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로의 전환은 지난 수년간 제조업 분야의 궁극적인 과제로 꼽혀왔다. 과기부 예측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팩토리 시장은 매년 9% 이상씩 성장해 2022년까지 약 2054억달러(약 233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분야 선진국으론 독일, 미국, 일본 등이 꼽히며 최근 중국의 추격세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ICT 강국이란 이름과 달리 스마트팩토리 만큼은 ‘랜드마크’라고 부를 만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2022년까지 스마트팩토리 3만개 보급이란 정부 정책도 추진 중이지만 2019년까지의 통계 자료를 보면 국내 스마트팩토리 중 77.8%가 자동화된 자재 관리를 지원하는 기초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  손장익 슈나이더 일렉트릭 이사, 이곳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다
▲ 손장익 슈나이더 일렉트릭 이사, 이곳에서만 2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다

획일적인 스마트팩토리 전환 전략은 ‘독’

손장익 슈나이더 일렉트릭 이사는 ‘맞춤형 기획의 부재’를 문제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스마트팩토리는 도입 전부터 도입 형태, 생산·품질관리, 공급망을 아우르는 고도의 맞춤형 기획이 필요한데 관이 주도하는 사업에선 이것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초기 단계부터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지속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국내 현실에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1836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다국적 기업으로, 에너지·자동화 기술 전반에 다양한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전세계 11곳에 스마트팩토리 등대 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바탐, 태국, 필리핀, 베트남에 6개의 스마트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올해 6월에는 전북 익산에 위치한 자사 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해 공개했다.

▲  익산 공장 외부 / 사진=슈나이더 일렉트릭
▲ 익산 공장 외부 / 사진=슈나이더 일렉트릭

사실 익산 공장은 ‘스마트팩토리’하면 흔히 상상되는 대규모 자동화 공장은 아니다. 종업원은 50명 정도에 불과하고, 그 흔한 자율주행 물류로봇조차 없다. 그러나 내부엔 ‘이노베이션 허브’를 만들어 별도의 견학 코스를 운영 중이며, 코로나19로 인한 견학 중단 기간을 제외해도 대기업을 포함해 상당수 제조업 관계자들이 공장을 다녀갔다고 한다.

작은 것부터, 섬세하게 기획하고 멀리 내다봐야

슈나이더 일렉트릭에 익산 공장은 일종의 ‘모델 팩토리’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굳이 소형 공장을 택한 이유에 대해 묻자 손 이사는 “한국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며 “원하면 중소기업도 스마트팩토리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  익산 공장 내부 생산라인 전경 / 사진=슈나이더 일렉트릭
▲ 익산 공장 내부 생산라인 전경 / 사진=슈나이더 일렉트릭

익산 공장은 상당수 중소형 공장 환경과 유사한 ‘연속 공정’ 시설로, 전자식 모터 보호 계전기 등의 작은 부품들을 생산한다. 스마트팩토리 전환 후 외형적으론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한 수작업에서 린(Lean) 생산공정을 도입해 한 사람이 라인 전체를 커버할 수 있게 됐고, IIoT(산업용 사물인터넷)를 기반으로 공장 내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갖췄다.

또 이를 상위 관리 시스템과 연동해 디지털화화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제조결합율(MDR) 10~15% 감소, 에너지 소비 5% 감소, 서류 작업은 60% 정도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하나 흥미로운 건 스마트팩토리 전환 후에도 기존 직원의 고용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처음부터 인원 감축을 목표로 했던 것이 아니므로 직원에 대한 디지털 직무 다능화 교육도 전환 과정에 포함한 덕분이란 설명이다.

그럼 스마트팩토리 전환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손장익 이사는 “공장 견학을 오는 실무자들도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라며 “각 공장 내 환경과 상황, 목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평준화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또 “익산 공장만 해도 수년 이상의 사전 연구를 거쳤고 마지막 디지털화 단계에도 약 6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단기적 기대보단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맞춤형 준비가 필요하다” 말했다.

그가 말하는 맞춤형 기획이란 각 공장이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각 영역별로 최적화할 요소를 선정한 뒤 인프라 설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공장의 다양성을 감안하면 단기적 외형 변화와 성과 창출에만 급급한 획일적 디지털화는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지속성, 추후 확장성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  슈나이더 일렉트릭 ‘에코스트럭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구성도
▲ 슈나이더 일렉트릭 ‘에코스트럭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구성도

슈나이더 일렉트릭만 하더라도 자사의 ‘에코스트럭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을 빌딩, 파워, IT, 머신, 플랜트, 그리드까지 총 6개로 세분화해 운용 중이다. 익산 공장에는 이 중 ‘머신’과 ‘파워’ 2종이 적용됐다고 한다. 이후 규모가 커지면 단계에 따라 플랜트, 그리드 등의 상위 솔루션이 적용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린팩토리를 염두에 두라

아울러 손 이사가 강조한 것은 데이터 처리와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이다. 스마트팩토리의 경우 각 설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시간 데이터의 규모가 상당한데, 이를 사물인터넷이나 클라우드 컴퓨팅으로만 해결하기엔 무리다.

따라서 현장에서 수입된 데이터를 바로 가공할 수 있는 엣지(Edge) 컴퓨팅 시스템이 필요하며, 국내의 경우 보수적인 IT 정책을 고려해 외부 클라우드 외에도 자체 서버를 운영하는 온프레미스(On-premise) 시스템 구축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에너지의 경우, 손 이사는 “스마트팩토리의 궁극적 형태는 그린팩토리”라며 “많은 공장에서 에너지 관리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지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문에 대한 최적화 노력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슈나이더 일렉트릭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SK그룹, 그리고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이 잇따라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전환) 선언에 나서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글로벌 기업들이 친환경 선언을 하면 결국 협력사들도 이에 맞춰야 하므로 시작 단계부터 반드시 그린팩토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서 익산 공장이 절감한 ‘5%’의 에너지도 작은 수치가 아니다. 그는 공장에서의 에너지 소비 감축 난이도를 ‘마른 헹주짜기’로 비유하며 “매년 5%씩 줄여나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국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효율을 포함한 관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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