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인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사내 커뮤니케이션이다. 직원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친목을 다지기 위해 쓰이는 가장 흔한 방법은 회식이다. 한편으로 회식은 직장인이 가장 피하고 싶은 사내 행사이기도 하다. 조금 더 기발하고 창의적이거나 직원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off피스'는 앞으로 딱딱한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이뤄지는 다양한 사내 커뮤니케이션 사례를 소개한다.]

본사는 미국에 있는데 회사 PR 담당자는 프랑스에서 업무를 보는 게 가능할까. 유럽과 아시아, 미주 등 각곳에 직원을 두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란 말에 줄리아 오쇼내시 PR 디렉터는 "문제없고,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클라우드 노트 서비스 업체 에버노트 이야기다.

에버노트는 이용자가 웹사이트와 PC 응용프로그램(앱),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으로 정리한 내용을 열어 보고, 기록하게 하는 서비스다. 2008년 공개 서비스를 내놓고 벌써 5년이 됐다. 이용자는 전세계적으로 3800만명에 이른다.

에버노트 본사 내부 벽면
▲ 에버노트 본사 내부 벽면

▲본사 벽면에 그려진 에버노트의 로고이자 마스코트 역할을 하는 코끼리. 에버노트 본사 벽면은 언제든 쓰고 지울 수 있는 칠판이다.


이곳 직원은 스스로 "이용자들은 재미 없는 우리 서비스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페이스북이나 '앵그리버드'와 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SNS나 게임이 아니라 이용자를 끌어오는 게 만만찮을텐데 한번 에버노트를 쓴 이용자는 대체로 꾸준히 쓰는 모습을 두고 이른 말이다.

에버노트에서 흥미로운 점은 하나 더 있다. 트로이 말론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맡은 국가에선 직원을 채용할 때, 채용 공고를 내지 않고 지원자에게 이력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8월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이하 에버노트 트렁크)에서 만난 트로이 말론은 "에버노트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본다"라며 "에버노트 행사를 열 때 눈에 띄게 열정적이고 먼저 나서 도와주는 이용자를 주목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채용한 한국과 싱가포르, 대만 직원들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한국의 마케팅 담당 조명원 씨는 에버노트가 좋아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석해, 행사 내용을 정리해 트로이 말론에게 보냈다. "제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데이비드(조명원 씨)는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거지요." 그리고 자국에서 에버노트 행사를 열고 싶다며 먼저 연락해온 다른 직원들도 있다.

트로이 말론과 줄리아 오쇼내시는 회사 자랑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에버노트는 1년 새 직원 수가 80여명에서 약 3배 늘어 대략 240명이 됐다. 한 달에 12명 이상 늘어났는데 직원끼리 소통과 협업은 제대로 이루어질까. 한데 모여 일해도 힘든데 말이다.

에버노트 본사에서 만난 트로이 말론과 김지영 씨가 소통을 강조한 게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리라. 두 사람은 직원간 소통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두가 신경 쓰는 부분이라는 걸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사무실 전경


에버노트의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인접한 레드우드 시티에 있다. 5층 건물을 임대해 1층과 4층, 5층을 사무실과 회의실, 주방 등으로 꾸몄다. 건물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각양각색의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무실에 파티션이나 부서간 또는 팀이 따로 쓰는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회의실은 있다. 하지만 특정 부서를 위한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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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rnote_HQ_23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사무실 가운데 있는 계단엔 징이 있다. 회사 규모가 작을 땐 작은 징을 울리면 모두 주목했는데 이젠 직원이 늘면서 위에 보이는 큰 징을 쓴다. 저 징은 주요 발표가 있을 때 사용된다.


김지영 씨는 "이번 건물로 이사 오며 가장 신경 쓴 게 개방과 소통이었다"라며 층 가운데 있는 계단을 보여줬다. 층이 나뉘며 자연스레 다른 층을 쓰는 직원들이 서먹해질 것을 염려했다는 이야기다.

"각 층마다 부엌이 있는데 식사 땐 층마다 각기 다른 음식을 제공해요. 먹고 싶은 음식 때문에라도 일부러 다른 층을 찾게 하려고 한 거예요."

사소해보이지만, 쿠팡의 사례가 떠오르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쿠팡은 직원들이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 현상을 겪으며, 서울 역삼동 본사에 있는 직원 500명이 3주에 3명이 조를 짜서 점심을 같이 먹는 '메이크 프렌즈'란 행사를 올 2월부터 진행해 왔다.

층마다 회의실, 부엌, 휴식 공간이 있지만, 에버노트는 계단에도 직원들이 모여 이야길 나누는 공간을 마련했다. 계단 절반은 경사를 높게 두고, 방석을 둬서 직원들이 이야기를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계단에 커다란 TV를 설치하고선 '내부 TV 채널'을 튼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줄리아 오쇼내시는 "모두가 레드우드 시티(본사)에 있지 않다"라며 내부 TV 채널을 소개했다. "전 직원이 자기 이름과 업무 등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트는 채널이에요. 멀리 떨어진 사이여도 얼굴과 이름은 알게 하지요. 새 직원은 매주 필 리빈 CEO가 영상회의를 진행할 때 자기 소개를 해야 하는데, 때론 필이 인터뷰 식으로 진행할 때도 있어요." 필 리빈은 목요일마다 20분간 진행하는 회의에서 출장지와 만난 사람, 나눈 이야기 등 자기의 주간 업무를 직원에게 알린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일할 순 없지만, 최대한 직원끼리 얼굴과 목소리를 익히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보게 한다. 줄리아 오쇼내시는 미국인이자 프랑스인인데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며 전사 PR을 담당하고 각국 PR 담당자를 총괄한다. 각 대륙이나 나라의 시차에 따라 아침부터 차례로 담당자들과 통화하고, 연락하며 하루를 보낸다.

"참, 야머도 서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입사하면 먼저, 야머에 자기 프로필을 작성해야 해요. 이땐 얼굴 사진도 올려야지요. 그리고 나면 모두들 환영 인사를 건네요. 야머는 전 직원이 쓰지만, 모두를 팔로우할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건 전 사원에게 공지되니까요."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크고 작은 회의실엔 마이크와 TV가 있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에 있는 회의실엔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아케이드 게임에서 따왔다.


김지영 씨는 다른 나라에 있는 직원과 자주 통화하다 보니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지 않는 직원의 목소리도 알 정도라고 털어놨다. "회의실엔 스카이프(인터넷전화 서비스)를 쓰기 위해 마이크가 있는데, 큰 TV와 카메라를 둬 영상회의 공간으로 꾸며진 회의실도 있어요. 보통 e메일과 기업용 SNS인 야머, 스카이프, G메일에 있는 구글토크로 일해요. 물론 에버노트도 쓰는데 여러 문서를 모은 폴더 역할을 하는 노트북을 직원끼리 공유하고요." 원격 업무는 이상적으로만 들리는데 에버노트 트렁크에서 만난 에버노트 직원들은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에버노트 트렁크에서 서포트팀으로 일한 헤더와 레온 와일드는 요트에서 생활하는 사내 커플이다. 두 사람은 고객지원부서 소속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요트에서 원격으로 일한다. 이 커플에겐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미국 해안 도시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해안도시도 인터넷을 쓸 수 있으면 사무실이 된다.

에버노트는 따로 전 직원이 모이는 연례 행사는 열지 않고 있다. 이제 설립 6년차를 맞이했고 자기 업무가 변화하고, 새 직원도 수시로 들어오고 있는 걸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다. 그 대신 각국에서 열리는 에버노트 이용자 행사나 개발자 행사에 주위 나라에 있는 직원들이 얼굴을 비친다. 올 8월 서울에서 열린 에버노트 에듀 콘퍼런스엔 켄 이노우에 일본 총괄이 방문했다.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엔 새 직원들이 참석해 본사와 다른 나라 직원들과 얼굴을 익혔다. 목소리와 e메일, 프로필 사진으로만 이야길 나누다 악수를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에버노트 본사 탐방을 마치고, 사무 공간을 잘 꾸미고 온라인 도구를 잘 구축하면 절로 협업이 이루어지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 질문을 듣곤 트로이 말론은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직원들은 에버노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개방을 강조하며 멋지게 만든 사무실, 온라인 협업을 돕는 다양한 서비스와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란 뜻 아니었을까.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노트북이나 책을 올려둘 거치대가 있는 런닝머신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필 리빈 CEO가 쓰는 로보트다. 그는 출장지에서 이 로보트를 이용해 직원에게 찾아가 말을 건넬 수 있다. 바퀴로 이동하고, 위에 있는 카메라로 주위를 관찰하고, 작은 모니터에는 필 리빈 얼굴이 뜬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한 직원의 책상엔 회사 로고인 코끼리 모양 소품이 가득하다.


에버노트 본사
▲ 에버노트 본사


▲몇몇 책상은 높낮이를 조절해 서서 일하는 데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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