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진=SK스퀘어)
▲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진=SK스퀘어)

"ARM 인수 관련,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RM은 굉장히 중요한 회사다. 특정 누군가가 (인수) 이익을 다 누리도록 (반도체) 생태계 안에 있는 기업들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분을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의 발언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30일 SK하이닉스 주주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전했다.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 28일 SK스퀘어 주주총회에서도 "ARM도 사고 싶다. (SK스퀘어가) 투자 회사니까 꼭 최대 지분을 사서 컨트롤하는 걸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왜 '공동 인수' 강조했을까
"반도체 생태계가 특정 업체의 ARM 단독 인수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공동 인수를 추진한다"는 박정호 부회장의 발언은 최근 '엔비디아-ARM' 이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는 ARM을 400억 달러(약 48조3680억원)에 인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각국 규제 당국이 '독점 금지'를 이유로 인수합병(M&A)을 승인 거부하면서 딜은 최종 무산됐다. 

'독점'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RM은 반도체 칩 설계 업체다. 단순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닌, 시장을 이끄는 설계 업체다. 2020년 기준 모바일 칩 설계 시장 점유율 90%, 태블릿 설계 시장 점유율 85%를 차지하고 있다. 

ARM은 현재 애플, 퀄컴, 삼성전자, 엔비디아 등 다양한 반도체 업체에 AP(칩 설계)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업체가 ARM을 인수하면 현재 비즈니스 구조에 문제가 생긴다. ARM 칩 설계 제공에 특정 업체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식당과 식자재 납품 업체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금까지 4곳의 식당들이 A 업체에서 식자재를 제공 받았다. 하지만 식당 한 곳이 A 업체를 인수하는 순간 현재의 비즈니스 구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엔비디아-ARM' 인수 무산의 핵심 쟁점이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엔비디아의 ARM 인수 계획 소식이 전해진 뒤 업계에선 크게 두 가지를 우려하며 반발했다. 엔비디아가 ARM이 제공하는 설계사용료를 높이거나 특정 업체에 대해서는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앞선 사례를 고려하면, SK ICT연합(SK스퀘어·SK하이닉스·SK텔레콤) 단독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정호 부회장이 '공동 인수'를 언급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공동 인수 후보, 누가 있을까
박정호 부회장의 말처럼 실제 인수가 진행될 경우 SK ICT연합 중 누가 주체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앞선 '엔비디아-ARM' 인수 무산 사례와 반도체 생태계를 고려하면 단순 FI(재무적 투자자)들과 구성된 컨소시엄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과 손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이 때문에 최근 진행된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메모리 사업(현 키옥시아) 인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베인캐피털 등 재무적투자자(FI)들과 컨소시엄을 이뤄 도시바 메모리 사업을 인수했다. 최근 진행된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는 별도 투자자 없이 진행됐다. 

엔비디아와 SK ICT연합을 제외하면 반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업체 중 ARM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인텔이 유일하다. 

펫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로이터와 '인텔 인베스터 데이 2022'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펫 갤싱어는 이 자리에서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이 구성되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또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이 구성되고 있다는 점도 전했다. 펫 갤싱어는 “ARM은 인텔 파운드리 사업 어젠다로 만들수 있다”며 “컨소시엄 구성 시 어떤 형태든 참여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이미 고유 설계 아키텍처인 X86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파운드리 부문을 최근 강화하고 있는 만큼, 파운드리 고객사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히기 위해 ARM 인수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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