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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넷플릭스
▲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설국열차'가 가 지난달 25일 전 세계 190개국 시청자와 만났다.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윌포드 인더스트리가 만든 거대한 열차 속 계급간 갈등'의 세계관에 '수사극'이 가미됐다. 영화와 다른 설정의 넷플릭스 판 설국열차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윌포드 인더스트리


드라마 '설국열차'는 영화보다 원작 프랑스 만화의 세계관에 가깝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 '길리엄(존 허트 분)', '남궁민수(송강호 분)', '요나(고아성 분)',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 등 영화 속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트로(시작화면)부터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판 설국열차는 윌포드 인더스트리가 만든 열차의 계급사회라는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인물과 내용에 다양한 변주를 줬다.

▲  영화 속 커티스(왼쪽)와 드라마 주인공 레이턴. /사진=CJ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갈무리
▲ 영화 속 커티스(왼쪽)와 드라마 주인공 레이턴. /사진=CJ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 갈무리

영화 속 '윌포드(애드 해리스 분)'는 커티스가 꼬리칸을 넘어 엔진에 다다랐을 때 정체를 드러내지만 드라마의 경우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남겼다. 시청자의 혼란은 1화 막바지에 '베넷 녹스(이도 골드버그 분)'가 '멜라니(제니퍼 코넬리 분)'에게 "미스터 윌포드"라고 말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멜라니=윌포드'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는 의견과 윌포드 인더스트리 직원들의 인사법이라는 가정이 양립하고 있다.

'윌포드'를 바라보는 시선도 사뭇 다르다. 영화에서 윌포드는 '경외의 대상'이자 열차를 움직이는 동력, 즉 '절대자' 위치로 묘사된다. 영화에서는 꼬리칸을 제외한 승객들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남궁민수가 엔진의 문을 열기 전 마주하는 위협적 상황을 비춰볼 때 윌포드를 절대자로 숭배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드라마는 등급별로 나눠진 승객들이 저마다 윌포드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며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계'임을 묘사했다. 꼬리칸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해 두려워 하면서도 변호사를 고용해 사건을 직접 해결하겠다는 승객이 등장한다. 윌포드를 맹신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윌포드를 대변하며 2인자로 그려진 멜라니.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 윌포드를 대변하며 2인자로 그려진 멜라니.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윌포드 인더스트리의 직원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꼬리칸 승객을 대하는 태도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가 직원과 승객간 수직적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드라마의 경우 생존에 목숨을 건다. 멜라니와 베넷 녹스는 영하 10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열차 수리를 위해 방한복을 입고 파손된 기내를 점검한다. 영화의 설정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전개다.

투쟁극 vs 퓨전 장르


윌포드 인더스트리 속 설정만 봐도 영화와 다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드라마 설국열차는 다양한 지점에 변주를 줬다.

큰 틀부터 살펴보면 장르의 차이를 꼽을 수 있다. 영화는 꼬리칸 혁명을 통한 계급사회의 모순을 강조한 일종의 '투쟁극'이다. 기후 이상으로 인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세계 멸망 이후의 세계)'를 전면에 배치한 후 계급간 갈등과 투쟁을 녹여냈다.

드라마도 같은 배경으로 출발하지만 영화에는 없었던 살인사건의 진범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추가됐다. 영화 속 커티스가 열차 맨 앞칸까지 도달하는 목적을 위해 달렸다면 드라마의 '레이턴(다비드 디그스 분)'은 '꼬리 칸 혁명'과 '진범 찾기'라는 두 가지 목표를 완수해야 한다. 레이턴이 전직 경찰로 설정된 만큼 새로운 사건과 마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화에는 없던 인물 간 로맨스와 관계의 변화도 드라마를 관통하는 변수다.

▲  드라마에서도 윌포드 인더스트리를 상징하는 심볼이 등장한다.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 드라마에서도 윌포드 인더스트리를 상징하는 심볼이 등장한다.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차이점을 초월하는 '설국열차 유니버스(세계관)'다. 영화 속 열차는 총 60칸(1.5㎞)으로 구성된 반면 드라마에서는 1001칸(19㎞)의 열차가 등장한다. 드라마(2021년)와 영화(2031년)의 시점이 10년 차이를 두고 있음을 감안하면 두 개의 열차가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각각 운행되고 있다는 가설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화에서도 두 개의 설국열차가 있다는 설정을 비춰볼 때 드라마는 영화의 '프리퀄(오리지널 작품의 앞부분을 다룬 속편)'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넷플릭스는 매주 월요일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할 예정이다. 시즌1 전체 에피소드 가운데 3화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나온 단서만으로는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넷플릭스의 설국열차를 더욱 흥미롭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원작 만화에 가까운 이야기를 어떻게 변주했을지 들여다보면서 상대적으로 입체감을 살린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 변화가 키포인트다. 드라마의 외투를 입고 긴 호흡으로 그려낸 넷플릭스 판 설국열차는 오늘도 천천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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