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국내 기업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이하 서머너즈 워)'에 판호(콘텐츠 유통 허가권)를 내주면서 국내 게임업계에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2017년 3월 이후 국내 기업에 한 건도 내주지 않았던 판호가 발급된 만큼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이 해제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  (사진=픽사베이 갈무리)
▲ (사진=픽사베이 갈무리)

중국 게임 '샤이닝니키'가 '한복은 중국의 전통 의상'이라는 자국 네티즌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콘텐츠 삭제에 이어 한국 서비스를 종료한 지난달까지만 해도 판호 해제에 대한 기대감은 낮았다. 사실상 '문화계 동북공정(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 이야기까지 나오며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였기 때문.

상황은 지난달 2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한하면서 반전 국면에 접어들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왕이 부장을 만나 양국의 다양한 협력 방안을 이야기 하면서 한한령에 대한 의견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왕이 방한 후 처음 공개한 판호 목록에 서머너즈 워가 포함됐기에 '게임을 중심으로 한한령 기조가 해제될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서머너즈 워, 선택 배경은

한국 게임에 3년 9개월 째 '외자 판호(외국 기업에게 발급하는 서비스 허가 권리)'를 내주지 않았던 중국은 왜 갑자기 서머너즈 워에 판호를 발급했을까.

게임업계는 서머너즈 워 판호 발급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서머너즈 워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14년 출시된 서머너즈 워는 수년 새 서비스 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현재 234개 국가에 서비스 되고 있으며 누적 다운로드만 1억 건을 돌파한 타이틀로 기록됐다. 2017년부터는 글로벌 e스포츠 '서머너즈 워 월드 챔피언십(SWC)'를 개최해 전 세계 유저와 만나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IP 유입을 통해 자국 게임 산업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판호를 내줬다는 분석이다.

▲  (사진=서머너즈 워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서머너즈 워 홈페이지 갈무리)

글로벌 IP 유입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 부분은 '일회성 정책'이다. 3일 중국국가신문출판서가 공개한 외자판호 리스트에서 한국 게임은 서머너즈 워 1개 뿐이었다. 양국이 문화적으로 교류하며 콘텐츠 산업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일환으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같은 날 발급된 외자판호 갯수는 총 42개에 달한다. 27건이었던 지난 상반기보다 1.5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번에 한국 게임이 받은 외자판호는 단 1건뿐인 셈이다. 왕이 부장의 방한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결단을 통해 이뤄진 판단이라면, 한시적 발급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서머너즈 워는 현지 신규 게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서머너즈 워는 2014년 글로벌 출시 당시 중국 애플 앱스토어에 론칭한 바 있다. 이어 이듬해인 2015년부터 '바이두', '360' 등 많은 안드로이드 마켓을 통해 서비스 됐다. 중국의 경우 구글플레이 스토어로 통일된 한국의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환경과 달리 수 많은 앱 마켓이 존재한다. 게임이 판호 범주에 들어간 2016년 9월 이전까지 많은 유저가 플레이할 수 있었던 이유다.

▲  중국의 '레스트' 선수가 지난해 열린 SWC 2019에서 우승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컴투스)
▲ 중국의 '레스트' 선수가 지난해 열린 SWC 2019에서 우승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컴투스)

이처럼 중국 유저들은 수 년전부터 서머너즈 워를 이용해왔다. 2017년부터 시작한 글로벌 e스포츠 'SWC'에서도 중국 유저가 두 번(2017년, 지난해)이나 우승할 만큼 게임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호 발급을 통해 서머너즈 워는 중국 정식 서비스를 통한 매출원을 확대하는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서머너즈 워가 판호를 발급받았다는 소식에 마치 중국 수출길이 열린 것처럼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업계의 분위기는 정반대"라며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정상화 되고 한한령 기조가 해제될 분위기로 보기에는 판호 발급 규모가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한령 해제?…다음 행보 예의주시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를 발급한 만큼 그 다음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게임 산업 규제를 강화함과 동시에 판호 총량도 줄여나가고 있다. 이는 내자판호와 외자판호 모두에 해당하는 전략이다. 2017년 9368건이었던 판호 발급 건수는 2018년 들어 2064건으로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의 경우 1570건으로 전년 대비 500여건 가량 줄었다.

▲  중국판 서머너즈 워가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등록된 모습. (사진=구글플레이 스토어 갈무리)
▲ 중국판 서머너즈 워가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등록된 모습. (사진=구글플레이 스토어 갈무리)

전체 총량이 줄면서 외자판호 발급 건수도 감소했다. 2017년 476건이던 외자판호 발급 건수는 1년 만에 55건으로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2018년 2월부터 중국 정부가 외산 판호 발급 업무를 중단하는 한편 직제 개편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185건의 외자판호가 발급됐고 올 상반기의 경우 27건에 그쳤다.

외자판호 발급 건수가 줄어들면서 각 국가별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685억달러(약 82조원)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게임이 꾸준히 판호를 발급받더라도 중국이 외자판호 발급 규모를 줄일 경우 큰 폭의 매출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다.

▲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사진=넥슨)
▲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사진=넥슨)

주목할 부분은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앞서 '리니지2 레볼루션', '리니지 레드나이츠', '검은사막 모바일' 등 다양한 국내 게임이 판호를 신청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장기간 서비스 중인 만큼 중국 현지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대작으로 꼽힌다. 게임업계에서는 다음 판호 발급 리스트에 해당 게임들이 순차적으로 올라갈 경우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네오플이 개발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도 지난 8월 텐센트를 통해 서비스할 예정이었지만 '게임 내 과몰입 방지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무기한 연기된 만큼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학회장은 "판호라는 허가 제도 자체가 공정 무역 위반 행위이며 정치적인 문제를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하는 행위 자체가 중대한 WTO 정신 위반"이라며 "지난 4년 동안 정부는 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았다. 향후 판호를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판호 제도 자체가 WTO 위반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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