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이냐 삭제냐.

카카오톡 메시지를 서버에 보관하는 문제는 카카오를 초기부터 괴롭혀온 골칫거리였다. 한쪽에선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분으로 삭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선 각종 범죄 증거 자료 입증을 위해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양분된 여론 속에서 카카오는 단계별로 서버 보관 기간을 줄여왔다. 주로 카카오톡 대화록이 쟁점이 된 사회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DaumKakao_CI
▲ DaumKakao_CI

2013년 3월. 카카오는 또 한 번의 결정을 내렸다. 연예인 박시후 씨 성폭행 논란이 터지면서다. 당시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카카오 성남 판교 본사로 찾아갔다. 박시후 씨와 상대인 아무개 여성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증거 자료로 채택하기 위해서였다. 카카오는 지금처럼 5일 주기로 서버를 초기화하던 때였다. 경찰은 카카오 압수수색으로 박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보했고 법원에 증거 자료로 제출도 했다.

박시후 사건 뒤 "서버에 메시지 남기지 않을 것" 해명

박시후 씨 사건은 카카오의 메시지 서버 보관 문제를 다시금 촉발시켰다. 2011년 ‘부산 아내 살인사건’으로 보관 기간을 3달에서 1달로 변경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적인 정보가 압수수색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이를 잠재울 수 있는 대책을 카카오가 내놔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던 때였다. 카카오는 당시 <서울경제>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카카오톡은 법원의 정식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서버 기록은 제출하고 있다. 서버 개편이 완료되면 카카오톡 서버에 문자메시지 내용이 남지 않기 때문에 가입자들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카카오톡 메시지가 유일한 증거가 된다.”(2013년 3월6일 <서울경제> ‘박시후 덕분에 밝혀진 카톡 저장 결국…')

카카오는 이러한 정책적 변화를 분명히 하기 위해 2013년 초부터 진행해오던 ‘겁나 빠른 황소 2.0’ 프로젝트도 다시 소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 카카오톡의 속도 향상과 안정화를 위해 기획됐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서버를 오가는 과정을 3단계에서 2단계로 줄이고 경량화 프로토콜을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1월에 발표한 보도자료에도 서버에 대화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조건이 담겨있었다. 단 연결이 끊어진 경우에만 해당 메시지를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박시후 사건이 터진 뒤 이 부분을 다시 강조했다. 2013년 상반기에 ‘겁나 빠른 황소 2.0’이 적용되면 압수수색 영장으로 서버 내 대화록을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자칫 경찰에 의해 사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한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2014년 10월 1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합병 선언 간담회에서 “5~7일 가량 서버에 보관한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서버에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겁나 빠른 황소 2.0’의 적용으로 서버에 보관하지 않는다는 기존 공표와는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카카오는 서버에 보관하지 않겠다던 기존의 발언을 왜 변경하게 됐을까. 카카오 쪽은 10월7일 <블로터>와 전화 통화에서 “PC 버전 도입 때문에 서버 보관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는) ‘저장을 하지 않겠습니다’가 아니라 서버에 저장되지 않도록 할 예정이고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는 다시 연결하겠다는 거였다. 애초에 장기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PC 버전을 도입하게 됐다. PC 버전 도입하려면 모바일로도 보내야 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서버 저장이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 해명도 설득력이 높진 않다. 카카오톡 PC 버전이 정식 공개된 시점은 박시후 사건으로 ‘서버에 보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3개월 만인 2013년 6월이다. 2013년 3월26일에는 비공개 시범서비스를 시작하기까지 했다. 서버 보관이 필수적인 PC 버전을 서버 삭제 공표 당시 이미 제작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성급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억울함 속 지켜내야 하는 건 사용자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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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umkakao (112)

서버 보관 여부에 대한 여론은 사건에 따라 크게 출렁인다. 요즘처럼 검열 위험이 확산되는 시점에는 서버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박시후 사건처럼 범죄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면 서버에 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진다. 다음카카오로선 균형 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국내 1위 메신저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다음카카오는 서버 보관 기간을 5일에서 2~3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수신 확인된 대화내용 삭제 기능 등을 포함한 프라이버시 모드 도입 등 강력한 사용자 정보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탈 행렬이 본격화하기 전에 다음카카오 내놓은 대응책의 뼈대다.

다음카카오는 일부 오해에 둘러싸여 있다. 부풀려진 의혹들이 삽시간에 터져나오면서 억울함도 커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지켜내야 할 핵심은 사용자의 신뢰다. 신뢰는 한번 잃어버리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1년 여 전에도 약속했던 압수수색 무력화 조치가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지 침묵하는 사용자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사용자들은 법률가의 방어적 해명이 아니라 철학가의 영혼이 담긴 다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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