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은 반드시 한 손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3.5인치 크기 화면의 아이폰을 고수했다. 스마트폰은 한 손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은 그의 바람과 다르게 성장해왔다. 손가락 한 뼘에 채 닿지 않았던 스마트폰은 어느덧 훌쩍 자라나 양손 가득 들어온다. 아이폰도 마찬가지다. '플러스', '맥스'라 불리는 대화면 모델이 추가됐고, 올해 '아이폰12 프로 맥스'는 6.7인치로 역대급 화면 크기를 자랑한다. 해마다 자라는 키만큼 한 손 조작은 꿈처럼 멀어져 갔다. 그러던 아이폰이 근본 있는 크기로 돌아왔다.

'아이폰12 미니'는 아이폰 매니아들이 바라던 요소를 집약한 제품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에 아이폰12가 제공하는 모든 성능과 기능을 옹골차게 담았다. OLED 화면에 근본 있는 '깻잎 통조림' 디자인, 5G 지원, 듀얼 카메라, 맥세이프 무선 충전 등등. 과거 제품의 재활용에 가깝던 'SE' 시리즈와 달리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모델이다.

▲  (왼쪽부터)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 (왼쪽부터)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한 손 조작 가능한 근본 있는 크기


내 별명은 섬섬옥수다. 남성치고 손이 크진 않지만, 손가락이 가늘고 긴 편이다. 덕분에 최근 대대익선을 추구하는 스마트폰을 큰 불편 없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섬섬옥수에 가득한 스마트폰은 어딘가 균형감이 맞지 않았고, 한 손 조작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비틀며 화면 대각을 오갔지만, 그때마다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주식 갤러리의 명언이 떠올랐다. 아이폰12 미니는 이 같은 불안과 갈증을 해소해준다. 최근 스마트폰의 크기도 무게도 너무나도 겁나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치료해줄 제품이다.

화면 크기는 5.4인치다. '아이폰11 프로'(5.8인치), '아이폰12'·'아이폰12 프로'(6.1인치)보다 작은 건 물론이요, 4.7인치 '아이폰6', '아이폰6S', '아이폰7', ‘아이폰8’, ‘아이폰SE 2세대’보다 작다. 홈 버튼 없는 베젤리스 디자인 덕에 화면 크기는 늘리면서 제품 크기는 줄일 수 있었다. 무게는 133g으로 프로 맥스, 프로, 일반 모델보다 각각 93g, 54g, 29g 가볍다. 아이폰SE 2세대보다도 15g 가볍다.

▲  (왼쪽부터) 아이폰6S, 아이폰12 미니, 아이폰12, 아이폰11 프로 크기 비교
▲ (왼쪽부터) 아이폰6S, 아이폰12 미니, 아이폰12, 아이폰11 프로 크기 비교

▲  5.4인치 아이폰12 미니는 4.7인치 아이폰보다 작다.
▲ 5.4인치 아이폰12 미니는 4.7인치 아이폰보다 작다.

여기에 다른 아이폰12 제품군과 마찬가지로 ‘깻잎 통조림’으로 불리던 아이폰4와 5 시절 디자인이 적용됐다. 테두리에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를 사용한 프로 모델과 달리 일반 아이폰12처럼 알루미늄을 적용해 무광으로 마감했다. 후면은 유리 느낌을 강조해 반짝인다. 카메라 모듈부는 매끈한 느낌으로 다르게 포인트를 줬다. 손 크기가 작은 편은 여성 동료 기자도 부담 없는 크기와 무게의 아이폰12 미니를 반겼다. 애플은 마침내 디자인 접근성과 다양성을 장사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  작은 여자 손에도 아이폰12 미니(왼쪽)는 잘 맞는다. 오른쪽은 아이폰12 일반 모델.
▲ 작은 여자 손에도 아이폰12 미니(왼쪽)는 잘 맞는다. 오른쪽은 아이폰12 일반 모델.

똑똑한 듀얼 카메라


카메라 사양은 아이폰12와 같다. 초광각, 광각, 망원으로 구성된 ‘삼구 인덕션’ 트리플 카메라를 채택한 프로 모델과 달리 초광각과 광각으로 구성된 '이구 인덕션'이 적용됐다. 해당 카메라의 사양은 1200만 화소 초광각(F2.4, 120도 시야각), 1200만 화소 광각(F1.6)으로 프로 모델과 같다. 아이폰12와 마찬가지로 2배 광학 줌, 최대 5배 디지털 줌을 지원한다. 망원이 없기 때문에 줌 성능은 아쉽다. 옆 동네 스마트폰은 100배 줌으로 달도 담는다는데 아이폰12 미니는 5배 줌에도 수채화처럼 뭉개진 풍경을 내민다.

카메라 부분에서 하드웨어적인 개선점은 크게 없지만, 똑똑해진 머리를 바탕으로 한 컴퓨터를 이용한 사진 기법(computational photography)은 더 발전했다. 스마트 HDR, 딥퓨전, 야간모드 등 핵심 기능이 아이폰12 미니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머신러닝을 활용한 이미지 처리 시스템을 통해 순간적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가장 좋은 사진 한 장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다른 아이폰12 제품군과 마찬가지로 ‘A14 바이오닉’ 프로세서를 탑재한 덕이다. 어두운 곳에서 밝고 선명한 사진을 제공해주는 야간모드는 초광각, 광각, 전면 카메라 모두에 적용된다. 프로 모델에 적용된 사물의 깊이를 측정하는 라이다(LiDAR) 스캐너는 빠졌다.


작은 몸에 담긴 옹골찬 기능


크기는 작아졌지만, 성능은 확실하다. 프로 모델과 동일한 A14 바이오닉이 탑재됐다. 업계 최초로 5나노미터 공정이 적용됐으며, 6코어 CPU와 4코어 GPU로 구성됐다. 애플에 따르면 다른 플래그십 스마트폰 칩 대비 최대 50% 더 빠른 GPU 및 CPU 성능을 제공하며, 16코어 뉴럴 엔진을 탑재해 전작보다 머신러닝 성능을 80% 높였다. 애플은 A14 바이오닉이 다른 스마트폰 칩들보다 몇 세대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또 자석을 통해 무선 충전 효율을 높인 맥세이프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맥세이프는 무선 충전 코일 주변에 자석을 배치해 전용 충전기와 착착 달라붙는다. 위치가 어긋날 경우 충전 성능이 떨어지고 발열이 일어나는 기존 무선 충전 방식의 단점을 보완한 방식이다. 실제 맥세이프 충전기를 이용했을 때 견고하게 제품 후면에 달라붙는 모습이었다. '생폰'을 올려놓았을 때는 물론, 맥세이프 호환 케이스를 씌웠을 때도 착착 붙는다. 위치 선정에 신경 써야 했던 무선 충전 스트레스를 지워줬다. 단, 미니는 최대 15W 맥세이프 무선 충전을 지원하는 다른 모델과 달리 최대 12W를 지원한다. 애플다운 급 나누기지만, 배터리 용량이 더 적기 때문에 전체 충전 시간은 비슷하다. 1%에서 100%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자성을 응용한 다양한 탈부착형 액세서리도 지원한다. 지갑형 액세서리는 카드를 자성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하지만 교통카드도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려면 결국 지갑에서 카드를 따로 꺼내야만 했다. 탈부착형 액세서리는 맥세이프의 활용폭을 넓혀주지만 실용성은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편이 좋다.

이 밖에도 아이폰11 시리즈부터 적용된 초광대역(UWB, ultra-wideband) 기술에 기반한 U1칩은 애플 기기 간의 연결성을 높이고 디지털 열쇠 등 각종 편의 기능을 제공한다. 말 많고 탈 많지만 빠른 속도를 제공하는 5G도 동일하게 지원한다.


아쉬운 배터리...다양성 넓힌 아이폰12


5.4인치 화면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제품 크기와 함께 배터리도 덩달아 줄었기 때문이다. 아이폰12 미니에는 2227mAh 용량의 배터리가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2815mAh 수준인 일반, 프로 모델보다 적은 용량이다. 여기에 전력 소모량이 큰 5G까지 합세하면 배터리는 링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지속해서 웹 서핑을 하고, 사진을 찍고, 스트리밍 음악을 듣고,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를 하는 정도의 사용 환경에서 약 12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일반적인 생활 패턴에서는 불안한 눈빛으로 배터리 잔량을 보며 쓸만한 정도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사양 게임을 돌릴 경우 분 단위로 배터리가 빠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게임을 비롯해 영상 콘텐츠를 볼 때 몰입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눈은 간사하다. 커진 화면에 익숙해진 눈은 작아진 화면에 답답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가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 용서해준다. 애플은 개인의 취향에 맞게끔 4종의 아이폰을 내밀었다. 아이폰12 미니는 대화면을 마냥 반길 수 없던 사람들의 손을 구원해준다. 아이폰12는 모두의 아이폰으로 돌아왔다.

장점


  • 한 손에 착 감기는 크기와 무게

  • 작고 아름다운 디자인

  • 성능 확실한 A14 바이오닉

  • 개선된 카메라


단점

  • 배터리, 배터리, 배터리

  • 대화면에 익숙해진 눈

  • 친환경 무선 패키지


추천 대상

한 손 아이폰을 고집한 잡스의 유지를 잇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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