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삼성전자가 증권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29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진행했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삼성전자의 내년도 사업 계획과 더불어 '주주 환원 정책' 이었을 겁니다. 삼성전자의 2021년 이후 배당정책은 주가에 영향을 주며, 이는 이건희 회장 작고 이후 유족의 상속세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번 컨퍼런스콜에 주주 환원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다소 이례적입니다. 삼성전자의 통상적인 주주 환원 정책 발표 시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거 자료들을 보면 '2018~2020년 주주환원정책 발표'를 낸 시점은 2017년 10월 31일이었습니다. 2017년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한 시기는 2016년 11월 29일, 2016년 '주주환원 정책 시행계획 발표' 시기는 2015년 10월 29일이었습니다. 통상 10~11월에 관련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번 컨퍼런스콜에서는 이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  2015년 이후 세 차례의 주주 환원정책은 10~11월에 열렸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번 주주환원 정책 발표를 내년 1월 말에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갈무리
▲ 2015년 이후 세 차례의 주주 환원정책은 10~11월에 열렸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번 주주환원 정책 발표를 내년 1월 말에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뉴스룸 갈무리

증권가에서도 당연히 이에 대해 궁금했겠죠. 컨퍼런스콜 질의응답 시간에 이세철 씨티증권 연구원이 2020년 잔여재원의 배당 방향과 내년도 이후 주주 환원 정책의 계획을 물었는데요.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현 시점에서 불확실한 수치를 바탕으로 잔여재원에 대해 언급하기보단 확정된 후에 확실한 숫자로 말씀드리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라며 "차기 주주 환원 정책은 현재 여러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지만 매크로 불확실성으로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해 이 역시 내년 1월 말 실적 발표 때 잔여재원 발표와 함께 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2015년 이후 세 차례의 주주환원 정책 발표가 모두 연내에 있었는데, 올해는 2020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되는 '내년 1월'로 시기를 미룬다는 겁니다. 창사 후 처음 진행한 3년 단위 주주 환원정책의 종료 시점이고 또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 요인이 있는 만큼 발표를 미루겠다는 게 이해는 갑니다.

다만 증권가에선 그보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아내인 홍라희 여사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입니다. 이들은 이 회장이 생전 가지고 있던 주식의 60%(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 최대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일 경우 10% 추가)를 상속세로 내야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삼성전자 주식을 2억4927만3200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9일 시가(5만8200원)를 기준으로 무려 14조5077억원에 달하는 액수이며, 여기에 상속세율 60%를 환산하면 상속세는 8조7046억원에 이릅니다. 상속을 받는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돈이겠죠.

통상 상장주식의 경우 상속세는 고인의 사망일을 기점으로 전후 2개월 간 시가를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생전 주가는 이미 정해진 숫자이니 조정할 수 없습니다만, 사후 주가는 상속세 산정이 끝나는 오는 12월 25일까지 계속 바뀝니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유가족들이 상속세를 덜 내려면,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낮을 수록 좋을 겁니다. 삼성전자가 배당정책 발표를 미룬 게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만약 향후 배당을 덜 주고 싶다면 오히려 빨리 발표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배당을 덜 준다고 하면 그만큼 주가는 빠질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반대로 주주 친화적 배당 정책을 펴고 싶다면 굳이 지금 발표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 배당을 많이 준다고 했다간 주가가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배당정책 발표를 미룬 이유가 결과론적으로 배당을 많이 주기 위한 예고에 가깝다고 보고 있습니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의 상속세가 산정되는 기간이라 최대주주 입장에서 주가가 오르는 걸 반기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내년 배당이 꽤 오른다고 한다면, 굳이 이 시점에 발표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배당 정책을 발표하는 시기가 법으로 정해진 게 없고, 원래 연간 계획은 내년도 실적 발표 첫 스타트를 끊는 4분기 말에 나오기 때문에 그때로 미룬 게 아닌가 추정된다"며 "삼성전자에서 배당을 늘릴 것이란 추정이 가능해 보인다"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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