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넘는 연구 성공률이 문제…카이스트 총장의 일갈

발행일 2021-11-29 19:18:30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해 ‘기정학 시대의 대한민국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정부 지원 연구 중 90% 이상이 성공하지 않습니까. 그래선 안 됩니다.”

국내 최고 연구진을 이끄는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총장의 일갈이다. 그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해 성과 중심의 연구 지원 기조를 꼬집었다. 이 총장은 “연구자 중심의 환경과 더불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선거 100일을 앞두고 열린 이날 토론회는 과학기술 정책을 점검하기 위해 열렸다. 양향자 국회의원(무소속·광주 서구을)은 경제 5개 단체와 공동으로 이번 토론회를 주최했다. 양 의원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와 토론회 개최 취지에 대해 “미·중 패권 다툼 속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현황을 살피고 과학기술 패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 중요…韓, 기정학 시대 이끌어야”
이 총장은 ‘연구자 중심의 환경 조성에 필요한 점이 무엇이고, 이와 관련해 다음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성공 가능성에만 집착해 연구가 이뤄진다면 모두 쉬운 과제만을 진행하게 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연구 자율성 부족’ 문제를 지적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4.64%로 세계 2위 수준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R&D 예산으로 연간 30조원을 넘게 쓰고 있다. 그러나 세계를 놀라게 만들 과학기술 개발 성과는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벨 과학상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국가란 오명이 대표적이다. ‘질보단 양’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제도가 이에 대한 문제점으로 늘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의 연구개발 과제 성공률은 98%대다. 쉬운 과제와 성과를 내기 좋은 연구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단 방증이다.

이 총장은 이에 대해 “성공 가능성을 너무 따지지 않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했으면 한다”며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양향자 의원(왼쪽)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을 바라보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이 총장은 ‘기정학 시대의 대한민국 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이날 토론회 2부의 문을 열기도 했다. 이 총장은 발표를 통해 “21세기는 기술을 바탕에 둔 ‘기정학’이 기존의 ‘지정학’ 패러다임을 넘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며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미·중 간의 갈등과 동맹국들의 연합은 지정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기정학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서 동맹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 필요한 기술·부품·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 총장은 이 같은 시대가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기존의 지정학 국제관계에서 우리나라는 상수(constant)이면서 종속변수였다”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수(variable)는 주변국들이었고 우리나라는 그들이 설정해 놓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고민하는 처지였다”고 진단했다. 기정학 시대에는 이 같은 상황이 변화돼 우리나라도 독립적인 변수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이 총창의 시각이다.

이 총장은 “가변적인 기술이 국제정치에서 중요해졌는데, 우리도 국가전략 기술을 먼저 개발하면 판을 바꿀 수 있게 됐다”며 “미래의 전략기술은 양자컴퓨팅·인공광합성·탄소포집·홀로그램·뇌공학·우주·암호·보안 기술 등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기술들은 약 10년을 열심히 파면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 새 기회가 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태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해 ‘미·중 패권전쟁의 본질’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모습.(사진=정두용 기자)

이 총장의 발표에 이어 김태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미·중 패권전쟁의 본질’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미·중 패권전쟁이 반도체 기술패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세계 최고의 사이버 전사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DNA를 갖춘 국가”라고 말했다. 과거 몽골이 ‘기마 전사’를 앞세워서, 대영제국이 ‘해양 전사’를 기반으로 세계패권을 거머쥐었던 사례에 국내 상황을 빗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과 김 교수의 발표에 이어 △김재환 기획재정부 정책조정심의관 △정희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책국장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이 토론자로 참석해 차기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좌장은 양 의원이 맡았다. 이들은 향후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할 수 있는 주요 요소임에 공감하며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우리나라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는 모습.(사진=양향자 의원실)

양향자 의원, 대선 후보에 ‘과학기술’ 정책 공개 질의
이날 토론회에는 정·재계와 학계를 비롯해 정부 관계자 등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환영사는 손경식 경총 회장이 진행했다. 축사엔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국회 기재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1부 사회는 국민의힘 이영 의원이 맡았다.

안 후보는 “다음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두 분야는 과학기술과 외교 분야”라며 “기술패권을 갖은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이고, 국가 지도자는 최전선에서 사령관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기술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이제 죽고 사는 문제가 됐다”며 “만약 우리나라가 반도체와 같은 초격차 기술 5개를 확보하게 된다면 세계 경제 5대 강국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 회장,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양향자 의원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사진=양향자 의원실)

이 밖에도 △임태환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임형규 전 SK텔레콤 부회장 △최희문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전무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이날 토론회에 자리했다.

양 의원은 토론회를 마치며 여·야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공개 질의를 보내기도 했다. 질문은 △전략산업 육성 △과학기술 정책 △지역 및 중소기업 상생 △규제 개혁 △기후변화 대응 등 총 5가지 분야에서 이뤄졌다. 양 의원은 3주 후 캠프별 답변서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양 의원은 “여야를 떠나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경제성장이며, 경제성장의 핵심은 산업, 산업 발전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라며 “미·중 패권전쟁의 본질 역시 과학기술이지만 이번 대선은 후보 간 흑색선전과 황색 저널리즘이 난무할 뿐 과학기술 정책이 실종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팬더믹 경제 위기 극복,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국가적 난제를 극복하려면 산업과 과학기술이 대선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패권국가 부민강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토론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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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짱
    우리나라짱 2021-12-02 11:13:32
    정확한 지적이네.
    성공률이 그정도라는건 조작이거나 성공할거만 하는거지.
    조금이라도 실패할 만한건 절대 안하지.........
  • 마을주민
    마을주민 2021-12-01 12:01:23
    연구에 들어가는 각종 지원금이나 비용만 꿀꺽하겠다는 심산인건지 뭐 뻔한거 아닌가?
  • 제주도
    제주도 2021-11-30 07:14:49
    뒤집어 말하면; 도전적인 과제는 평가받을 때, 실현 가능성과 시장성이 매우 낮음으로 탈락!
  • Brian Jung
    Brian Jung 2021-11-29 20:14:04
    미국 NSF 연구성공율이 20%를 안넘습니다.
    연구성공율이 90%가 넘는다는건 리스크높은 선구적 프로젝트를 안한다는 거죠.

    결과물 명확하게 나오는 연구만 하면 항상 거기서 거기입니다.
    혁신적인 진보는 없고, 그게 없다는건 부가가치도 작다는 예깁니다.

    이제 더이상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고 먹고사려면 글로벌리딩 기술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니 제발 생각하는 방식 좀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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