 하나의 케이스 안에 담았으며 L자형 알루미늄 스탠드가 제품을 받치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  | 아이맥의 변천사
▲ | 아이맥의 변천사

 

파워맥 G4


‘파워맥 G4’는 애플의 가장 유명한 디자인 중 하나다. 당시 다른 타워형 PC보다 작고 매끈한 큐브형 디자인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지금 봐도 유려한 투명 아크릴 외관의 큐브형 디자인은 심미적으로 훌륭하지만, 이 같은 디자인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균열 등 제조 문제가 발생했으며, 단가가 높아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다.

맥 프로 2013


2013년 출시된 ‘맥 프로’는 완전히 새로운 원통형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맥 프로는 디자인적인 성취와 별개로 성능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예쁜 쓰레기통’이라고 혹평을 받으며 확장성, 발열 부분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후 한동안 후속작을 내놓지 않던 애플은 올해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모듈러 방식으로 설계된 새 맥 프로를 선보이며 전작의 실패를 발판 삼아 제품 확장성을 높이고, 발열을 개선했다.

아이팟


‘아이팟’은 2001년 첫 출시 직후 MP3 플레이어 계의 ‘필수템’이 됐다. 휠 디자인을 통해 수 많은 곡 리스트를 쉽게 스크롤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제품으로, 휠 디자인은 아이팟의 상징과 같다. 국산 MP3 플레이어의 자존심 아이리버가 사과를 깨무는 도발적인 광고를 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후엔 아이팟이 남았다.

아이폰


▲  | 아이폰 1세대와 아이폰7
▲ | 아이폰 1세대와 아이폰7

아이팟은 전조에 불과했다. 2007년 모습을 드러낸 ‘아이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시장에 안착시키며 애플을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아이폰은 3.5형 정전식 멀티 터치스크린을 도입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스마트폰 UX·UI 개념을 정립했다.

이른바 ‘아이폰 감성’ 얘기도 손으로 직접 만지는 인간적인 감성이 기계에 녹아들었다며 불거져 나왔다. 터치스크린 도입으로 물리 버튼을 최소화한 만큼 디자인 측면에서도 미니멀한 감성이 녹아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만큼 손가락 터치 방식의 조작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11년 동안 21개 모델이 출시돼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애플을 대표하는 제품이 됐다.

아이패드


아이폰 이후 조니 아이브와 애플 디자인팀은 아이폰과 맥북 중간에 ‘아이패드’를 설계한다. 아이패드는 넓게 봤을 때 뉴턴 메시지 패드의 컨셉을 가져오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태블릿으로 만들어졌다. 2010년 처음 출시된 아이패드는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도전했던 태블릿 제품을 처음으로 대중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제품이다. 아이폰의 직관적인 사용성을 태블릿 포맷에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쉬운 사용성을 지향하며, 큰 화면에서 웹 브라우징과 영상 감상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아이폰과 다른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iOS7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은 하드웨어 제품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특히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 ‘iOS7’에는 조니 아이브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집약됐다. 이전 iOS 책임자인 스콧 포스톨이 추구하던 스큐어모피즘 디자인을 완전히 걷어낸 모바일 UX·UI로 평가받는다. 스큐어모피즘은 사실적인 시각적 효과를 중시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애플의 전자책 앱 ‘아이북스’는 실제 책장에 책이 꽂혀 있는 듯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하지만 스큐어모피즘에 대해 디자인적으로 불필요하고 복잡하다는 단점이 부각되면서 조니 아이브가 관여한 iOS7 이후 전반적인 앱 아이콘 및 애플 앱 디자인이 간결해졌다.

맥북에어


▲  | ‘맥북에어’의 첫 등장 (출처: 플리커, George Thomas, CC BY 2.0)
▲ | ‘맥북에어’의 첫 등장 (출처: 플리커, George Thomas, CC BY 2.0)

10년 전, 스티브 잡스는 서류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주인공은 ‘맥북에어’다. IT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면 중 하나다. 맥북에어는 노트북의 새 시대를 열었다. 맥북에어가 준 충격은 10년 뒤인 지금까지 노트북 트렌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모든 노트북 제조사들이 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만들기 위해 달려들었다.

당시 시장에 출시된 얇고 가벼운 노트북은 8형 혹은 11형의 작은 화면 크기에도 불구하고 두께는 2.5cm, 무게는 1.36kg에 육박했다. 대부분은 풀사이즈 키보드를 탑재하지도 않았다. 반면 맥북에어는 13.3형의 화면 크기에 두께는 1.9cm로 줄였고 무게는 1.36kg을 유지했다. 가장 얇은 부분의 두께는 0.4cm 수준이다. 올해 애플은 한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맥북에어의 부활을 알렸다.

애플워치


애플워치는 스티브 잡스 사후에 새롭게 추가된 첫 애플 제품군이다. 조니 아이브 개인적으로도 열정을 쏟은 프로젝트로 알려졌으며, 애플워치는 현재 롤렉스를 꺾고 전세계 1위 시계 브랜드가 됐다. 기능을 앞세운 초기 스마트워치들과 달리 용두 중심 인터페이스와 다양한 워치페이스, 시계줄 옵션 등 시계를 차는 경험에 초점을 맞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느리고 복잡했던 1세대 제품의 단점을 개선하고, 헬스케어 분야에 집중해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에어팟


에어팟 역시 스티브 잡스 사후 새롭게 개척한 제품군이다. 2016년 출시 초기에는 콩나물을 닮은 익숙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았다. 이어팟에서 선만 자른 디자인, 전동 칫솔 디자인 등으로 놀림을 받았지만, 현재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거리에서 에어팟 사용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휴대용 케이스에 넣으면 바로 충전되고, 제품을 꺼내면 아이폰과 바로 연결되는 편리한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이 실사용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나비식 키보드 / 매직마우스2 / 애플 펜슬 1세대


▲  | (왼쪽부터) 가위식, 나비식 키보드 메커니즘
▲ | (왼쪽부터) 가위식, 나비식 키보드 메커니즘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나비식 키보드’, ‘매직마우스2’, ‘애플펜슬 1세대’ 등은 애플 사용자 사이에서 큰 혹평을 받았다. 나비식 키보드는 2015년 맥북부터 적용된 애플의 새로운 키보드 메커니즘이다. 키를 지지하고 튕겨주는 구조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위식에서 나비 날개 모양 구조로 변경해 키가 눌리는 높이를 크게 낮추고 키캡을 얇게 구현해 전체적인 제품 두께를 줄였다. 하지만 얕은 키감 탓에 호불호가 크게 갈렸고, 무엇보다 키캡에 먼지가 껴서 키가 걸리는 문제, 수리하기 어려운 디자인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매직마우스2와 애플펜슬 1세대는 불편한 충전 방식 때문에 비판받았다. 매직마우스2는 제품 밑에 충전 포트가 있어 충전 중에는 사용할 수 없는 구조로 설계됐다. 애플펜슬 1세대는 아이패드 하단 충전 포트에 끼워 충전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부채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웃음을 샀다. 애플펜슬 2세대는 ‘아이패드 프로 3세대’에 측면에 자석식으로 부착해 충전하도록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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