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타워.(사진=GS그룹)
▲ GS타워.(사진=GS그룹)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은 과거 2005년 LG그룹에서 독립한 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성장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지만 16년이 흐른 현재 GS그룹을 글로벌 기업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사업 매출 대부분은 정유사업에 치중돼 있고 나머지 사업 포트폴리오는 내수 의존도가 높다. 계열 분리 이후 회사 몸집도 커졌고 재계 8위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지만 그룹의 기본 골격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 변화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GS그룹의 선택은 바로 수장 교체였다. 허 명예회장은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 도전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며 임기를 2년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룹 회장직을 내려놨다.

▲ 허태수 GS그룹 회장.
▲ 허태수 GS그룹 회장.

그룹 혁신의 중책은 허 명예회장 막내동생인 허태수 회장이 맡았다. 그동안 GS홈쇼핑을 경영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평가를 받은 허 회장은 취임 후 적극적으로 혁신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해 1월 스탠포드 대학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선진 기업들이 도입하여 검증받은 혁신 방법론을 각 계열사에 적극 전파하여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했으며, 또 6월 GS임원포럼에서는 “변화의 흐름에 주목해 이제 우리의 내부 역량을 이러한 외부의 변화에 맞춰 혁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허 회장의 이러한 시도가 그룹 전체 혁신으로 이어질지에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수십 명의 오너일가가 소수 지분을 나눠 갖은 GS그룹 특성상 그룹 회장이라고 해서 단독으로 중대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나눈 지분에 따라 경영권도 나눠 가진 셈이다. 과연 허 회장은 지난 16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그룹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GS칼텍스

정유사업에 집중된 사업모델은 GS그룹의 약점으로 꼽힌다. 16년 전 계열 분리 당시 기자회견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질문이 나왔을 정도다. 오랜 기간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기업집단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기업집단 재무현황을 보면 GS칼텍스가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2019년 말 기준 GS그룹 매출액은 62조4000억원인데, 같은 해 GS칼텍스 홀로 거둔 매출이 무려 33조3000억원이다. GS그룹 전체 매출에 GS칼텍스(GS에너지의 관계기업) 매출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홀로 그룹 매출의 절반 혹은 3분의 1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이다.

 

▲ ㈜GS‧GS칼텍스 매출추이.(출처=각사 감사보고서)
▲ ㈜GS‧GS칼텍스 매출추이.(출처=각사 감사보고서)

그룹 지주사 GS㈜와 GS칼텍스의 실적을 비교해보면 좀 더 구체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GS에너지, GS리테일, GS홈쇼핑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GS는 연결 기준 지난 5년 동안 13조~18조원 사이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GS칼텍스의 매출은 22조~37조원으로 매년 ㈜GS의 매출을 훌쩍 웃돌았다.

문제는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회사가 온전히 GS 소유가 아니라는 데 있다. ㈜GS의 에너지 중간지주사 GS에너지가 GS칼텍스 지분 50%를 갖고 있고, 나머지 50%는 다국적 석유회사 쉐브론의 소유다. 이 때문에 GS는 GS칼텍스를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 분류해 놓았고, GS칼텍스의 매출과 영업이익 또한 회계상 연결기준으로 잡히지 않고 지분법 손익으로만 반영된다. 게다가 이는 곧 그룹의 본체와도 같은 GS칼텍스를 독립적으로 경영할 수 없다는 뜻과도 같다. 실제로 12명의 등기임원 중 딱 절반인 6명은 쉐브론 소속이다.

▲ GS칼텍스 배당 추이.(출처=GS칼텍스 감사보고서)
▲ GS칼텍스 배당 추이.(출처=GS칼텍스 감사보고서)

GS는 GS칼텍스의 배당을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다. GS칼텍스는 매년 적게는 1500억원에서 많게는 6000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배당해왔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배당액만 3조7800억원에 달한다. 

벤처 투자 나섰지만…

물론 그동안 GS가 투자를 게을리한 것은 아니다. 중간지주사인 GS에너지만 보더라도 2014년 청라에너지 지분을, 2015년에는 인천종합에너지 지분을 인수하며 집단에너지 사업을 강화했다. 또 2014년에는 신평택발전과 동두천드림파워에 투자해 전력사업에 진출했다.

가스전력 사업 투자는 실제로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며 실적을 대폭 개선했다. ㈜GS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사업 부문별 실적 추이를 보면 가스전력 부문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동안 유통, 무역 부문의 영업이익이 제자리를 걷는 동안 가스전력 부문 영업이익은 1800억원에서 한때 1조5000억원까지 성장했었다.

▲ (주)GS 사업부문별 영업이익 추이.(출처=(주)GS 사업보고서)
▲ (주)GS 사업부문별 영업이익 추이.(출처=(주)GS 사업보고서)

최근에도 활발하게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다. GS칼텍스는 2021년부터 연간 에틸렌 70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 건설을 목표로 2019년 2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비스페놀A 제품과 C4유분 제품을 제조하는 롯데GS화학을 설립했다. 롯데GS화학은 앞으로 2023년까지 총 8000억원을 공장 건설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허태수 회장의 과제는 단순 투자가 아니라 미래 먹거리 발굴이다. 그동안 GS의 투자는 대부분 기존사업 혹은 계열사업 강화에 편중돼왔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LG, SK, 한화처럼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기보다는, 원래 잘하던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한 투자였다.

허 회장은 취임 이후 벤처를 설립하며 먹거리 발굴에 시동을 걸었다.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투자회사 GS비욘드, GS퓨처스를 설립했다. GS퓨처스는 ㈜GS, GS에너지, GS칼텍스, GS리테일, GS홈쇼핑 등 10개 계열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1억5500만달러(한화 약 1700억원)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GS는 이 두 벤처회사를 통해 현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나아가 M&A까지 노린다는 계획이다.

또 지난 8일에 ㈜GS는 친환경 바이오 분야 유망 스타트업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허 회장 취임 이후 강력히 추진하는 벤처 투자의 일환이다. ㈜GS 스타트업 챌린지 프로그램을 통해 6개 업체를 선정하고, 향후 사업모델을 지원해 상생하는 혁신 모델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다만 GS가 재계 8위의 대기업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체질 개선을 논할 정도의 투자규모는 아니다. SK, 한화, LG 등이 수소와 전기차 등 미래 먹거리 사업에 수조원을 쓰는 것과는 확실히 대비된다.

수십 명 오너일가 구성원 설득 할 수 있을까

GS그룹은 수십명의 오너일가 특수관계자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그룹 지주사 ㈜GS의 2대 주주인 허창수 명예회장이 보유한 지분은 4.75%에 불과하다. 허태수 회장의 지분율은 그 절반 수준인 2.12%로 단독으로 중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절대 아니다. 최대 주주인 허용수 GS에너지 사장의 지분율도 5.26%에 그친다. 

GS그룹이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이라고 평가 받는 이유에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자리한다. 실제로 중요한 결정은 가족회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가풍 자체가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해 위계질서 또한 강하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허창수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허태수 회장의 그룹 경영을 두고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LG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암묵적인 장자승계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그룹을 이끌어온 허창수 명예회장 역시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관건은 막내 허 회장이 과연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 여부다. 수십 명의 오너일가가 이해관계가 얽힌 회의를 통해 중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반대로 얘기하면, 한 사람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뜻과도 같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하는 스타트업 투자 역시 향후 새로운 비즈니스로 연결하기 위한 사전작업인데, 결정적인 대규모 투자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재계 관계자는 “GS는 M&A 매물이 나올 때마다 인수후보자로 계속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승부수를 띄운 적은 없다”며 “돈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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