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한화솔루션이 태양광 사업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모회사인 ㈜한화의 유상증자 참여 여부는 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린 또 다른 관심 요소입니다.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규모가 조단위에 달하는 만큼 모회사가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지분율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죠.
한화솔루션은 지난 22일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결정 사실을 공시하며 향후 자금사용 방안 뿐 아니라 신주 발행가액, 신주배정주식수, 청약예정일, 증자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들을 함께 알렸습니다. 공시에 따르면 신주발행가는 22일 종가 4만6150원보다 약 8000원 저렴한 3만8200원으로 예정됐고요. 1주당 신주배정주식수는 ‘0.1564942244주’입니다.
1주당 신주배정주식수가 ‘0.1564942244주’라는 것은 한화솔루션 주식 1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한화솔루션이 새로 발행하는 주식 ‘0.1564942244주’를 배정받는 뜻입니다. 100주가 있으면 대략 15.6주를 받는 식입니다.
이번 유상증자 방식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한화솔루션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구주주)이 우선적으로 신주 청약에 대한 권리를 갖고요. 여기서 주주가 배당받은 신주인수권을 포기해 발생하는 실권주는 일반 대상으로 추가 청약이 이뤄집니다.
한화솔루션의 모회사인 ㈜한화는 올 3분기 말 기준 한화솔루션 지분 37.2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식 수로 따지면 5954만5978주인데요. 이를 신주배정 비율에 대입하면 ㈜한화는 약 931만8600주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앞서 신주발행가가 3만8200원으로 예정됐다고 했죠. 만일 ㈜한화가 소유한 신주인수권을 모두 행사할 경우 약 3560억원을 납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화는 3560억원의 현금을 투자할 자금 여유가 있을까요.
올 3분기 별도 기준 ㈜한화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3540억원입니다. 유상증자 참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수중에 있는 현금 전부를 털어야 간신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금이 부족하더라도 얼마든지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는 있습니다. 영업활동을 통해 추가로 벌어들이는 현금도 있을 테고, 일부 매출채권을 현금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차입을 일으키면 됩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한화에게 3560억원 현금 지출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죠.
사실 자회사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 모회사의 지원은 필수적입니다. 모회사가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다면 사업에 대한 신뢰나 전망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 있죠. 한 마디로 자식이 새로 사업을 하는데 부모가 돈을 대주지 않는 격입니다. 당연히 시장에서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분율 희석도 걱정이죠. 신주를 발행하는데 제 3자가 그 지분을 모두 가져간다면 기존 대주주의 지분율이 자연스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너일가와 지주사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배력 약화입니다. LG화학이 에너지솔루션을 독립시키며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 방식을 택한 배경에는 지분율 희석에 대한 불안감도 반영됐습니다.
만약 ㈜한화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한화솔루션에 대한 지분율은 31.1%로 기존 37.25%에서 6.15%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 20% 이상만 보유하면 되지만, 공정위가 요건을 30%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꾸준히 보이고 있죠. 이를 감안하면 30%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산술적으로만 평가하면 지분율 희석은 피할 수 없지만 향후 예상되는 공정위의 강화 요건은 만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한화의 한화솔루션 지분율이 떨어지더라도 경영권을 얼마간 우회적으로 방어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바로 우리사주조합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사주조합은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면 신주물량의 20%를 우선 배정받습니다. 우리사주조합이 신주 물량을 전부 소화할 경우 우리사주조합은 유상증자 후 한화솔루션 지분 2.3%를 보유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사주조합은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회사 편을 드는 경우가 많죠.
물론 ㈜한화의 유상증자 참여는 ‘참여 혹은 불참’의 양자택일 문제는 아닙니다. 배정받은 신주를 일부만 사들일 수 있죠. 업계에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관측들이 나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모회사인 ㈜한화가 유상증자에 참여 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만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화는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는 22일 오후 장이 마감한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결정 내용을 종속회사의 주요경영사항으로 공시했습니다. 다만 추가적인 내용은 없었고요. 21일 공시내용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한화가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참여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 있었다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함께 공시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청약예정일은 오는 2021년 2월 24일입니다. ㈜한화는 앞으로 약 2달간의 시간 동안 유상증자 참여 규모를 놓고 계속 고민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태양광사업 자금 조달을 자회사에게 모두 맡길지,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힘을 실어줄지 관심이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