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홈페이지 갈무리)
▲ (쿠팡 홈페이지 갈무리)

경기도 이천 덕평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화재와 관련해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쿠팡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쌓였던 쿠팡의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까지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지난 19일 오후 트위터에서는 '쿠팡 탈퇴'가 실시간 트랜드 1위로 올라왔다. 많은 이용자는 쿠팡 탈퇴 화면을 갈무리해서 올리거나 탈퇴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 (트위터 갈무리)
▲ (트위터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누리꾼들은 “쿠팡 작업자들의 사망 소식이 연거푸 나올 때부터 주문은 끊어버렸는데 이번 화재 사태로 울분이 치솟아 바로 탈퇴했다”, “혁신을 빙자해 노동자 목숨을 헐값으로 격하시키며 착취하는 기업의 이윤에 10원짜리 한 장 보태주고 싶지 않아 탈퇴한다” 등의 글을 올리며 분노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은 이번 화재 사고뿐만 아니라 그동안 계속된 쿠팡 배송기사들의 잇단 사망 사건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불신이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쿠팡의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 의지 부족과 안전 불감증에 걸린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탈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김범석 쿠팡 창업자 (사진=쿠팡 제공)
▲ 김범석 쿠팡 창업자 (사진=쿠팡 제공)

특히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17일, 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국내 직책을 모두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지난 17일 쿠팡은 “김범석 창업자가 지난 11일 주주총회를 통해 국내 쿠팡의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면서 “김범석 창업자가 앞으로 해외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누리꾼들은 “전형적인 책임 회피”라며 비난하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것을 우려한 사퇴라는 것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안전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상장법인 쿠팡Inc 의결권을 76.7%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 한국 쿠팡의 경영권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 국내 직위에서 모두 물러난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법의 심판을 피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쿠팡은 김범석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과 등기임원직에서 사임한 건 지난달 31일이고, 등기부 등본에 반영된 날짜가 이달 14일이라고 해명하며 김 의장의 사퇴는 이번 물류센터 화재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과거에도 비슷한 전력이 있어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과로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을 요구받은 뒤 공동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사례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임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쿠팡 배송 차량 (사진=쿠팡 제공)
▲ 쿠팡 배송 차량 (사진=쿠팡 제공)

그간의 잘못에 대한 대국민 사과도 없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9명의 노동자가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쿠팡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김범석 창업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소방관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비난 여론이 커졌을 때도 쿠팡은 20일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로 보도자료를 냈을 뿐이다. 

쿠팡은 코로나19의 수혜를 입고 국내 소비자의 많은 사랑을 받은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019년 대비 약 91% 급증한 13조 2500억원에 달했을 만큼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러한 쿠팡의 성장을 두고 ‘노동자의 피와 이윤에 치중한 탐욕’을 바탕으로 이룬 성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물류센터 화재로 불거진 안전 소홀 문제, 창업자의 책임 회피 등이 결합되면서 소비자의 시선은 더욱더 싸늘해졌다. 

▲ 쿠팡 배송센터 (사진=쿠팡 제공)
▲ 쿠팡 배송센터 (사진=쿠팡 제공)

이제 고객들은 기업의 편리성과 함께 ‘도덕적 가치’도 소비하고 있다. 비도덕적인 기업이라면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 쿠팡 탈퇴 러시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누리꾼은 “기업이 달라질 수 없다면 소비자가 달라져 문제의 기업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2013년 김범석 창업자는 스타트업 기술 컨퍼런스 ‘비런치(beLAUNCH) 2013’에 참석해 ‘스타트업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논하며 “기업이란 고객이 떨어뜨린 빵조각을 향해 움직이는 비둘기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의 최우선 가치가 고객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다 악덕 기업의 오명을 뒤집어쓴 현재 쿠팡의 모습은 해당 발언과 극명하게 대조돼 쓴웃음을 짓게 한다. 

소비자들의 쿠팡 탈퇴 러시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얼마나 쿠팡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그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쿠팡은 과연 떠나간 소비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을까.

한편 쿠팡은 덕평물류센터 화재와 관련해 20일 강한승 쿠팡 대표 명의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강 대표는 "고(故) 김동식 소방령님의 숭고한 헌신에 모든 쿠팡 구성원의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이 평생 걱정 없이 생활하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사 상시직 1700명은 근무 불가 기간에도 정상 급여를 지급하고, 단기직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 다른 쿠팡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전환배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