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신기술과 서비스 등의 시장 출시 및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일정 조건 하에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인 ‘ICT(정보통신기술)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된 지 3년이 됐다. 관련 현황과, 성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 칠링키친 푸드트럭용 공유주방. (사진=칠링키친)
▲ 칠링키친 푸드트럭용 공유주방. (사진=칠링키친)

“규제샌드박스 신청 당시 고용인원이 2명이었는데 지금 15명까지 늘었다. 매출도 4억5000만원 정도에서 올해 13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함현근 칠링키친 대표)

‘칠링키친’은 푸드트럭용 공유주방 임대를 비롯해 푸드트럭 제작 및 창업 컨설팅 등의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이다. 그런데 푸드트럭 사업자들에게 공유주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그동안 불법이었다. 식품위생법상(관련부처 식약처) 푸드트럭 사업자는 △푸드트럭이 아닌 장소에서 조리행위를 할 수 없으며 △한 개의 주방 및 시설을 다수의 영업자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칠링키친은 ICT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 신청을 했고, 지난해 6월 승인을 받았다. 이후 △위생관리책임자 지정·운영 및 공유주방 운영 가이드라인 준수 △공유주방 이용자는 서울·경기도 내 푸드트럭 영업권한이 있어야 하며 동시간 대 5팀(10명)으로 제한 등의 조건 아래 올해 3월 사업을 시작했는데 매출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다.

사실 비슷한 공유주방 서비스로 맨 처음 실증특례를 받은 곳은 ‘위쿡’으로 지난 2019년 7월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들을 포함해 총 7곳의 공유주방 관련 사업체들이 실증특례를 받았다. 이를 통해 공유주방 정의·업종 신설 및 위생기준 마련을 위한 식품위생법 개정이 이뤄졌는데, 30일부터 시행됐다. 이제 정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ICT 규제 샌드박스 주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총 135건의 규제 특례가 처리됐는데 이 가운데 76건이 시장에 출시됐다. 올 4분기 누적 기준 매출액은 688억원, 신규고용 1549명, 투자유치는 803억원이다. 

▲ ICT 규제 샌드박스 추진 성과. 올 4분기 누적 기준. (사진=블로터)
▲ ICT 규제 샌드박스 추진 성과. 올 4분기 누적 기준. (사진=블로터)

하지만 이러한 실적에 큰 의미를 두긴 힘들다. 규제 특례 처리가 돼도 사업자들이 시장 출시를 위해 상당 기간 준비를 해야 하고, 출시를 했더라도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특히 실증특례의 경우 제도 개선이 이뤄질지 모르지만 일단 제한적으로나마 소규모로 가능성이 있는 사업인지 해보고 위험성 여부 등을 검토해보기 위한 기회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관련 시장 규모가 크지도 않다.

오히려 다양한 혁신적 기술 및 서비스들이 출시되며 신규 시장을 창출하고, 관련 사회적 효과를 낸 것에 주목할만 하다. 대표 사례로 △공공·민간기관 모바일 전자고지(305개 기관에서 768종, 1억2300만건의 우편 고지서를 모바일로 대체·발송) △공유주방 서비스(약 74억원 상당의 초기 창업비용 절감) △고요한 모빌리티 플랫폼(청각장애인 등 취약계층 36명 운행기사로 고용)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효과에 따라 실제 제도 개선으로 기술 및 서비스 등이 정식 제도권 안에 편입된 것도 성과다. 총 135건의 승인 과제 가운데 44건에서, 총 28개의 관련 제도가 개선됐다. 앞서 언급한 공유주방과 같이 ‘법률 개정’으로 제도를 개선한 사례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2022년 6월 시행 예정, 직접 고용 기반 가사서비스 제공 플랫폼 ‘홈스토리생활’ 실증특례 관련)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2022년 1월 시행 예정, 택시 동승 중개 서비스 ‘코나투스’ 실증특례 관련) 등이 있다.

지난 29일엔 ‘코액터스’, ‘레인포컴퍼니’, ‘파파모빌리티’ 등 실증특례로 차별화된 모빌리티 사업을 하던 업체들이 정식 허가를 받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따라 국토교통부(국토부)가 3곳의 플랫폼운송사업 허가심의를 의결한 데 따른 것이다.

법령 개정 없이 유연한 법령해석, 정책권고 등 ‘적극행정’을 통해서도 문제가 해결됐다. 지난 2019년 2월 실증특례를 받은 ‘휴이노’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 건 지난해 2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으로 의료기관에서 전송된 환자 정보를 통해 내원을 안내하고 내원 시 전송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허용된 데 따른 것이다. 전동킥보드 무선충전 서비스 사업자인 ‘SKC’는 지난 9월 경찰청의 시·도 경찰청장 허가 하에 보도 등에 무선충전 스테이션 설치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과 함께 실증특례를 받을 수 있었다.

‘시행령, 규칙, 고시 등의 개정’을 통해 제도가 개선되기도 했다. △태양광 발전 모니터링 서비스(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 △스마트 전기자동차 충전콘센트(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 전력량계 기술기준 개정) △유상 여객운송 및 선결제 택시(여객자동차법 및 하위법령 개정) △비대면 이동통신 가입 서비스(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 △GPS 기반 앱 미터기(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 등이 사례다.

▲ ICT 규제 샌드박스 관련 주요 제도 개선 내용. (사진=블로터)
▲ ICT 규제 샌드박스 관련 주요 제도 개선 내용. (사진=블로터)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창업자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단지 내 자동차대여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타운즈’는 애초 샌드박스 승인을 목표로 2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했다. 일례로 특례를 받기 전부터 새로운 보험 상품까지 만들어놨다. 특례를 받으면 이용자 보호를 위해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새로운 서비스인 경우 보험 상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해당 서비스는 자동차 대여를 희망하는 입주민이 자동차 대여사업자로 등록해 자신의 유휴 차량을 다른 입주민에게 단기간 대여하는 모델인데, 현행 여객자동차법상 불가능했다. 이에 △사업 개시 전 보험 가입 및 차량 점검 △임차인에 대한 운전자격 삼중확인 △운전자 알선 불가 및 사업자·임차인 간 분쟁해결 방안 수립·이행 등의 부가조건 하에 실증특례를 지난 4월 부여받았다. 이어 지난 10월 서비스를 론칭했는데, 서비스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최윤진 타운즈 대표는 “애초 법을 우회적으로 해석해 변칙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 샌드박스부터 끝내고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체계적으로 준비해 신청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한상공회의소(무료컨설팅), 과기정통부(주관부처)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이후 이해관계 부처인 국토부와 여러 번 만나면서도 우려하는 부분들에 공감하고, 추가적으로 함께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하며 만들어 나갔기에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샌드박스 자체가 기업이 돈을 벌게 해 준다기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고, 해보고 국민의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관련 법을 개정해준다는 것이 핵심 취지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제도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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