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오랜기간 동종업계에서 경쟁한 숙명의 라이벌이다. 양사의 가전·TV·전장 사업 성과와 미래 경쟁력을 비교·점검한다. 

삼성전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왼쪽)와 LG전자 'LG 시그니처 세탁건조기'. (사진=각 사)
삼성전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왼쪽)와 LG전자 'LG 시그니처 세탁건조기'. (사진=각 사)

국내 가전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인공지능) 생활가전 주도권 경쟁에 뛰어 들었다. 최근 잇따라 유사한 신제품을 선보이는 한편, SW(소프트웨어) 성능 강화를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우며 시장 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가전에서 나란히 적자를 낸 양사는 올해 시장점유율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2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가전 부문에선 '백색가전 명가'인 LG전자가 앞섰다. LG전자 생활가전(H&A) 사업본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30조원을 돌파했다. H&A 사업본부는 8년 연속 성장세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VD(영상디스플레이)·가전 사업에서 56조원의 매출을 냈다. 이 중 VD가 30조원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가전에서만 26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만 지난해 4분기에는 양사가 나란히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VD·가전을 합산해 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삼성전자에 비해 LG전자는 1156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시현했다. 가전 사업은 전통적으로 상반기에 호실적을 내고, 하반기에는 저조한 '상고하저'의 흐름을 보인다. 세탁기, 에어컨 등 주력 제품의 출시가 상반기에 집중돼있고, 연말에는 재고처리 비용, 마케팅 등의 요인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자료=각 사 사업보고서
자료=각 사 사업보고서

 

'2세대' AI 가전 시장 두고 각축전

지난해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새 영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전통적인 백색가전에서 AI 가전, 신가전 등으로 세대 교체가 이뤄지며 시장 경쟁이 다시 본격화된 것이다. 가장 큰 화두는 AI 가전의 핵심인 소프트웨어(SW) 영역이다.

현재 LG전자 가전 사업의 주축은 H&A 실적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업(UP) 가전'이다. LG전자는 지난 2022년 1월 처음으로 업 가전을 선보이고, AI와 IoT(사물인터넷)를 접목한 스마트홈 플랫폼 'LG 씽큐' 앱과 연동시켰다. 업 가전은 이용자들이 별도로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필요 없이 SW를 업그레이드 하면 기존 제품에서 새로운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후 LG전자는 지난해 6월 개인에 따라 맞춤형 생활 서비스를 추전하는 '업 가전 2.0'을 선보였다. 무선으로 개인 맞춤형 기능을 업데이트하고, 구독 서비스를 결합해 하드웨어(HW)까지 고객의 취향에 따라 교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가전 전용 AI칩(DC-C), OS(운영체제)를 자체 개발해 프리미엄 제품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삼성전자도 무선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 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스마트 포워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출시한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에 해당 기능을 접목시켰다. 이무형 삼성전자 DA(생활가전) 개발팀장 부사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AI 등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제품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스마트 포워드’ 전략을 구체화할 것”이라며 “세탁건조기 뿐만 아니라 모든 가전에서 갤럭시S24의 통화요약, 번역 기능을 구현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원조"…치열한 눈치싸움

신발 관리기, 세탁건조기 등 신가전 영역에선 눈치싸움이 더 치열하다. LG전자가 지난해 3월 'LG스타일러 슈케이스-슈케어'를 선보이자 삼성전자는 일주일만에 동일한 성능의 '비스포크 슈드레서'를 내놨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22일 LG전자가 먼저 프리미엄 가전 라인업인 ‘LG시그니처 세탁건조기’를 출시했고, 5일 뒤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AI 콤보’를 선보였다. 이 가운데 약 690만원을 육박하는 LG전자 제품에 비해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399만원 대의 제품을 출시해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공식석상에서 두 회사의 신경전도 심화되고 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지난 26일 제22회 정기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AI 가전은 (LG전자의) 업(UP) 가전이 시초"라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AI 가전=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사태를 겨냥한 발언이다. 조 사장은 세탁건조기가 가격이 경쟁사 대비 너무 높은게 아니냐는 질문에 "세탁기에 대한 제품 경쟁력은 LG전자가 가지고 있다"며 "고객들도 이에 대해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는 것"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 가전 경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지난 15일 AI 기능이 탑재된 '비스포크 무풍에어컨 갤러리'를 출시하자 LG전자는 22일 'LG 휘센 뷰 에어컨'을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향후 삼성전자가 출시를 준비 중인 올인원 로봇청소기 시장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CES2024에서 공개한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제트 봇 콤보’ 출시를 준비하고 있고, LG전자도 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백색가전에서는 LG전자가 우위를 갖고 있지만 AI 가전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며 “삼성전자 또한 이번을 기회로 ‘가전은 LG’라는 명성을 뺏어오려는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통적으로 가전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LG전자의 대응 여부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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