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 '사건의 지평선' 스페셜 클립 영상 중 한 장면. (사진=윤하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 '사건의 지평선' 스페셜 클립 영상 중 한 장면. (사진=윤하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이는 가수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 중 일부분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지난 3월 발매 당시에는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주요 음원차트를 석권하더니 지금까지 한 달이 넘도록 정상권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이 담긴 6집 앨범을 발매한 이후 대학 축제, 방송, 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에서 부르기 시작했고, 해당 노래가 입소문을 타면서 6개월이 지난 9월부터 서서히 순위가 역주행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특히 올해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등 가요계는 물론 콘텐츠업계 전반에서 역주행 현상이 발생했다. 유저 맞춤형으로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구독 플랫폼이 늘면서 한국에서 만든 콘텐츠가 세계인이 즐기는 대중문화로 부상한 것도 시대의 흐름으로 읽힌다. 

콘텐츠업계 전반으로 확대된 '역주행'
역주행의 대표 주자는 단연 음원이다. 다른 콘텐츠 대비 상대적으로 짧은 호흡으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은 매해 역주행의 아이콘을 탄생시키고 있다. 다만, K-팝이 전 세계를 사로잡으면서 최근의 역주행 양상은 변화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역주행의 배경이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9월 발매된 NCT127의 정규 4집 '질주(2 Baddies)'는 지난 6일 기준 이전 주 순위보다 71계단 상승한 112위에 올랐고, 방탄소년단(BTS)이 올해 6월 내놓은 앤솔로지 앨범 '프루프(Proof)'도 지난 21일 기준 95위로 27주 연속 차트인을 달성했다. 특히, 해당 앨범은 발매 이후 줄곧 이름을 올린 '월드 앨범'에서 3계단 상승하며 1위를 차지했다.

▲ 넷플릭스에서 역주행 현상이 일어난 '나의 아저씨'. (사진=넷플릭스)
▲ 넷플릭스에서 역주행 현상이 일어난 '나의 아저씨'. (사진=넷플릭스)
그러나 역주행을 음원 시장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양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의 일상화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콘텐츠 전반으로 역주행 현상은 확산됐다.

넷플릭스 톱(TOP) 10 차트에 따르면, 올해 여름 '나의 해방일지'가 '추앙' 신드롬을 일으킨 사이 동일 작가의 전작인 '나의 아저씨'에도 큰 관심이 쏟아졌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는 2018년 종영이 무색할 만큼, 올해 6월 6일부터 2주간 넷플릭스 대한민국 오늘의 톱10 리스트를 장식했다.

▲ 밀리 독서 리포트 2022 중 올해의 인기 검색 키워드. (사진=밀리)
▲ 밀리 독서 리포트 2022 중 올해의 인기 검색 키워드. (사진=밀리)
▲ 밀리 독서 리포트 2022 중 올해의 인기 검색 키워드. (사진=밀리)
▲ 밀리 독서 리포트 2022 중 올해의 인기 검색 키워드. (사진=밀리)
도서 출판 시장에서도 작가 팬덤 기반의 무작위 역주행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지난 6월 공개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가운데 '살인의 문1' 등 대표작이 밀리의 서재 회원들이 선택(Pick)한 '9월의 서재 차트'에 올랐다. 또 올해의 독서를 결산한 '밀리 독서 리포트 2022'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최고 인기 키워드로 조명됐고, 회원들의 서재에 가장 많이 담긴 소설 100권 중 무려 24권의 소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확인됐다.

반대되는 흥행 루트…'순서' 뒤집은 역주행
보통의 역주행이 '흥행의 시간'을 거꾸로 달렸다면, 올해 새로 떠오른 역주행 현상은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는 '흥행의 순서가 뒤집혔다'는 공식인 데 가장 대표적인 콘텐츠가 넷플릭스와 ENA 채널에서 선보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다. 우영우는 방송사 우선 방영으로 시작된 관심이 OTT 흥행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흥행 순서 대신, 넷플릭스를 통한 입소문을 바탕으로 신생 채널인 ENA의 시청률을 1회 0.9%에서 최대 17.5%까지 끌어올렸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또 다른 사례로는 전자책으로 시작해 베스트셀러 종이책으로 등극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도 있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작품인 해당 도서는 2019년 브런치에서 먼저 연재된 후 공모전 입상을 통해 전자책으로 공개됐다. 그러나 독자들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올 초 종이책으로 출간돼 국내에서만 18만부 이상 팔렸다. 

'불편한 편의점'도 플랫폼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종이책으로 탄생했다. 올해 8월에는 속편까지 출간됐는데 해당 시리즈는 밀리의 서재에서만 누적 38만개 이상의 서재 담은 수, 7600여건의 한 줄 리뷰 등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종이책 또한 2020년대 한국 소설로는 세 번째로 1, 2권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
 

IP 유니버스를 통한 역주행 나비효과
올해는 하나의 IP가 웹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하면서 다양한 업계에서 역주행 훈풍이 두드러졌다. 특히 네이버웹툰·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IP로 제작된 방송영상콘텐츠가 올해에만 40편에 달하고, IP 판권 계약 및 영상화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IP 기반 역주행은 더 잦아질 전망이다.
 
▲ (사진=재벌집 막내아들 홈페이지 갈무리)
▲ (사진=재벌집 막내아들 홈페이지 갈무리)
이와 관련한 가장 최근 사례는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흥행과 이를 통한 동명 웹소설의 매출 신장이다. 원작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네이버웹툰 자회사인 문피아에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연재됐다. 완결된 지 4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드라마의 흥행을 중심으로 올해 9월 중순과 지난달 말 열흘간의 웹소설 매출을 비교하면 총 230배가 뛰었다.

'사내 맞선'의 경우, 드라마 흥행에 따라 웹툰과 웹소설의 인기가 모두 역주행했다. 실제로 사내맞선은 2017년 8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웹소설로 처음 공개됐고, 탄탄한 스토리와 높은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웹툰으로의 제작을 시작해 2020년 연재가 마무리됐다. 그러나 올 초 드라마 방영을 시작으로 해당 웹툰의 매출은 전달 대비 4배 증가했고, 드라마 첫 방송 당일 웹소설 조회수는 평균 대비 10배 이상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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