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어요, 스타트업” 카카오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가 국내 최대 택시운송가맹사업자 타고솔루션즈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듣자 스타트업 관계자가 한 말이다.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9월11일 타고솔루션즈 지분을 100% 인수하고 사명을 케이엠솔루션(KM Solution)으로 변경했다. 케이엠솔루션 대표이사는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공동대표가 맡는다. 최근 법인택시 회사인 진화택시, 중일산업 등을 사들인 데 이은 공격적 행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내달 중형택시·대형택시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황선영 카카오모빌리티 팀장은 “그간 웨이고 블루 서비스에 대해 기술지원이라는 한정된 역할만 했는데, 이를 넘어 플랫폼 역량과 서비스 운영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접목해 운영하는 게 웨이고 블루를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해 인수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로 가입자 2300만명, 전국 택시기사의 83%(2017년 말 기준)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인수를 계기로 택시호출을 중개하던 역할에서 나아가, 운송사업을 주도적으로 펼칠 기반까지 모두 마련하게 됐다. 현 상황만 보면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 셈이다.

타고솔루션즈 인수가 중요했던 이유


지난해 5월 설립된 타고솔루션즈는 50여개 법인택시 회사, 4500여대 택시가 가맹한 택시운송가맹사업자다. 올해 3월 승차거부 없는 택시 ‘웨이고 블루’를 카카오T 앱을 통해 선보인 바 있다. 웨이고 블루 택시기사에게는 사납금제 대신 완전월급제를 시행해 택시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택시운송가맹사업(이하 택시가맹사업)은 ‘교O치킨’, ‘파O바게뜨’처럼 택시를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는 사업형태를 의미한다. 외관, 요금 등의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부가서비스를 통해 운임 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웨이고 블루는 주변 택시를 자동배차하는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3천원 호출료를 받고 있다.

▲  |웨이고 블루 출시 기자간담회에는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참석해 택시 사업자와 IT 기업이 함께한 상생의 첫 걸음을 축하하기도 했다.
▲ |웨이고 블루 출시 기자간담회에는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참석해 택시 사업자와 IT 기업이 함께한 상생의 첫 걸음을 축하하기도 했다.

지난 7월17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택시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이 택시면허 기반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운송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기여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이 기여금을 택시면허 매입, 택시종사자의 복지 등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다. 서비스 운영가능대수와 총량은 정부가 정한다.

VCNC의 '타다 베이직', 큐브카의 '파파' 등 새롭게 나타난 운송서비스를 제도권 안으로 들이겠다는 의도였지만, 비용부담이 커져 스타트업의 진입장벽만 높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반면 정부는 가맹택시, 택시호출 중개 서비스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택시 기반의 혁신을 장려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택시가맹사업은 이미 규제에서 자유롭다. 가맹점만 확보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규모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확장성이 뛰어나다. 타다처럼 총량이나 운영대수를 두고 정부와 줄다리기할 일도 없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풀 사태 이후 택시친화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데다가, 이미 타고솔루션즈와 협력하면서 택시가맹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택시와 손 잡을 만큼 넉넉한 자본력도 갖췄다. 업계에서 카카오모빌리티라면 택시가맹사업에 손쉽게 진출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던 이유다.

다만 현행법상 택시가맹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택시를 최소 4천대는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걸림돌이었다. 법인택시 관계자는 “타고솔루션즈처럼 4천대 넘는 규모 택시를 모으는 건 현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카카오모빌리티는 수개월 동안 타고솔루션즈 인수를 위한 물밑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서 고전한 ‘웨이고 블루’, 카카오 타고 전국으로


웨이고 블루는 현재 300대 규모다. 당초 타고솔루션즈는 운행대수를 연말까지 2만대로 확대하겠다고 자신했다. 포부와 현실은 달랐다. 운행대수가 부족해 이용자들은 불편을 겪었다. 웨이고 블루를 운영 중인 법인택시 회사 대표는 “웨이고 블루는 재탑승률이 절반도 못 미쳤다. 42% 정도로 알고 있는데 탄 사람들의 절반도 만족을 못 한다는 소리”라며 “개선은 되고 있고 성장세이기는 했지만 (성장) 속도가 아주 느렸다”라고 말했다.

타고솔루션즈(현 케이엠솔루션) 측은 “서울 지역에서 서비스가 안정화되면 이를 전국으로 퍼뜨려 2만대를 확보하겠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지만 (안정화가) 늦어졌다”라고 말했다. 기사 확보도 쉽지 않았다. 웨이고 블루보다는 타다 드라이버, 대리기사 등에 공급이 몰렸다. 그는 “웨이고 블루의 월급제에 사람들이 확신을 못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웨이고 블루 서비스의 ‘전국구’화가 목표다. 이를 위해 서비스명을 ‘카카오T 블루’로 바꾸고 외관도 라이언, 어피치 등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로 새단장한다. 타고솔루션즈 관계자는 “10월 안에 도로에서 카카오T 블루를 볼 수 있을 듯하다”라고 말했다.

▲  |카카오모빌리티의 대형택시(가칭 라이언택시) 프로토타입.
▲ |카카오모빌리티의 대형택시(가칭 라이언택시) 프로토타입.

법인택시 회사 대표 ㄱ씨는 “택시업계는 파벌이 있어 웨이고 블루에 관심이 있어도 타고솔루션즈 가맹사로 들어오지 않으려는 회사들이 많았다”라며 “카카오가 인수한 만큼 가맹사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타고솔루션즈에 따르면 인수 소식이 알려진 직후 가맹 문의가 4배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내년 1월1일부터 사납금 제도를 대체하는 ‘전액관리제’가 시행되면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타고솔루션즈 관계자는 “현재 택시는 노무관리 시스템이 없다. 택시기사가 시간만 때우고 월급을 달라고 해도 그대로 내줘야 한다”라며 “웨이고 블루로 월급제를 운영하면서 데이터를 대거 확보했고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서울지역은 내후년부터 월급제를 해야 하는 만큼 기사 관리를 위해 가맹점으로 들어오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타다’와 견줄 대형택시도 출격 준비


카카오모빌리티는 타다에 맞설 대형택시(가칭 ‘라이언택시’)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100여개 법인택시 회사와 내달 안에 약 800대 라이언택시 출시를 목표로 논의 중이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먼저 운행할 예정이다. 차종은 스타렉스 또는 카니발. 이는 각 택시회사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이언택시는 타다처럼 자동배차 및 탄력요금제(최소 0.7배-최대 2배)가 적용된다. 탄력요금제는 호출수요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과금체계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임원은 “택시는 정부로부터 유가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타다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수익성에서 더 유리할 것”이라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법인택시 회사들은 기본적인 일반 중형택시 이외의 것들은 사업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는 편이다”라며 “사람들은 타다 때문에 대형택시에 관심이 많지만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택시회사가 많지 않아 웨이고 블루처럼 중형택시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먼저 전국 단위로 확장될 거다. 수익이 난다면 대형택시도 차츰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달리는 카카오...택시와 협력이 관건


카카오모빌리티 독주 체제를 바라보는 관련업계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택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 혁신을 꿈꿨지만, 국내 모빌리티 판은 택시를 잡아야만 살아남는 구조로 짜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빌리티 시장이 대기업 중심의 ‘쩐의 전쟁터’로 변모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이 교착돼 있는 상태를 틈타 카카오모빌리티가 미친듯이 속도를 내고 있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출시 규모가 어마어마한 듯하다. 확실히 카카오모빌리티의 힘이 크다”라며 “라이언 캐릭터 선호도에 카카오T 앱의 장악력, 카카오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능력이 합해지면 경쟁력이 막대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택시와의 협업이 변수가 될 수 있을 거라 예측했다. “조심스럽게 예상해보자면 초기에는 큰 인기를 끌 수 있어도 요금, 이동 서비스의 본질이 중요할 것”이라며 “택시를 활용하고 협업한다는 한계점으로 인한 변수가 상당히 많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타고솔루션즈 측은 “아직 경쟁서비스가 활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한쪽의 규모가 너무 커지면 반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택시 천하처럼 보이지만, 택시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 법인택시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타고솔루션즈가 택시회사들과 함께하기 위해 지원사격하는 형태였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수수료 등 가맹점 계약 시 무리한 조건을 수락하지 않도록 택시업계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카카오도 욕심을 내지 않고 상생하는 길을 갔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국토부는 다음주 실무기구를 열고 택시제도 개편안 후속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타다와 같은 혁신형 사업자들이 정부에 낼 기여금 규모, 지급 방식과 함께 운송허가 총량 등을 중점적으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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