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6월 열린'캠코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업무협약식. 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주현 금융위원장이다.(사진=금융위원회)
지난 2020년 6월 열린'캠코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 업무협약식. 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주현 금융위원장이다.(사진=금융위원회)

저축은행업계가 개인회생채권(IRL), 신용회복채권(CCRS) 등 부실채권(NPL)을 대부업체에 넘기고 있다. 개인회생·신용회복채권은 법원 또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원금 및 이자를 감면받은 채권이지만 변제하지 못할 경우 채무조정의 효력이 상실돼 '추심'을 받게 된다. 

차주 입장에서는 차라리 채무가 많아 신복위 조정에 실패한 '무담보대출'이 더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추심 기능이 없는 금융공기업인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채권을 관리토록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발생한 개인연체채권이 과잉추심에 노출될 위험을 방지하고 채무자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지난 2020년 출범한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올해 말까지 연장 운영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관계기관, 전 금융권이 협약을 맺어 운영하는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의 매입 대상은 개인 무담보대출에 한정된다. 법원·신복위 채무조정절차 진행 중 채권은 제외된다. 소득부족 또는 비협약채무가 과다해 신복위 채무조정 요건에 미달한 차주들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캠코에 자기 채권을 사가도록 할 수 있다.

이들 차주보다 사정이 보다 나아서 법원과 신복위로부터 조정을 받은 차주들의 채권은 재정상황이 급변해 변제를 하지 못할 경우 채권자의 손에 놓인다. 신복위는 “채무조정의 효력이 상실되면 금융회사의 채권추심이 가능해지고 채무자의 책임은 채무조정 신청 전의 채무내용대로 환원되므로 변제계획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들도 금융당국의 '우산' 속에 있다. 올해 2월부터 저축은행의 건전성을 고려해 개인사업자 연체채권을 새출발기금 외 캠코와 유동화전문회사 등 기관에도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사업자 차주가 과잉추심 및 채무조정 기회상실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저축은행들은 일반신용연체 채권은 캠코와 새출발기금에 매도하고, 개인회생·신용회복채권은 대부업체에 지속 판매 중이다. 저축은행업계 1위사인 SBI저축은행은 비케이자산관리대부와 제니스자산관리대부에 개인회생·신용회복채권를 매도하고 있다.

특히 하나금융지주 계열사인 하나저축은행은 레드에프앤아이대부, 삼원자산관리대부에 개인회생·신용회복채권을 양도한 것뿐 아니라 일반채권인 담보채권까지 지난해 말 공경대부라는 업체에 넘겼다. 하나저축은행이 올 들어 매각한 채무조정채권은 2차 약 56억원, 3차 약 45억원, 7차 34억원 규모로 적지 않은 규모다.

저축은행업계가 이렇듯 채권 매각에 열을 올리는 건 크게 악화한 건전성 지표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저축은행 79개사의 연체율은 지난해 말 6.55%로 전년말(3.41%) 대비 3.14%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까지 떠안고 있는 터라 추가적인 건전성 및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이미 지난해 5559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9년 만에 적자전환할 정도로 업황이 나빠졌다.

그 때문에 저축은행업계는 개인회생·신용회복채권을 대부시장에 쏟아내고 있고, 덕분에 대부업체는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한 대부업체는 "2020년 이후 일반무담보 제한 매매로 인해 채무조정채권은 가장 활발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며 "정상채권과 유사한 현금흐름을 보이고 수익성도 높다"고 귀띔했다. 이어 "일반무담보채권은 2020년 이전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채권이었으나 코로나사태 이후 채권매매가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히 채무조정채권과 달리 개인회생채권의 경우 보증인에 대한 독촉도 가능하다. 한 변호사는 "정식 대부업체라도 대출이자나 추심의 정도가 보통은 아니"라고 했다.

반면 캠코로부터 채권을 관리받는 차주들은 대우가 나쁘지 않다. 개인연체채권 매입펀드를 통해 매입한 물량에 대해 최대 1년간 연체가산이자를 면제하고 상환요구 등 적극적 추심을 유보한다. 지난해 해당 펀드를 통해 인수한 채권 중 426억원어치의 관리를 신용정보사에 위탁했다가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로부터 즉시 중단토록 요청받을 정도다.

또 캠코는 매년마다 금융취약층의 재기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이들의 채권을 소각해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6만8000명에 대해 1조7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소각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가 운영한 학교법인 웅동학원이 캠코에 진 채무를 불이행하고 있다는 논란도 지속적으로 국정감사 등을 통해 언급되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통해 "부실채권이 당분간 증가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 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은 NPL 시장이 적절히 기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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