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PTSD 치료 후보 물질 ‘NYX-783’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 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PTSD 치료 후보 물질 ‘NYX-783’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국내 연구진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약물 치료의 길을 열었다. PTSD는 직접적인 약물 치료제가 없다. 이 때문에 정신 치료 요법과 함께 우울증·불안장애 증상에 투여되는 약물을 사용해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 이보영 연구위원 연구팀은 PTSD 치료 후보 물질의 과학적 원리를 동물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해당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은 세계적인 뇌과학 학술지인 분자정신의학지(Molecular Psychiatry·Impact Factor 15.992)에 14일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계기로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던 PTSD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브리핑실에서 진행된 사전 설명회를 통해 “우울증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된 유일한 PTSD의 약물이라 직접적인 치료제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며 “우울증 치료제는 PTSD에 효과가 늦게 나타나 적절한 치료 시기를 결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PTSD 치료에 빠른 효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NMDA(N-methyl-D-aspartate) 수용체 조절제 ‘NYX-783’을 동물에 투여해 공포기억 소멸 반응 촉진과 자발적 공포기억 회복 억제를 확인했다는 연구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NYX-783는 미국 바이오기업 앱팅스(Aptinyx)가 2021년 12월부터 임상시험 2b 단계 진행 중인 PTSD 신약 후보 물질이다. 자발적 공포기억 회복은 정신치료 등을 통해 공포기억이 소멸됐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회복되는 현상이다. 동물 모델의 경우 일주일만 지나도 그 공포기억이 100%로 회복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PTSD 치료를 어렵게 하는 현상 중의 하나로 꼽힌다. 해당 현상을 억제하는 효과도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PTSD는 사고·재해 등 심각한 사건에서 얻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속해서 다시 경험함으로써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지행동치료 등 정신과적 치료와 우울증 약물치료를 병행하지만 호전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PTSD 환자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치료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진료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PTSD 진료 인원은 2015년 7268명에서 2019년 1만570명으로 5년간 총 4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9.9% 증가했다.

제약·바이오 연구 분야로 PTSD 치료제가 주목받는 이유다. 그간 △라파스티넬 △케타민 등이 PTSD 치료제로 주목받았다. 케타민의 경우 공포기억을 억제해 줄 수 있다는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라파스티넬 역시 PTSD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전 임상실험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케타민은 향정신성 약물이라 부작용이 뒤따른다. 라파스티넬은 경구 투여가 불가하고 생물학적 반감기가 7분에 그친다.

반면 NYX-783은 라파스티넬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치료제 후보 물질로 기대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해당 약물에 대해 “향정신성 약물과 같은 부작용이 없고 경구 투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며 “생물학적 반감기가 6.8시간 정도 되는 안정적인 약물”이라고 설명했다.

PTSD 치료제가 개발되곤 있지만 치료 기전은 밝혀진 바 없었다. 연구진은 NYX-783을 PTSD 마우스(쥐) 모델에 적용, 치료 효과의 작용 원리를 밝혀냈다. PTSD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 NYX-783의 PTSD 치료 효과 기전 설명 자료. NYX-783을 주사한 쥐는 PTSD 모델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공포 기억 회복이 억제되고, 약물에 의한 변연하 내측 전전두엽에서의 GluN2B 소단위체를 포함하는 NMDA 수용체의 활성과 BDNF 단백질의 발현 증가되는 것이 확인됐다.(자료=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
▲ NYX-783의 PTSD 치료 효과 기전 설명 자료. NYX-783을 주사한 쥐는 PTSD 모델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공포 기억 회복이 억제되고, 약물에 의한 변연하 내측 전전두엽에서의 GluN2B 소단위체를 포함하는 NMDA 수용체의 활성과 BDNF 단백질의 발현 증가되는 것이 확인됐다.(자료=이보영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

연구진은 동물을 공포 상황에 24시간 노출한 뒤 NYX-783을 주입했다. NYX-783을 투여한 쥐에서 공포기억 재발이 억제됨을 확인했다. 변연하 내측 전전두엽 내 흥분성 신경세포의 GluN2B 소단위체 단백질을 포함한 NMDA수용체가 활성화됐다는 점도 규명됐다. GluN2B는 신경세포의 흥분성 시냅스에 존재하는 막단백질이다. 칼슘이 이동하는 이온통로로 칼슘의 흐름을 조절해 시냅스가 제대로 기능하게 해 신경세포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신경기능을 조절하는 BDNF단백질(뇌 안에 있는 신경영양인자 단백질 중의 하나)의 발현을 유도함으로써 신경세포의 가소성을 향상해 공포 기억을 억제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이는 PTSD 치료제의 효능과 과학적 원리를 최초로 입증한 성과다.

이 연구위원은 “PTSD 치료제의 분자적 기전을 최초로 규명했다”며 “PTSD 연구뿐만 아니라 여러 정신질환 연구를 지속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가 담긴 논문명은 ‘Positive modulation of N-methyl-D-aspartate receptors in the mPFC reduces the spontaneous recovery of fea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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