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 한일시멘트 사옥.(사진=한일시멘트.)
▲ 한일시멘트 사옥.(사진=한일시멘트.)

컴퓨터가 단순 반복업무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로봇자동화프로세스(RPA)는 몇 년 전부터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입니다. RPA는 사람 대신 '봇(Bot·로봇소프트웨어)'이 조회·비교·입력 등의 간단한 일을 대신해 신속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최근 인공지능(AI)과 결합한 형태의 봇들이 속속 개발되며 업무 효율성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도입이 되었구요. 점차 전 산업분야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 52시간 규제를 시작하며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제조업체들은 도입을 망설이는 분위기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 시대에 업무 자동화 혁신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초기에 그 변화를 이끄는데 많은 고정비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 RPA 개요 이미지.(출처=마이크로소프트 개요 영상 갈무리.)
▲ RPA 개요 이미지.(출처=마이크로소프트 개요 영상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변화에 둔감한 시멘트업체가 RPA를 적용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일입니다. 한일시멘트는 최근 업계 최초로 RPA를 도입했다고 밝혔죠. 비용전표 처리, 4대 보험료 등 단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데 활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아직 RPA 적용범위가 아주 넓지는 않은데요. 앞으로 확대 적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RPA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일시멘트의 RPA 적용은 단순히 업계 최초라는 데에만 그 의미가 국한되지 않습니다. 향후 RPA의 도입 범위가 넓어지면 장기적으로 비용절감 효과를 노려볼 수 있지요.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적은 인력으로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업계 관계자는 “RPA 업체들은 회사가 하는 업무 특성에 맞춰 ‘봇’들을 개발하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며 “단순히 같은 일을 빨리 해낼 뿐 아니라 실수와 오류 없이 한다는 점에서 시간 및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고 했습니다.

고정비를 줄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일시멘트의 주요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멘트업은 과거와 비교해 현재 그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죠. 과거 1970년대만 하더라도 건설업과 함께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어느새 '성숙산업'이 되었죠. 전방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 산업이라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원료 가격 상승 압박도 받고 있습니다. 한일시멘트의 올 1분기 보고서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한일시멘트는 “시멘트의 주원료 석회석은 국내 풍부하게 매장돼 있어 공급 문제는 없지만, 소성과정에서 필수 에너지원인 유연탄은 전량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며 “현재 유연탄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원가상승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 유연탄 가격 추이.(출처=한국광물자원공사.)
▲ 유연탄 가격 추이.(출처=한국광물자원공사.)

실제로 국제 유연탄 가격은 올해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국광물자원공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톤당 44달러까지 떨어졌던 유연탄 가격은 올 7월 무려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유연탄은 제조원가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시멘트 판매가격이 최근 올랐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지요.

올 1분기 한일시멘트는 매출액 2600억원 중 매출원가로 2100억원을 사용해 80%의 매출원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현대시멘트와 합병하며 회사 외형과 사업규모가 달라졌기 때문에 전년 동기와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습니다. 다만 유연탄 가격이 높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원가율 변화에 신경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한일시멘트 2021년 1분기 매출원가율.(출처=한일시멘트 2021년 1분기 보고서.)
▲ 한일시멘트 2021년 1분기 매출원가율.(출처=한일시멘트 2021년 1분기 보고서.)

게다가 최근 전 세계 이슈로 떠오른 ESG 경영도 골치입니다. 시멘트업은 업종 특성 상 제품 제조 과정에서 대량의 탄소가 배출되는데요. 앞으로 규제가 점점 심해지는 만큼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분석됩니다.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시장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하는데 이 가격 또한 만만치가 않죠.

이처럼 한일시멘트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눈앞에 쌓아두고 있는데요. RPA 도입이 원가절감 및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단초가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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