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션 2022에서 통합 우승한 한국의 '고진감래'팀. (왼쪽부터)장동훈, 박찬수, 김준성, 김성훈. (사진=스캐터랩)
▲ 정션 2022에서 통합 우승한 한국의 '고진감래'팀. (왼쪽부터)장동훈, 박찬수, 김준성, 김성훈. (사진=스캐터랩)

지난 11월6일, 유럽 최대 규모의 해커톤 '정션(Junction) 2022' 현장에서 최종 우승팀에 한국 개발자팀이 호명됐다. 해커톤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디자이너 등이 한데 모여 짧은 시간 내에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대개 1~2일의 시간이 주어지며, 그 안에 주어진 주제로 기획-개발-발표 준비까지 끝나야 하므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다방면에서 출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이번 정션 2022는 전세계에서 1300명, 300여팀이 출전해 48시간 동안 자웅을 겨룬 대규모 해커톤이다. 이들을 꺾고 통합 우승을 차지한 건 평균 나이24.2세의 한국 청년들로 구성된 'BitterSweet(고진감래)'팀. 당사자들도 "우승은 상상도 안 되고, 배고프니 치킨이자 먹자"며 담소를 나누다 시상식 현장에 끌려간(?) 이변의 우승이었다.

이 대회에서의 고진감래팀의 수상작은 그림일기 쓰는 인공지능(AI) '하루'다. 그저 사람들이 쓰고 싶을,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개발했다지만 그 안에 녹아든 생성AI의 기술적 잠재력과 서비스 스토리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좋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과연 이틀이란 짧은 시간 동안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또 새로운 AI가 시장에 던질 화두는 무엇일까? 11월24일 서울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김성훈(22세), 김준성(24세), 장동훈(24세) 스캐터랩 개발자와 박찬수(27세) 두들린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 고진감래팀이 정션2022에서 AI 그림일기 앱 '하루'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스캐터랩)
▲ 고진감래팀이 정션2022에서 AI 그림일기 앱 '하루'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스캐터랩)

"너 내 동료가 돼라"…고진감래로 도원결의한 4인방
아직 젊은 개발자, 디자이너였기 때문일까? 인터뷰 내내 현장에는 '풋풋함'이 감돌았다. 유명 해커톤에서 우승한 팀 치곤 무게감보다 가볍지만 자유로운 패기 같은 것들이 주로 느껴졌다. 이들이 팀을 결성하고 우승에 이르기까지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8월 앞서 열린 정션2022 아시아 대회 소식을 접한 김준성 개발자가 장동훈 개발자에게 SNS에서 던진 러브콜을 장 개발자가 수락, 곧바로 김성훈 개발자가 합류하고 장동훈이 다시 전 직장 동료인 박찬수 디자이너를 초빙해 팀이 결성됐다. 이들 4인은 이후 한 술자리에서 고진감래(맥주·소주·콜라를 섞은 폭탄주의 명칭)를 나누며 친해졌다고. 급기야 팀명도 고진감래로 정해진 배경이다.

▲ SNS 러브콜과 술잔을 나누며 팀이 완성된 과정. (자료=고진감래팀 제공)
▲ SNS 러브콜과 술잔을 나누며 팀이 완성된 과정. (자료=고진감래팀 제공)

일기와 AI가 만나면 일어나는 일
해커톤 여정은 순조로웠다. 고진감래는 지역 대회인 '정션 아시아 부산 대회'도 1위로 마친 후 우승자 자격으로 유럽 무대에 직행했다. 본선 무대는 6개 트랙, 18개 챌린지로 구성됐고 고진감래는 그중 '정신건강(Mental health)'을 골랐다. 세부적으론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관리 문제에 일기가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응용, AI로 일기를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쓸 수 있게끔 만드는 것에 방점을 뒀다.

여담으로 장동훈 개발자에 따르면 고진감래는 48시간의 시간 중 첫 24시간은 아이템 기획과 잠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후 남은 하루 동안 '불타게 개발'하며 하루를 개발했다고. 이 팀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느껴진 대목이다.

▲ 4인방은 48시간 중 실제 개발에 집중한 시간은 24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진=고진감래팀 제공)
▲ 4인방은 48시간 중 실제 개발에 집중한 시간은 24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사진=고진감래팀 제공)

완성된 서비스명은 '하루'다. 특징은 일반 일기처럼 사용자가 내용을 작성하면 AI가 이를 분석해 일기 내용과 가장 적합한 그림 이미지를 만들어준다는 것.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숙제로 하던 그림일기의 청소년판이다. 그림을 못 그려도 전혀 상관없다. 또 일기를 바탕으로 그려질 그림을 기대하는 재미, 글자에 더해지는 감성, 일기를 찾아보는 편의성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일기 쓰기의 가장 큰 과제인 초반 습관 만들기에 혁혁한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사용자 개인에게 주는 만족감도 있다. 박찬수 디자이너는 "그림일기는 쓰면 쓸수록 이미지가 쌓이는데, 이게 나중에는 사진첩 느낌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이걸 사용자가 돌아보면 시각적인 만족감과 더불어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정을 상기하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성훈 개발자는 "더불어 재밌는 건, AI가 그림을 그려주다 보니 일기쓰기 후 본인이 생각한 느낌과 다르면 일기에 원하는 감정이 담기도록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때 자세히 묘사할수록 이미지도 예뻐지므로 동기가 더해진다"며 "덕분에 시작은 단순한 일기 앱이었지만 하루는 일기 쓰기 습관 형성을 돕는 '넛지 포인트(Nudge point)'가 핵심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하루 앱의 핵심을 이룬 기술은 이른바 '생성 AI'로 불리는 모델이다. 2016년 AI 바둑 '알파고' 이후 AI 산업은 AI가 주어진 데이터를 심층적으로 학습하고 특징 추출과 분석에 특화된 서비스 개발에 특화된 형태로 진화했다. 이는 다양한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디지털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AI 시장은 이제 생성 AI를 통해 새로운 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생성 AI는 기초 데이터 학습이 필요하단 점은 기존 AI와 같지만, AI가 이를 토대로 유사하면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창작물은 도용의 가능성이 없고 사람도 납득할 수준의 온갖 창의적인 결과물이 연속적으로 탄생할 수 있다. 이번 해커톤에서는 이런 특징이 일기에 적절 접목됨으로써 일기의 단점은 최소화하고 장점은 부각시킨 결과로 돌아왔다. 하루가 호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다.

▲ 참고로 하루는 자연스러운 문자 생성에 특화된 GPT-3(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적 자기학습 변환기)와 무료로 AI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란 유명 AI 모델들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사진=스캐터랩)
▲ 참고로 하루는 자연스러운 문자 생성에 특화된 GPT-3(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적 자기학습 변환기)와 무료로 AI 이미지를 생성해주는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란 유명 AI 모델들을 결합해 만들어졌다. (사진=스캐터랩)

서비스 상용화는 아직…대신 희망 봤다
다만 아쉽게도 하루는 현재 '이용 불가 서비스'다. 대회 당시에는 구글 클라우드 측에서 빌려준 계정으로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대회가 끝나니 "서버를 매정하게 닫아버렸다"는 전언이다. 대신 추후 서비스화에 대한 희망은 봤다고 한다.

김준성 개발자는 "대회 직후 한국에 와서도 링크드인 등을 통해 '언제 서비스하냐'는 문의가 많이 왔다. 우리는 못 봤는데 시상 당일에 현장에선 어떤 외국인 참가자가 하루를 보고 '크레이지 아이디어(Crazy idea)!'라고 외치며 머리를 붙잡은 장면도 있다고 하더라. 우린 그저 재미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아이디어였단 점에서 어안이 벙벙했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후기가 좋다 보니 4인방은 현재 사비를 들여서 하루를 살리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하지만 각자 현업에 종사 중이고, 비즈니스 모델 정립 등 현실적 문제들이 따르다 보니 일정은 미정이다.

기술의 고도화도 장기적으로 고민할 부분이다. 생성AI는 고진감래의 하루처럼 예술적이거나 생산성이 뛰어난 서비스 개발에서 높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고품질 결과물이 나오려면 다량의 데이터와 AI의 방대한 연산을 충분히 뒷받침할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요하고, 이는 곧 비용의 문제로 이어진다. 따라서 현재 AI 연구계에선 더 적은 데이터와 인프라로 고성능 생성AI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방향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서비스의 사업화와 더불어 아직은 충분한 수익화 모델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편에선 생성AI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의 명암(明暗)도 궁금해진다. 이들은 어떻게 볼까? 김준성 개발자는 "긍정적으론 영화 '아이언맨'에 나온 AI '자비스' 같은 전천후 비서도 가능할 것이고 AI가 진짜 친구나 선생님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장기적으론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뤄진 사이지만 AI라는 '외계인'이 왔을 때 인류가 어떤 기조를 맞출지, 어떤 혼란이 따를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가야 할 어려움도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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