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화학연구원)
▲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진이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한국화학연구원)

국내에서 개발된 ‘에이즈 바이러스(HIV)’ 치료제가 중국에서 신약으로 시판된다.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은 30일 에이즈 치료제 중국 상품 허가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중국에서 시판 허가를 받은 물질은 화학연이 발굴했다. 화학연은 지난 2012년 국내 신약 개발 기업 카이노스메드에 ‘KM023’란 코드명으로 기술을 이전한 바 있다. 화학연이 개발한 물질은 비핵산 계열의 역전사효소 저해제(NNRTI·non-nucleoside reverse transcriptase inhibitor)다.

카이노스메드는 기술 이전을 기반으로 2014년 국내 임상 1상을 마쳤다. 해당 소식을 접한 중국 제약사 장수아이디(Jiangsu Aidi Pharmaceutical)는 자국 내 에이즈 환자 증가율을 고려, 카이노스메이드와 중국 판권을 위임받는 계약을 맺었다. 해당 물질은 이후 중국에서 임상 1~3상을 거쳐, 올해 6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번 치료제는 화학연에서 개발한 후보물질 중 처음으로 상용화되는 신약이다. 구체적인 판매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중국에선 해당 물질을 ‘ACC007’로 명명했다.

1995년부터 개발…600여개 물질 검토해 발굴
이번 신약 개발의 시작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종찬·이일영 화학연 박사팀은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연구에 착수했다. 기반 기술을 쌓은 연구팀은 2006년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타미플루’로 유명한 길리어드는 다국적 제약회사로, 세계 에이즈 치료제 시장의 70% 수준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2008년부터다. 공동 연구 착수 2년 만에 에이즈 치료제 후보 물질 발굴에 성공하는 성과를 냈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약 600개의 신규 약물을 만들었다. 이중 가장 우수한 성분을 개발, 현재 성과에 이르게 됐다.

화학연에서 2013년 퇴직한 손 박사는 “화학연에서 개발된 신약 후보물질이 신약으로 승인된 첫 사례로 의미가 깊다”며 “본 치료제를 통해 중국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에이즈 치료제 후보 물질 발굴 연구를 책임진 손종찬 박사.(사진=한국화학연구원)
▲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에이즈 치료제 후보 물질 발굴 연구를 책임진 손종찬 박사.(사진=한국화학연구원)

국내 기술로 개발된 에이즈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가진 특정 효소(역전사효소)의 활성을 억제한다. 역전사효소는 바이러스의 리보핵산(RNA) 정보를 유전자의 본체(DNA)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RNA가 DNA로 전환되면 에이즈 바이러스가 증식되는 구조다. 해당 치료제는 역전사효소 효소를 억제해 치료 효과를 낸다.

치료제는 중국 임상시험 결과 신경 정신 계통의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전적 독성을 최소화할 수 있어 부작용이 적다. 항바이러스 효과도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1일 1회 경구 투여(먹는 약)할 수 있어 치료가 간편하고, 다른 약들과 병용도 가능하다. 에이즈 치료제는 내성을 유발할 수 있어 통상 두 가지 이상의 치료제를 섞어 사용하는 방식이 추천되고 있다.

최길돈 화학연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에이즈 치료의 관심사 중 하나는 우리 몸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RNA가 DNA로 변형되는 역전사 과정”이라며 “화학연에서 개발한 물질은 역적사효소의 활성 부위에 화합물을 결합, 역전사효소의 기능을 억제하고 바이러스의 소멸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발굴한 물질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전사 효소 기능 막는 역할을 설명한 컴퓨터 그래픽.(사진=한국화학연구원)
▲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발굴한 물질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역전사 효소 기능 막는 역할을 설명한 컴퓨터 그래픽.(사진=한국화학연구원)

에이즈로 3000만명 이상 사망…신약 개발이 중요한 이유
화학연에 따르면 에이즈 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은 전세계 누적 기준 3000만명 이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산한 2018년 기준 세계 신규 에이즈 환자(면역체계가 파괴되어 특정한 증상이 나타난 경우)·HIV 감염인(일정한 면역 수치를 유지하면서 몸에 뚜렷한 증상이 없는 상태)은 170만명에 달한다.

세계적 신규 환자의 확산세는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증가율이 높다. 2018년 기준 중국 내 에이즈 환자·HIV 감염인은 125만명 수준으로 집계된다. 중국 국가위생위에 따르면 매년 8만명씩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시장 규모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 글로벌 시장은 현재 16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최 본부장은 “중국의 신규 에이즈 환자 발생은 세계 평균보다 높다”며 “중국의 에이즈 치료시장은 최소 보수적으로 봐서 현재 1조원 이상이며, 2027년도에는 1조9000억원 정도로 상당히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면역 약화로 나타나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치료제가 개발된 후에는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식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치료제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에 개발된 치료제의 글로벌 판매권은 카이노스메드가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해외 신흥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중이다.

▲ 에이즈 바이러스가 면역세포에 침투하려는 모습을 설명한 컴퓨터 그래픽.(사진=한국화학연구원)
▲ 에이즈 바이러스가 면역세포에 침투하려는 모습을 설명한 컴퓨터 그래픽.(사진=한국화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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