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가상자산 투기와 같은 검은 요소들이 더 널리 알려져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실제 블록체인이 활약할 수 있는 분야는 우리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본 코너에서는 기술적 관점에서 블록체인이 가져올 변화 및 사례를 통해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재조명해봅니다.

▲  사진=픽사베이
▲ 사진=픽사베이

25.6%. 지난 1년간 한 차례 이상 기부해 본 우리 국민의 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향후 기부 의향이 있는 국민은 응답자의 39.9%로 2017년 41.12%와 비교해 낮아진 수치를 보였다. 이어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 눈에 띄는 것이 ‘기부 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14.9%)’인데, 비중에 큰 변화가 없는 타 항목들과 달리 신뢰성이 문제라는 응답은 2017년 대비 6%p나 오른 수치를 나타냈다. 현재 기부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많은 기부 플랫폼의 문제는 기부금을 보내도 정작 그중 얼마가 불우이웃에게 전달됐는지 구체적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체에서 책정한 수수료나 운영비 비중도 얼마인지 깜깜이인 경우가 많다. 일부지만 처음부터 아예 사기를 목적으로 둔 단체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2017년 실태가 공개된 ‘새희망씨앗’이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2014년부터 수년간 128억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모금했으나, 모금액의 98%인 126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으로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기부 문화가 다시 확대되는 데 필요한 건 근본적인 신뢰 회복이다. 그리고 ‘신뢰’는 블록체인이란 기술과 가장 친숙하게 맞닿아 있는 개념으로, 미래 블록체인이 바꿀 주요 분야 중 하나로 기부가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

블록체인을 구성하는 디지털 장부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여러 참여자(노드)가 모두 동일한 장부를 나눠 갖고, 변경 사항이 있을 때마다 모두가 동시에 내용의 합리성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록 확정에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고, 또 장부(블록)는 이전 블록에 붙여 이어지도록 만들어지므로, 한번 기록이 끝난 장부는 이후 절대로 수정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블록체인에 기록된 내용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되는 투명성도 신뢰성과 함께 블록체인을 상징하는 주요 특징이다.

▲  빈틈 없이 이어진 블록체인 장부는 조작할 수 없다 / 사진=픽사베이
▲ 빈틈 없이 이어진 블록체인 장부는 조작할 수 없다 / 사진=픽사베이

전통 기부 시스템의 한계를 혁파하다

이런 신뢰와 투명성은 모든 기부 플랫폼에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할 요소다. 블록체인이 기부를 바꿀 수 있다고 설명되는 지점이다. 쉽게 말해 내가 낸 기부금 기록이 기존의 일반 데이터베이스(DB) 대신 블록체인 기반 DB에 저장되게 되면, 이름과 일시, 기부금액 등 모든 주요 데이터에 대해 제3자는 쉽게 손댈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또 해당 기부금이 어딘가로 이동하게 된다면(불우이웃 전달, 혹은 횡령)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도 블록체인 장부 위에 영구 기록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기부자는 블록체인상에서 해당 내역을 직접 조회할 수 있으니 언제든 외부의 감시가 이뤄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부 단체의 손길을 최소화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기부할 수 있는 P2P 기부 시스템도 블록체인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블록체인 응용 기술 중 하나인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일종의 ‘조건문’으로,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조건이 시스템상에서 성립되면 사람의 개입 없이 해당 내용이 자동으로 실행되도록 하는 기능이다.

만약 기부 플랫폼에서 도움이 필요한 대상자를 검증, 선택한 뒤 시스템에 ‘OO 만큼의 기부금이 모이면 OO%를 OO이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의 스마트계약을 걸어 두면 조건이 충족됐을 때 기부금은 즉각 정해진 사람에게 보내지게 된다(쉬운 이해를 위해 기부금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플랫폼 정책에 따라 현금이 아니라 물건, 가상자산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시스템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와 운영비가 줄어들고(기부 수수료 감소), 단체가 임의의 대상만을 지정해 기부금을 몰아주는 등의 행위도 근절할 수 있게 된다. 기부자도 기부 대상이 보다 명확해지므로 이 또한 기부의 신뢰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기부에 블록체인을 접목하는 것만으로도 기존 기부 시스템이 지닌 약점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2022년, 정부 주도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나온다

최근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부 플랫폼들도 속속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예로 국내에선 이포넷이 개발·서비스 중인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체리(Cherry)’가 있다. 기부자가 결제한 기부금을 플랫폼이 ‘체리 포인트’로 1:1 변환해주면 기부자가 이를 다시 모금 캠페인을 통해 기부하고, 나눔 단체는 모금 받은 체리포인트를 플랫폼에서 다시 원화로 정산받는 방식이다. 최근 론칭 9개월 만에 2억원의 누적 기부금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  체리 블록체인 기부 플랫품 구조 / 자료=이포넷
▲ 체리 블록체인 기부 플랫품 구조 / 자료=이포넷

고무적인 부분은 블록체인을 통한 기부에 젊은 세대가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포넷은 “국내 기부자의 80%가 40대 이상에 집중돼 있었던 것(2019년 국세청 통계)과 비교해 체리 프로젝트 내에서 20~30대 참여자의 비중은 53%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블록체인이란 비교적 신기술에 대해 중장년층보다 젊은층이 더 친밀감을 느끼며, 높은 신뢰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기부 관심도가 낮았던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라 그래도 미심쩍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보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 6월 열린 4차산업위에서 ‘차세대 블록체인 기술 확산 7대 분야’의 하나로 기부를 선정했다. 이 계획에 따라 정부는 2022년까지 기부자로부터 받은 모금을 수혜자에게 전달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기부자가 집행 내역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정부가 직접 블록체인 기반의 기부 플랫폼을 운영하게 된다면 사회적 공익성과 투명성은 보다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주도의 기부 플랫폼 운영은 기존 기업 플랫폼과 비슷하지만 주체가 정부기관이라는 점에서 파급력과 집행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정부 주체의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운영 예상도 / 자료='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부 시스템 연구(20.05.경북대) 논문 내 이미지 재구성
▲ 정부 주체의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운영 예상도 / 자료='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부 시스템 연구(20.05.경북대) 논문 내 이미지 재구성

걸음마 뗀 블록체인 기부 시장…성장 독려해야

이 밖에도 기업/단체 간 협력을 통한 블록체인 기반 기부 시스템 조성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SK C&C는 올해 3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손잡고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체인제트(ChainZ) 기반의 기부 플랫폼 ‘따뜻하게 체인지’ 제공 업무협약을 맺었다. 기존 기부 플랫폼과 달리 1원 단위의 소액 기부도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블록체인기술연구소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블록체인 기부 플랫폼 ‘희망브리지 마크’를 지난 6월 정식 출시했다. 안드로이드, 아이폰 앱마켓에서 해당 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기부가 필요한 수혜자가 직접 기부 요청을 하면 기부자가 사연을 선택해 직접 기부하는 P2P 소액 기부 방식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기부·수혜자들의 모금액과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해 투명성도 높였다.

한편, 2018년 국세통계 기준으로 신고된 기부금은 약 2조8000억원이다. 블록체인 기부 서비스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단계이니 아직 블록체인을 통한 기부액은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따뜻한 나눔의 기부 문화도 조금 더 장려해야 한다. 나아가 이젠 기부 단체들도 ‘기부에 동참해달라’는 단순한 메시지 대신, 블록체인 도입 등으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기부 시스템 마련과 의식 전환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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