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런닝맨'이다. 방송이 대만 국기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중국 누리꾼들의 ‘한국 예능 트집 잡기’가 또 시작됐다. 저작권료는 전혀 지불하지 않으면서 ‘불매’를 운운하는 황당한 모습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7일 오후 중국의 SNS 웨이보에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만을 중국과 따로 표기한 내용 때문이었다. 지난 6일 방송된 런닝맨에서 출연진은 유명 보드게임 부루마블을 헀다. 게임판에는 대만 국기와 함께 타이베이가, 옆에는 오성홍기가 그려진 베이징이 나왔다.

▲  대만 국기가 나온 런닝맨 부루마블 게임 장면. 중국 불법 동영상에서는 이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 대만 국기가 나온 런닝맨 부루마블 게임 장면. 중국 불법 동영상에서는 이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이를 본 중국 누리꾼들은 런닝맨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겼다고 화를 냈다. 중국은 대만이 자국의 한 지방이고,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런닝맨에 두 개의 국기가 나타나자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웨이보 이용자들은 사과를 요구하며 불매나 시청 중단 등을 언급하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 예능이 선을 넘었다.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불매에 들어간다”, “왜 런닝맨은 중국 시청자를 존중하지 않는가. 앞으로 시청하지 않겠다”, 이제 월요일마다 올라오는 런닝맨을 기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항의하고 있다.

10원도 지출하지 않으면서 불매 운운

그러나 이러한 불매운동 등의 움직임에 국내 누리꾼들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런닝맨이 중국 시장에서 거두는 수입은 한 푼도 없다.

현재 런닝맨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명령) 이후 정식으로 중국 내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2017년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된 이후 중국은 한류 스타의 출연을 막거나 방송에서 한국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  중국 인터넷에 불법으로 번역돼 올라오는 '런닝맨' 영상본
▲ 중국 인터넷에 불법으로 번역돼 올라오는 '런닝맨' 영상본

중국이 런닝맨을 정식 수입 하지 않으니 수출액은 ‘0원’이다. 또한 한국 연예인의 중국 프로그램 출연이나 콘서트 등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런닝맨이 중국 시장에서 거두는 수익금도 없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현재 런닝맨의 유튜브 수입은 월 2억4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독자의 국가 비중에서 중국은 ‘제로’다. 중국은 유튜브가 허용되지 않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런닝맨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불법적인 통로뿐이다.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비리비리(bilibili)에는 월요일마다 불법으로 제작된 런닝맨 동영상이 올라온다. 일부 제작자가 일요일에 한국에서 방송되는 런닝맨을 빠르게 번역해서 다음 날 업로드한다.

▲  중국 동영상플랫폼 '비리비리'에 올라온 런닝맨 영상
▲ 중국 동영상플랫폼 '비리비리'에 올라온 런닝맨 영상

불법이라지만 규모가 엄청나다. 심지어 ‘2010-2020 슈퍼 클리어 컬렉션’이라는 제목의 런닝맨 묶음 영상에 들어가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총 328편의 영상을 제공한다.

런닝맨의 인기를 반영하듯 해당 불법 영상의 조회 수는 수십 만에서 수천 만에 이른다. 불법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놓고 무시한다. 영상 게시자는 “지속적으로 (런닝맨을) 업로드 중이지만 저작권 사유로 삭제 속도가 빠르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하고 있다.

의무는 무시하고 권리만 주장하는 중국

중국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대놓고 베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국내외 프로그램 포맷 권리침해 사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한국 예능 프로그램 18편이 20차례나 무단으로 표절이나 도용을 당했다. 이 중 19건은 중국 방송국이 저질렀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다시보기로 시청할 수 없는 KBS의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영상이 빌리빌리에 올라오기도 했다.

▲  중국 인터넷에 불법으로 올라온 KBS의 '나훈아 콘서트' 영상본
▲ 중국 인터넷에 불법으로 올라온 KBS의 '나훈아 콘서트' 영상본

중국의 저작권 침해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비용 정산도 문제가 많다. 지난 2016년 5월부터 6개월간 제작된 중국판 '무한도전' 시즌2는 중국 제작사 측이 계약금 일부만 지급한 뒤 프로그램 제목을 '우리의 도전'으로 바꿔 고유 창작물이라고 주장하는 형편이다.

법에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MBC는 지난 4월 중국판 '복면가왕' 수익 배분 소송에서 중국 제작사를 상대로 한 법정 투쟁 끝에 최종 승소했다. MBC에 2주 안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현지 제작사는 중국 상해 인민법원에 공탁하는 꼼수를 써서 지급을 거부했다.

중국의 저작권 인식은 이처럼 희박하고, 제대로 된 가치를 치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 방송에 자국의 시각을 강요하고, 불매나 시청 중단을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권리를 주장하려면 의무를 다해야 하는 법이다. 그것도 일방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상식을 무시하고 주장만 앞세우는 지금 중국의 모습은 안타깝게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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