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쇳말'은 주요 IT 기술이나 용어에 대해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쓰는 코너입니다.

지난 2019년 구글이 컴퓨팅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습니다. 자체 개발한 '양자 프로세서'의 연산 속도가 현존하는 슈퍼 컴퓨터를 능가했다는 소식, 즉 '양자우위'를 달성했다는 발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산업계에 던진 메시지는 단순했습니다. 바로 "새로운 암호체계와 통신보안 시스템을 보다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것.

양자우위가 왜 기존 암호 및 보안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에 앞서 양자 컴퓨팅과 양자우위가 무엇인지부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다만, 양자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양자 컴퓨팅의 복잡한 원리를 학문적 측면이나 일반 상식에 비춰 이해하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은 비전문가의 시점에서 양자 컴퓨팅이 디지털 컴퓨팅과 다른 점들을 특징적으로 비교 설명하고, 이를 양자 관련 산업에 대입해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 구글이 2019년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 (사진=구글)
▲ 구글이 2019년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공개한 양자 프로세서 '시커모어' (사진=구글)

양자 컴퓨터, 디지털 컴퓨터와 어떻게 다르지?
양자 컴퓨터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먼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컴퓨터의 원리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핵심만 살펴보죠.

디지털은 흔히 0과 1의 세계라고 합니다. 인간의 인지 세계와 달리 오감이 존재하지 않기에 특정 정보에 대해 전류가 흐르는 부분은 1, 흐르지 않는 부분은 0이라 읽기로 약속하고, 작은 데이터부터 큰 데이터까지 전부 0과 1의 무수한 조합으로 표현되는 공간이죠. 이 0과 1을 부르는 최소 단위가 바로 '비트(bit)'입니다. 이 같은 구조는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든 전자기기에 적용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이나 영상처럼 우리 눈에 숫자와 관계없어 보이는 자료들도 컴퓨터가 처리한 0과 1의 나열이 다시 정해진 약속대로 인간이 인지 가능한 정보로 변환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디지털 컴퓨터의 성능, 처리속도는 결국 이 반복된 0과 1의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받아들이고 의미를 해석해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때 사람과 컴퓨터가 유일하게 같은 점은 한순간에, 혹은 한 번에 하나의 데이터만 읽고 처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언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찰나의 시간 동안 각기 다른 데이터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교차처리 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죠. 예컨대 컴퓨터로 웹서핑만 할 때는 문제가 없다가 음악을 틀고, 게임을 하는 식으로 실행 중인 프로그램이 늘면 컴퓨터가 점점 느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사람이나 컴퓨터는 동시에 하나의 데이터만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다 (자료=블로터)
▲ 사람이나 컴퓨터는 동시에 하나의 데이터만 인식하고 처리할 수 있다 (자료=블로터)

양자 컴퓨터가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원리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속도가 빨라서 그렇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양자 컴퓨터가 0과 1을 한순간, 한 번에 동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양자 컴퓨터 이론에서 흔히 등장하는 '양자중첩', '양자얽힘'과 관련한 대목인데요. 핵심만 접근하면 중첩이 0과 1이란 데이터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성질이고, 얽힘은 중첩 상태에서 0이나 1이 선택되면 연결 비트 데이터가 하나의 정보로 완성된다는 성질입니다. 이런 양자역학적 특성이 적용된 데이터의 최소 단위를 '양자(Quanum)'의 약자를 붙여 큐비트(Qbit)'라고 부릅니다.

큐비트 하나당 2개의 데이터 처리가 동시에 가능한 양자 컴퓨터의 연산 속도는 '2의 큐비트 제곱'으로 결정됩니다. 즉 큐비트가 1개일 때는 2개, 2개일 때는 4개, 10개일 때는 1024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2019년 구글이 만들었다는 양자 프로세서는 53개의 큐비트를 활용합니다. 즉, 한 번에 9000조개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이를 통해 기존 슈퍼컴퓨터가 1만년이 걸릴 계산을 200초만에 수행할 수 있었죠.

▲ 양자는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고 연결된 양자의 상태 변화는 다른 양자에 즉각 영향을 준다 (사진=Pixabay)
▲ 양자는 동시에 여러 상태를 가질 수 있고 연결된 양자의 상태 변화는 다른 양자에 즉각 영향을 준다 (사진=Pixabay)

양자 컴퓨터 발전이 부른 양자보안 기술 개발
사실 구글의 발표를 두고 경쟁사 IBM은 제한된 상황에서 도출한 과대 포장 결과물이라고 반박해 논란이 있었는데요. 중요한 사실은 어떤 트릭을 썼든지 간에 양자 컴퓨터가 디지털 컴퓨터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양자 컴퓨터의 존재감은 보안 업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암호화를 기본으로 하는 보안 시스템에선 현존하는 컴퓨터가 쉽게 풀 수 없는 암호를 사용해 해킹을 막아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RSA'라는 암호체계가 있는데요. '큰 수는 소인수분해하기 어렵다'는 원리로 만들어진 RSA는 슈퍼 컴퓨터의 연산 속도로도 해독에 수만년이 걸립니다. 못 푸는 게 아니라 사실상 풀어도 푼 게 아닌 것으로 만든 겁니다.

그런데 슈퍼 컴퓨터 성능을 아득한 수준으로 제친 양자 컴퓨터가 RSA 해독에 투입된다면? 불과 수십초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수만년과 수십초는 격이 다릅니다. 만약 국가 기밀이 상대국 양자 컴퓨터에 의해 수십초만에 털릴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기밀이 아니게 되겠지요.

결국 각국 정부와 ICT 업계는 독자적인 양자 컴퓨터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양자 컴퓨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양자보안 기술 개발에도 뛰어들게 됐습니다. 특히 매 순간 다량의 민감 데이터가 오가는 통신환경에서 양자보안 기술 개발은 대단히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QKD(양자키분배)나 PQC(양자내성암호)처럼 최근 통신보안 기술 영역에서 언급되는 양자암호통신 기술이 양자 컴퓨터 상용화에 앞서 먼저 등장한 배경입니다.

양자 원리를 통신에 적용하거나, 양자 컴퓨터를 농락하거나
이 양자암호통신 기술들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에 대응하기 위해 아예 통신망에도 양자 특성을 접목해 해킹 시도 자체를 무력화하거나, 혹은 양자 컴퓨터의 연산을 방해하는 암호를 만든 것들이 확인되기 때문이죠.

먼저 QKD는 통신망에 양자 원리를 접목해 외부에서는 해킹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양자암호통신 기술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양자 컴퓨팅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복원불가'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큐비트는 사용 직전까지 양자역학 원리에 따라 0과 1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데요. 누구든 이 중첩 상태의 큐비트를 확인하면 그 즉시 하나의 값으로 고정되며, 얽혀 있는 다른 큐비트 값도 하나로 정해집니다. QKD는 이 성질을 통신망 암호화에 적용해 정해진 대상 외에 제3자가 전송 중인 통신 데이터에 접근하면 데이터가 깨지도록 만든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QKD 암호화가 적용된 데이터를 A가 B에게 전달할 때, A와 B는 데이터 해독을 위해 동일한 키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B에게 데이터가 전송되기 전 C가 이를 도청하면 B는 자신이 해독하기도 전에 이미 훼손된 데이터를 받게 될 텐데요. 그 즉시 제3자의 공격이 있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공격 상황에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 자료=SKT
▲ 자료=SKT

이 방식의 장점은 해커의 접근 자체를 불허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가 아무리 빨라도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면 해독할 수 없고, 해독하려고 해도 데이터가 깨져 버린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내부에서 양자암호키부터 탈취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상 '절대방어'에 가깝습니다.

단점은 구조적 복잡성과 값비싼 도입 비용, 통신 거리의 한계 등입니다. 양자암호통신에는 QKD 활용을 위한 별도의 통신채널 및 암·복호화 장비가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일반 통신선보다는 구축 시 난이도가 높아지고 장비 값도 추가로 들여야 하는 애로사항이 발생하죠. 또 아직까지는 구간별 전송거리가 최대 100km 정도에 불과해 이를 확장하기 위한 중계기술 개발도 추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상용화 초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도 안전한 데이터 보호가 필요한 정부, 기업 시설에 우선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은 PQC를 살펴볼까요? 양자내성암호란 말처럼 PQC는 제아무리 빠른 양자 컴퓨터라도 풀다가 지쳐버리는 암호로 만드는 기술입니다. QKD에 비해 원리는 훨씬 간단합니다. 암호에 양자 컴퓨터가 해독을 어렵게 만드는 노이즈 값을 넣는 겁니다. 일종의 '함정'을 파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수학 문제를 풀 때, 알고 보면 문제가 요구하는 식은 쉽지만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하는 함정 조건이 포함된 문제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이 경우 함정이란 사실을 모르면 결국 그 함정 조건까지 포함해 계산하느라 1분이면 풀 문제를 30분 넘게 씨름해야 할 수도 있죠.

PQC는 양자 컴퓨터에 대해서도 이를 노립니다. 사실 양자 컴퓨터가 아무리 빨라도 그 밑바탕은 결국 융통성 없이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연산을 수행하는 '기계'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양자 컴퓨터가 사용하는 계산 알고리즘에 맞춰 특화된 함정 요소를 기존 암호 체계에 추가하면 양자 컴퓨터도 수십초면 풀던 문제를 수백년에 걸쳐 풀도록 할 수 있습니다.

▲ LG유플러스는 문제에 작은 에러를 포함시키는 격자이론 기반의 PQC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자료=LGU+)
▲ LG유플러스는 문제에 작은 에러를 포함시키는 격자이론 기반의 PQC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자료=LGU+)

PQC의 장점은 뛰어난 확장성입니다. QKD처럼 별도의 물리적 장비를 동원하지 않아도 기존 암호 체계만 업데이트할 수 있다면 그 즉시 양자 컴퓨터 공격에 내성을 지닌 통신망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구축 시간이나 비용도 훨씬 줄어듭니다. QKD에 비하면 훨씬 빠르게 사회 곳곳에 적용될 수도 있습니다.

단점은 PQC가 나쁘게 보면 조금 복잡해진 암호에 불과하단 점입니다. 양자 컴퓨터의 암호해독을 지연시킬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 지연 시간이 기대에 못 미치게 짧을 수도 있습니다. QKD처럼 접근 자체를 불허하는 게 아니라 알고리즘 대 알고리즘의 전면전과 같기 때문이죠. 만약 양자 컴퓨터를 속이는 데 실패할 경우 PQC의 방어는 무의미한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QKD나 PQC 기술 어느 하나의 온전한 우위를 논하긴 어렵습니다. 장단점이 뚜렷하니까요. 전문가들도 QKD와 PQC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일차적 접근은 QKD로 막고, 뚫린 공격에 대해선 PQC가 2차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 당연히 안팎으로 훨씬 강력한 보안 체계가 완성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 국내에선 SK텔레콤과 KT가 QKD 기반 양자암호통신 시스템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LG유플러스는 PQC 개발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는 주로 핵심 기술 개발 및 표준화, 프로토타입 개발 등에 그쳤지만 올해는 실제 사업화까지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양자 컴퓨터 상용화에 앞서 이처럼 강력한 '방패'가 먼저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대단히 잘된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양자 컴퓨터의 두 얼굴
기존 암호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양자 컴퓨터의 등장은 역설적이게도 기존 보안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게다가 양자 컴퓨터의 발전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악의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면, 그 천문학적인 연산 속도를 이용해 다양한 연구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적지 않기 때문이죠.

가령 수많은 경우의 수를 테스트하고 최적의 시나리오를 찾아야 하는 신약 개발 시뮬레이션, 날씨 예측 같은 분야에 양자 컴퓨터가 활용된다면 슈퍼 컴퓨터보다 분명히 빠른 시간 내에 더 좋은 결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방면의 활용 연구도 진행되고 있고요. 미국의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21년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양자컴퓨터가 전 세계적으로 2000~5000대 정도 보급돼 산업 전반에서 운영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참고로 양자 컴퓨터가 홈 PC 수준으로 보급될 일은 근시일 내 가능성이 낮습니다. 양자 기반의 큐비트는 아주 미세한 충격과 온도변화에도 안정성을 상실할 만큼 민감합니다. 따라서 현재 기업이 개발, 운영 중인 양자 컴퓨터 시설은 절대영도 수준의 극저온과 컴퓨터를 겹겹이 둘러싼 충격 방지 장치들로 구성돼 있죠. '시설' 수준이었던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가 작은 스마트폰이 되기까지 수십년이 걸렸습니다. 그보다 민감한 양자 컴퓨터의 소형화, 휴대화는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죠.

▲ IBM 연구소에 설치된 양자컴퓨터 시설 (사진=IBM)
▲ IBM 연구소에 설치된 양자컴퓨터 시설 (사진=IBM)

현재 양자컴퓨팅 기술 분야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기업은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이 꼽힙니다. 국가 연구로 시야를 넓히면 세계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가장 앞선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유럽은 양자역학의 발상지로 꼽히지만 지금은 중국에 다소 뒤쳐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최근 양자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정부는 지난 1월 발표한 '2022년도 연구개발사업 종합시행계획'에서 오는 2024년까지 50 큐비트급의 국내 양자컴퓨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올해 연구개발비 699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미국 기업들은 이미 100 큐비트를 넘어 1000 큐비트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내후년에야 2019년 구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면 기술 격차는 상당히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더 늦은 이후는 경쟁 자체를 꿈꿀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투자에 나선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인사이드 퀀텀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 규모는 2025년 7억8000만달러(약 9372억원)에서 2029년 26억달러(약 3조1241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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