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 기지국. (사진=픽사베이)
▲ 통신 기지국. (사진=픽사베이)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6G(6세대 이동통신) 분야에 35억달러(약 4조원)를 공동 투자하면서 '오픈랜'(Open-RAN) 기술을 활용하는데 뜻을 모은 가운데 주요 통신 장비 제조사들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꼽히는 오픈랜은 무선 접속 기술을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개방형으로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화웨이·에릭슨·노키아·삼성전자 등 장비 제조사들은 통신사들의 요구사항에 맞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공급한다. 통신사들마다 원하는 장비의 성능이나 보안의 정도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 사에 맞춤형 장비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오픈랜은 기지국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각 사 맞춤형이 아닌 기능별 표준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통신사들은 각 사가 필요로 하는 성능에 따라 원하는 표준 기술만 가져다 기지국 하드웨어에 적용하면 된다. 기존처럼 특정 제조사의 장비에 종속되지 않고 보다 주체적으로 기지국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중요한 기능은 오픈랜 소프트웨어가 담당하고 기지국은 단순한 전파의 송수신 정도의 기능만 담당하게 된다. 

이번 한미 정상의 공동성명서에 6G 분야 공동투자에서 오픈랜을 활용하는 방안이 담긴 것은 미국이 6G를 비롯한 차세대 통신 기술 시장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통신 기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드웨어보다 클라우드 기반의 소프트웨어가 더 많이 차지해 가고 있다. 기존에는 하드웨어로 해결했던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고 이를 클라우드에 올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지국에 들어가는 장비의 수를 줄여 기지국의 부피를 줄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클라우드에 있는 소프트웨어를 유지보수하는 방식으로 기지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5G와 6G 등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통신망이 인공지능(AI)·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데 필수적인 인프라로 꼽히면서 미국이 통신 소프트웨어 기술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현재 글로벌 통신 장비 시장은 화웨이·에릭슨·노키아가 주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각 제조사들은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오픈랜이 기존 제조사의 특정 장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통신사들이 보다 독립적으로 기지국을 구축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있다보니 통신 시장을 주도하는 화웨이나 에릭슨은 신중한 입장이다. 개방형 기지국 소프트웨어가 나오게 되면 기존 장비사들의 존재감은 기존보다 줄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노키아와 삼성전자는 오픈랜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더 많은 통신사들에게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개방형 공통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통신사들이 굳이 기존에 쓰던 장비에 종속될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각 통신사에 맞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아닌 개방형 공통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다보면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장비 제조사 관계자는 "오픈랜은 이상적으로 본다면 적절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각 통신사에 맞춘 소프트웨어보다 좋은 성능이 나올지는 의문"이라며 "또 통신사간 서비스 품질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하향 평준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은 오픈랜의 장점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도입되기까지는 아직 먼 얘기라는 입장이다. 성능·안정성·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한 통신 인프라에서 조금이라도 성능이 저하돼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가장 앞서 LTE와 5G 등의 전국망을 구축하는 국가는 오픈랜이 나온다고 해도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 기존에 구축된 장비의 소프트웨어를 걷어내고 다시 설치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국내 통신 3사가 국내·외 오픈랜 관련 얼라이언스의 일원으로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은 먼 얘기"라며 "오픈랜은 다양한 미래 방향 중 하나로 검토 중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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