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한화그룹 본사 외관.(출처=한화그룹.)
▲ 한화그룹 본사 외관.(출처=한화그룹.)

한화솔루션이 태양광 사업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모회사인 ㈜한화의 유상증자 참여 여부는 그룹 지배구조와 맞물린 또 다른 관심 요소입니다.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규모가 조단위에 달하는 만큼 모회사가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지분율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죠.

한화솔루션은 지난 22일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결정 사실을 공시하며 향후 자금사용 방안 뿐 아니라 신주 발행가액, 신주배정주식수, 청약예정일, 증자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들을 함께 알렸습니다. 공시에 따르면 신주발행가는 22일 종가 4만6150원보다 약 8000원 저렴한 3만8200원으로 예정됐고요. 1주당 신주배정주식수는 ‘0.1564942244주’입니다.

▲  (출처=금융감독원)
▲ (출처=금융감독원)

1주당 신주배정주식수가 ‘0.1564942244주’라는 것은 한화솔루션 주식 1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한화솔루션이 새로 발행하는 주식 ‘0.1564942244주’를 배정받는 뜻입니다. 100주가 있으면 대략 15.6주를 받는 식입니다.

이번 유상증자 방식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한화솔루션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구주주)이 우선적으로 신주 청약에 대한 권리를 갖고요. 여기서 주주가 배당받은 신주인수권을 포기해 발생하는 실권주는 일반 대상으로 추가 청약이 이뤄집니다.

한화솔루션의 모회사인 ㈜한화는 올 3분기 말 기준 한화솔루션 지분 37.2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식 수로 따지면 5954만5978주인데요. 이를 신주배정 비율에 대입하면 ㈜한화는 약 931만8600주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앞서 신주발행가가 3만8200원으로 예정됐다고 했죠. 만일 ㈜한화가 소유한 신주인수권을 모두 행사할 경우 약 3560억원을 납입해야 합니다.

▲  (출처=금융감독원.)
▲ (출처=금융감독원.)

그렇다면 ㈜한화는 3560억원의 현금을 투자할 자금 여유가 있을까요.

올 3분기 별도 기준 ㈜한화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3540억원입니다. 유상증자 참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수중에 있는 현금 전부를 털어야 간신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주)한화 별도 기준 재무지표 추이.(출처=사업보고서.)
▲ (주)한화 별도 기준 재무지표 추이.(출처=사업보고서.)

현금이 부족하더라도 얼마든지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는 있습니다. 영업활동을 통해 추가로 벌어들이는 현금도 있을 테고, 일부 매출채권을 현금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차입을 일으키면 됩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한화에게 3560억원 현금 지출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죠.

사실 자회사가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 모회사의 지원은 필수적입니다. 모회사가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다면 사업에 대한 신뢰나 전망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 수 있죠. 한 마디로 자식이 새로 사업을 하는데 부모가 돈을 대주지 않는 격입니다. 당연히 시장에서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분율 희석도 걱정이죠. 신주를 발행하는데 제 3자가 그 지분을 모두 가져간다면 기존 대주주의 지분율이 자연스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너일가와 지주사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배력 약화입니다. LG화학이 에너지솔루션을 독립시키며 인적분할이 아닌 물적분할 방식을 택한 배경에는 지분율 희석에 대한 불안감도 반영됐습니다.

▲  한화솔루션 요약 지배구조.(출처=사업보고서.)
▲ 한화솔루션 요약 지배구조.(출처=사업보고서.)

만약 ㈜한화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한화솔루션에 대한 지분율은 31.1%로 기존 37.25%에서 6.15%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의 경우 지분 20% 이상만 보유하면 되지만, 공정위가 요건을 30%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꾸준히 보이고 있죠. 이를 감안하면 30%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산술적으로만 평가하면 지분율 희석은 피할 수 없지만 향후 예상되는 공정위의 강화 요건은 만족시킬 수가 있습니다.

㈜한화의 한화솔루션 지분율이 떨어지더라도 경영권을 얼마간 우회적으로 방어하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바로 우리사주조합을 통해서입니다. 우리사주조합은 회사가 신주를 발행하면 신주물량의 20%를 우선 배정받습니다. 우리사주조합이 신주 물량을 전부 소화할 경우 우리사주조합은 유상증자 후 한화솔루션 지분 2.3%를 보유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사주조합은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회사 편을 드는 경우가 많죠.

물론 ㈜한화의 유상증자 참여는 ‘참여 혹은 불참’의 양자택일 문제는 아닙니다. 배정받은 신주를 일부만 사들일 수 있죠. 업계에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관측들이 나옵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모회사인 ㈜한화가 유상증자에 참여 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만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화는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는 22일 오후 장이 마감한 한화솔루션의 유상증자 결정 내용을 종속회사의 주요경영사항으로 공시했습니다. 다만 추가적인 내용은 없었고요. 21일 공시내용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한화가 한화솔루션 유상증자 참여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 있었다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함께 공시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청약예정일은 오는 2021년 2월 24일입니다. ㈜한화는 앞으로 약 2달간의 시간 동안 유상증자 참여 규모를 놓고 계속 고민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룹의 신성장동력인 태양광사업 자금 조달을 자회사에게 모두 맡길지,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힘을 실어줄지 관심이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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