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통과된 특금법과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한동안 잠잠했던 블록체인 업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법은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누군가에겐 생존의 기로를 결정짓게 만드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블록체인 기술기업 블로코는 22일 ‘국내 블록체인 규제 현황과 관련 사업 전망’이란 이름의 보고서를 공개하고, 최근 달라진 블록체인 산업의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 발표했다.

전자문서/전자서명의 변화, ‘신대륙’ 발견일까?

지난 5월, 공인인증서의 ‘공인’ 자격 폐지를 골자로 한 전자서명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막차 탑승에 성공했다. 이는 그동안 ‘사설’이란 이름으로 변방을 다퉈오던 인증서들이 모두 평등한 조건 아래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음을 의미한다.

해당 개정안이 블록체인 업계에 희소식인 까닭은, 현재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전자문서/전자서명 분야이기 때문이다.

보통 전자문서 솔루션은 시점확인증명을 위해 제3의 공인인증기관 서버와 연동하거나, 사설 기업이 서비스하는 시점확인증명서를 사용해야 하므로 비용, 구축 장벽이 높은 편이다.

반면, 블록체인은 시점확인증명값을 포함한 주요 정보를 모두 하나의 해시(Hash)값에 담아 블록에 기록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이런 구조적 특성상 데이터를 저렴한 디스크 드라이브에 저장할 수 있게 되며,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기록을 영구히 보존하고 수정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성과 신뢰성이 높다.

사용자 인증 분야 역시 블록체인 기반 PKI 전자서명을 활용하면 기존 공인인증서 대비 보관성과 신뢰성을 개선할 수 있다. 블록체인 전자서명은 기존 공인인증서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만, 인증서를 개인이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또 외부 수정이 불가능한 블록체인 장부에 값이 저장되므로 기록에 대한 접근성과 신뢰도가 높다. 현재 널리 쓰이는 카카오페이인증도 이런 블록체인의 특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블로코는 보고서를 통해 “공인전자서명, 공인인증서, 공인인증 업무 및 공인인증기관을 삭제하는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며, 다양한 전자 서명수단이 차별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블록체인 ‘살생부’될까…특금법 통과 여파

지난 3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은 현재 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특금법은 금융회사에 부과되던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금지 의무를 가상자산 사업자에게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가상자산 사업자의 금융정보 신고 의무,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획득 의무화, 은행이 보증하는 실명 입출금 계정 사용 의무도 부과한다.

이에 최근 빗썸, 코인원, 업비트, 코빗 같은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거래 내역 모니터링 도구와 위험거래 대상자 파악 솔루션 등을 도입하며 특금법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반면, 앞서 언급한 4대 거래소 외에 특금법 시행 이후 국내 사업 존폐 여부가 불투명해진 거래소도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ISMS 인증 획득에만 수억원의 비용과 6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에도 최소 수십억원의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명 입출금 계정을 연동할 파트너 은행을 구하지 못하면 모든 준비가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 방침에 따라 거래소와의 파트너십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부담을 무릅쓰고 신규 거래소와 파트너십을 맺을지는 불분명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특금법 시행 이후 많은 거래소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드디어 제도권에 편입되는 가상자산, 은행에겐 ‘기회’

물론, 꼭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특금법은 기존 금융권에 블록체인 사업 확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법적 위치가 애매했던 가상자산이 제도권 내에 편입되면 은행들은 소극적으로 진행해오던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요즘 금융권에서는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이나 탈중앙금융서비스(디파이), 실물자산 기반 토큰 발행 등에 대비하는 모습들이 관측된다.

최근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가상자산 거래, 수탁, 장외거래를 비롯한 사업과 관련한 상표를 출원하고 공식 컨소시엄을 출범하는 등 규제 상황에 맞춘 서비스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금법으로 일부 블록체인 기업이 사라지더라도, 규제의 틀 안에서 오히려 그 공백을 메꾸는 사업자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 밖에도 블로코는 보고서를 통해 △분산원장증명(DID) 기반 의료 마이데이터 유통 플랫폼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리워드 및 거래 서비스 △마이 헬스 데이터 플랫폼과 같은 데이터 유통/거래 사업이 업계에서 시도되고 있으나, 지난 20대 국회에서 권은희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일부 개정안 처리가 불발되며 다른 분야로 확산되기엔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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