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10년 전 모 외산 브랜드의 게이밍 노트북을 구입한 적 있다. 화려한 외형과 강력한 성능, 높은 가성비에 '혹'했던 건데 그게 불과 몇 개월 만에 눈물 젖은 '흑'이 될지는 몰랐다. 예상 밖 고장에 수리를 알아보니 서비스센터는 전국에 하나, 짧은 운영 시간에 방문도 어려웠고 수리비도 예상보다 비쌌다. 결국 수리를 포기했고 그 뒤로 외산 PC에 눈길 한번 준 적 없다.

난데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과하기 쉽지만 사후 서비스(AS)가 기업 브랜딩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란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값비싼 전자제품일수록 소비자들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원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 서비스는 '매출'이 아닌 '지출'이다. 매년 개선된 사업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기업들은 종종 서비스 정책조차 '가성비'를 찾곤 한다. 물론 잘하면 좋지만 문제는 그 계산이 '삐끗'했을 때 그 기업은 기자처럼 한 사람의 잠재 고객을 잃는다는 점이다.

HP는 이 점에서 달랐다. 보통 게이밍 PC라면 독특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승부를 본다. 반면 HP는 자사 게이밍 브랜드 '오멘(OMEN)'의 원 모어 띵(One more thing, 하나 더!)으로 '서비스'를 더했다. 서비스란 개념이 그 자체로 눈길을 끌진 않더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겠단 의지다.

▲ 윤희원 HP 코리아 고객지원 이사 (사진=HP)
▲ 윤희원 HP 코리아 고객지원 이사 (사진=HP)

전국 140개 HP 서비스센터+α, 게임만을 위한 전문 센터 오픈
지난 7월 말 HP 송파 게이밍센터 인근 카페에서 윤희원 HP 코리아 고객지원 이사를 만났다. 2000년 HP 서비스 담당 직원으로 입사한 그는 20년이 흐른 지금 고객지원팀 임원 자리에 오른 'HP 서비스 원맨'이다.

윤 이사는 "최근 국내 게이밍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한국 소비자들은 특히 서비스 품질을 중요하게 보는 편"이라며 "기본적인 성능 경쟁과 별개로 게이밍 분야에 없었던, 하지만 꼭 필요했던 고객 서비스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오프라인과 온라인, 양대 서비스 축이 있다.

HP 코리아는 지난 7월 서울시 9호선 석촌역 인근에 '송파 HP 게이밍센터'를 오픈했다. 용산에 이은 2호점이다. 외관부터 뭔가 다른 점이 느껴진다. 'HP'하면 흔히 떠오르는 파란 간판 대신 검은색 배경에 하얀 로고, 내부도 비슷한 컬러 테마로 구성돼 있다. 좌측에는 HP 오멘 브랜드 최신형 데스크톱 세트와 고사양 가상현실(VR) HMD '리버브(Reverb)' 체험존이 있고 우측에는 HP 게이밍 액세서리들이 진열돼 있다. 데스크에는 HP 전문 엔지니어가 상주한다.

▲ 송파(위), 용산(아래) HP 게이밍센터 내부 전경, 게이밍 전문 서비스 엔지니어들이 상주하며 최신 오멘 브랜드 PC, HP 가상현실 기기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사진=HP)
▲ 송파(위), 용산(아래) HP 게이밍센터 내부 전경, 게이밍 전문 서비스 엔지니어들이 상주하며 최신 오멘 브랜드 PC, HP 가상현실 기기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사진=HP)
HP에 게이밍센터 오픈은 새로운 도전이다. 사실 HP 국내 서비스센터 수는 이미 140여개로 높은 접근성을 갖췄다. 그럼에도 게이머에 특화된 전문 서비스센터를 오픈한 이유는 그들이 그만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윤 이사는 "오멘은 HP 소비자 제품군에서 가장 고급형 브랜드"라며 "서비스센터를 찾는 고객들이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고급화와 제품 체험에 중점을 둔 프리미엄 센터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기존 HP 서비스센터에서도 오멘 제품 수리가 가능하지만 게이밍 센터는 오직 오멘 제품에 최적화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제품 구입 전 누구나 방문해 오멘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국내에서 게이밍 PC 단독으로 특화된 전문 체험존은 HP 게이밍센터가 유일하며 특히 고가의 게이밍 제품 구입 전 실제 성능을 체감해보고 싶은 고객들의 호응이 높다. 한국 전자제품의 메카인 용산 1호점을 시작으로 2호점은 젊은 게이머 고객들이 많이 거주하는 송파구가 낙점됐다. 2022년에는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 입점도 계획 중이라고.

일요일 새벽 3시 22분 문의하면? 23분에 답장하는 HP
HP 게이밍센터가 오프라인 서비스의 차별화를 꾀한다면 온라인 경험은 24시간 가동되는 디지털 채널의 몫이다. 윤 이사는 "오멘 사용자라면 제품 조립부터 설치, 고장 및 기타 성능 저하 이슈로 게임 플레이에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준비한 것이 '24/7 상담 서비스'. 말 그대로 24시간 일주일 내내 신청 가능한 서비스다. 다른 HP 상담 서비스는 오후 6시까지 제공되는 반면, 오멘 게이밍 제품군에 한해선 카카오톡 HP 채널에 마련된 '게이밍 전용관'을 통해 주말 새벽에도 전문 상담원에게 즉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윤 이사에 따르면 평균 답장 시간도 1분 이내로 거의 '즉시'다. 제품 활용법부터 고장 상담, 기타 게이밍 제품 관련 모든 서비스 응대가 제공된다. 윤 이사에 따르면 이런 서비스를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만큼은 어느 게이밍 브랜드에도 없는 HP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다.

"실제 늦은 밤, 새벽에도 문의가 있냐"고 묻자 윤 이사는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다"며 "이런 서비스가 아예 없는 것과 있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과 경험 면에서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 윤희원 HP 코리아 고객지원 이사 (사진=HP)
▲ 윤희원 HP 코리아 고객지원 이사 (사진=HP)

HP는 과거부터 디지털 서비스에 관심이 높았던 브랜드다. 윤 이사가 HP에 입사한 2000년대 초 이메일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메일 서비스 상담을 시작한 것도 HP다. 윤 이사가 처음 맡았던 업무라고도 한다. 이런 DNA는 지금도 각종 디지털 채널을 이용한 고객 접점 확대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톡 외 서비스센터 예약은 '네이버 예약'으로도 가능하며, 이를 통해 동시간 방문 고객을 분산시키고 수리에 필요한 제품을 빠르게 수급하고 있다.

한국은 HP에 있어 중요한 시장이기도 하다. HP 추산 한국의 게이밍 마켓 규모는 전세계 3번째 수준이다. e스포츠나 게임 관련 상품(굿즈), 방송 산업도 굉장히 발전한 시장에 속한다. HP 한국 PC 사업부가 올해를 게이밍 비즈니스 확대의 원년으로 삼고 서비스 질 개선에 많은 투자에 나선 이유 중 하나다.

신규 서비스 출시 후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변화의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윤 이사는 "각종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게이밍 PC 제품군 점수가 확실히 높아진 점이 보인다"며 "서비스센터에 대한 고객 평가만 해도 5점 만점에 평균 4.6점 정도를 기록하는 등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고객 선호도에 맞춰, '재미있는 서비스' 제공할 것
우리나라와 달리 회계연도 4분기를 맞아 최근 내년도 사업 계획을 준비 중인 HP. 한국 서비스팀의 경우 지금보다 더 세분화된 서비스 전략을 꾀하고 있다. 윤 이사는 이를 '고객군마다 모두 다른 선호도에 최적화된 서비스'라고 귀띔했다.

나아가 고객이 '재미있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예컨대 게이밍센터에 방문하면 익숙한 게임 BGM을 들려준다거나 엔지니어들이 유명 게임 캐릭터 복장을 하고 있거나 하는 아이디어도 있다. 아직 논의 중인 수준이지만 윤 이사는 "요즘 같이 더운 날 무거운 제품을 들고 센터를 방문했을 때 고객들이 잠깐이라도 웃고 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향후 이런 서비스 측면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MZ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의 서비스팀 직원도 구하고 있다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HP의 문을 두드려봐도 좋겠다. HP 코리아의 경우 20년을 원맨으로 근무한 윤 이사처럼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윤 이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안정화 단계에 이른 HP 서비스 인프라를 이제 디지털 중심으로 안정화해 나갈 단계다. 어떤 고객 서비스든 앞으로도 고민과 적용은 HP가 가장 먼저 시작할 것이고 앞서가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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