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과 구본준 고문.(사진=LG그룹)
▲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과 구본준 고문.(사진=LG그룹)

LG그룹이 지주사 ㈜LG의 인적분할을 통한 신규 지주사 설립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룹 내 두 개의 지주사를 만들어 사업전문화를 꾀한다는 입장인데요. 큰 틀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나, 결국 계열분리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구본준 고문이 본인이 경영할 회사들을 떼갖고 나가 관계를 끊는 그림이죠.

다만 ‘인적분할=계열분리’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향후 계열분리를 위해 인적분할 방식을 선택한 것이지 인적분할 자체가 계열분리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인적분할이 밑작업이라고 치면 이후 지분관계 해소 및 공정위 승인 등 본격적인 계열분리를 위한 추후 작업들이 남아 있습니다.

인적분할 시 어떻게 바뀌나

우선 인적분할을 통해 향후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뀔지 살펴보겠습니다. LG그룹의 화학업체 LG화학은 최근 배터리부문을 물적분할 방식으로 분사해 논란을 겪은 적이 있죠. 인적분할은 물적분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설법인이 존속회사 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상 동일 주주의 동일한 지배를 받는 것이죠.

▲  LG그룹 인적분할 시 예상 지배구조.
▲ LG그룹 인적분할 시 예상 지배구조.

위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LG 외에 ㈜LG신설지주라는 지주사가 새로 생겼죠. 그리고 그 밑에는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실리콘웍스, LG MMA 등 5개 회사가 딸려 있습니다. ㈜LG 와 ㈜LG신설지주 사이에 지분관계는 없습니다. ㈜LG가 인적분할 시 보유한 자사주만큼 ㈜LG신설지주에 대한 지분을 자동적으로 확보하긴 하는데요. 주식 수가 얼마 되지않아 사실상 지분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적분할의 경우 분할회사가 존속회사에 편입되는데요.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로부터 동일한 지배를 받습니다. 이는 곧 거꾸로 얘기하면 기존 주주들이 두 회사에 대해 동일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과 같죠. 지난 8월 21일 공시된 ㈜LG의 최대주주등 소유주식 변동신고서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은 ㈜LG 지분 15.65%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있습니다. 인적분할 시 ㈜LG신설지주에 대해서도 똑같이 지분 15.65%를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구 고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구 고문은 현재 ㈜LG 지분 7.57%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LG신설지주에 대한 지배력도 7.57%가 됩니다.

향후 지배력 확대 어떻게?

인적분할 후 계열분리 작업이 남아있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구 회장과 구 고문이 두 개의 지주사 지분을 모두 보유해 지분관계가 다소 꼬여 있는데요. 이를 해소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LG그룹 인적분할 시 구광모 회장, 구본준 고문 지배력 예상도.
▲ LG그룹 인적분할 시 구광모 회장, 구본준 고문 지배력 예상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는데요. LG그룹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두 인물이 서로의 지주사에 대해 보유한 지분을 남기지 않고 말끔히 해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 회장과 구 고문이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번 인적분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결국에는 구 고문이 소유한 ㈜LG 지분 7.57%를 구 회장에게 넘겨주고, 구 회장은 본인이 소유한 ㈜LG신설지주 지분 15.65%를 구 고문에게 이전하는 그림이 예상되는데요. 이 경우 구 고문은 기존 지분 7.57%에 구 회장으로부터 받은 지분 15.65%를 더해 총 23.2%의 지분을 소유하게 됩니다. 반대로 구 회장 역시 ㈜LG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겠죠. 물론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계산들을 모두 생략한 예상이라 실제 지분교환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충분히 결과는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 계열분리를 결정한 이상 구 고문에게 ㈜LG 지분은 현금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죠. 물론 꼭 인적분할 방식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현재 신설 지주사에 편입될 예정인 5개 회사를 모두 지배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적분할을 통해 훨씬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신설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인적분할의 장점은 재상장이 빠르다는 데 있는데요. 내년 3월 이사회 승인을 거쳐 5월 1일로 ㈜LG신설지주가 출범하게 되면 한 달 내에 재상장이 가능합니다. 주식 시장에서 회사의 가치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 고문이 ㈜LG와 ㈜LG신설지주에 대해 각각 7.57%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두 지분의 가치까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분할계획을 보면 ㈜LG와 ㈜LG신설지주의 분할비율이 약 ‘0.912 : 0.088’로 설정됐는데요. ㈜LG신설지주가 상장 후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LG 지분 7.57%가 ㈜LG신설지주 지분 7.57%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구 고문이 가진 ㈜LG 지분 7.57%과 구 회장이 보유한 ㈜LG신설지주 지분 15.65%의 가치를 어떻게 교환할지 문제로도 연결되는데요. 그룹 내부적으로도 현재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관건은 ‘절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서로가 지배력을 확대하는 최선의 방식을 놓고 고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분관계를 정리한다고 해서 계열분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공정위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공정위는 계열분리를 위한 각종 요구 조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텐데요. 물론 이 단계에서 계열분리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진 않겠죠.

아무튼 이번 인적분할 결정으로 계열분리라는 거대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시작된 것은 맞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이 LG그룹 마지막 계열분리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데요.  추후 어떤 식으로 지분관계를 해소하고 이별할지 지켜보는 것도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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