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서 현대자동차의 구형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이 서행 중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최대 시속 90km까지 급가속한 급발진 의심 사례가 나왔다. 국내에서 발생한 첫 전기차 급발진 의심 사례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자동차 시장의 질서가 이제 막 바뀌고 있는 지금이 해결 방안을 만들 최적의 시기일 지 모른다. 현상의 실체, 급발진의 이유, 제조사측의 반응, 전문가의 조언을 종합, 전기차 급발진 의심 현상에 대해 알아봤다.

▲ 자동차용 전자파 차폐용 탄소 복합소재 기술전망.(이봉진 변리사)
▲ 자동차용 전자파 차폐용 탄소 복합소재 기술전망.(이봉진 변리사)

현대자동차 전주서비스센터는 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A씨가 제기한 '아이오닉 일렉트릭(2017년형)'의 급발진 의심 증상의 원인으로 차량 내 블랙박스 등 전자기기에서 발생한 전파 장애를 꼽았다. 현대차 전주서비스센터 직원과 A씨간 전화 통화 내역에 따르면 센터 직원은 "분석 결과 전자장비 노이즈의 전파 때문일 수 있다는 연락을 (본사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간 이후 <블로터>와의 통화에서 현대차 전주센터 직원은 원인을 아직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고 추가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전자파가 차량 급발진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전기차주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슈로 부상할 조짐이다. 센터 직원의 말처럼 블랙박스나 휴대폰 등 전자파를 내보내는 전자기기가 전기차 급발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차량에서 블랙박스도 떼어내야 하고 휴대폰을 지니고 차량에 탑승하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센터 직원으로부터 중간 조사결과 연락을 받은 아이오닉 일렉트릭 차주 A씨는 네이버 카페 '전기차동호회'에 관련 글을 게재했다. 댓글을 단 동호회 회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블박(블랙박스) 달았다고 급발진할 수 있나요", "모든 전기차가 급발진 할 기세네요", "헐, 이상한 결과네요" 등의 반응이다. 불안하다는 반응에서부터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도 있다.

전자파, 전기차 급발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차주들의 반응과 달리 전자파가 전기차의 급발진을 야기할 수 있다는 논리는 전혀 없는 얘기가 아니다. 현대차 서비스센터 직원의 말처럼 블랙박스 등이 차량 급발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과거부터 있었다. 특히 차량의 전기화가 가속화하면서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블로터>와의 전화통화에서 A씨의 급발진 의심 증상이 전파 장애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가속이 되는 건 구동 모터의 제어시스템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신호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대차가 말하는 노이즈는 일종의 전파 장애로 볼 수 있는데,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A씨의 경우) 전기차의 신호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전기차도 잘못된 신호가 입력되면 내연기관 차량처럼 급발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차의 경우 운전자가 페달을 밟거나 뗄 경우 신호가 모터로 전달된다. 내연기관 차는 가속페달을 밟으면 연료가 분사되고 엔진의 각 실린더 내부에서 폭발이 발생해 가속이 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즉각적으로 신호에 반응하는게 특징이다. 이 때문에 잘못된 신호가 입력되거나 이상 전력이 모터로 공급될 경우 모터는 과회전을 하게 된다. 이는 바로 바퀴로 전달돼 급발진이 발생한다.

현대차 전주센터가 "블랙박스 등 차량 내 전자기기로 인해 노이즈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에 김 교수는 "블랙박스나 시거잭으로 노이즈가 발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설령 블랙박스의 신호로 인해 노이즈가 발생했다면 (차량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연구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경섭 여주대 교수(전자과)는 '전자·통신기기의 전자파 간섭에 의한 차폐 기술' 자료에서 "고출력 전장품과 운전보조장치(ADAS)로 인해 기존의 전기시스템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며 "차량 내 사용전력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차의 전자파 방출량도 늘어나고 전장품의 오동작과 급발진 등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 시대별 전장 장비 증가 추이 및 전력소모량 변화.(자료=자동차용 전자기파 차폐·흡수 LUCON 소재)
▲ 시대별 전장 장비 증가 추이 및 전력소모량 변화.(자료=자동차용 전자기파 차폐·흡수 LUCON 소재)

실제 전장 제품이 차에 탑재되기 이전에는 급발진은 아주 희귀한 사례에 속했다. 1990년 이전에는 급발진과 관련한 사고 사례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자동차의 성능과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전장 제품을 탑재하면서 급발진 사례가 늘었다.

소비자안전국 생활안전팀이 2012년 발표한 '자동차 급발진 사례조사 결과보고' 자료에 따르면 급발진을 주장하는 소비자 상담은 2008년부터 2012년 6월까지 연 평균 196건이 접수됐다.

▲ 자동차 급발진 신고 현황.(자료=자동차용 전자기파 차폐/흡수 LUCON 소재)
▲ 자동차 급발진 신고 현황.(자료=자동차용 전자기파 차폐/흡수 LUCON 소재)

급발진 사례의 상당수는 시동을 건 직후에 발생했는데, 자동차 전자제어장치(ECU, Electronic Control Unit)의 오작동으로 엔진의 과회전을 유발해 발생했다. 급발진 의심 사례의 80%는 운전자의 오작동 또는 실수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겪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급발진 의심 사례는 서행 중 급가속했다는 점과 7개월 째 부정기적으로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사례와 차이점이 있다. 브레이크 페달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다만 A씨가 촬영한 급발진 의심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가속된 점이 급발진의 사례로 볼 수 있는 점이다.

자동차 제조업계 전자파 차단 노력 이어져

이런 점을 종합하면 "노이즈가 찼을 때 가속현상이 있었다"는 현대차 전주센터의 설명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전자파는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고, 다른 전자기기에 오동작 또는 전파 장해를 일으킨다. 전파 장해가 발생할 경우 항공기와 관제탑 간 교신이 불안정해질 수 있고, 고속열차가 선로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자동차의 경우 자동변속기 조절장치에 영향을 미쳐 차가 급발진하는 경우도 있다.

토요타는 2010년 급발진 사고로 미국에서 800만대를 리콜하고 5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차량의 전자파가 급발진 원인으로 제기됐는데,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전자파와 급발진이 무관했다고 결론냈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계에서는 전자파를 차단할 수 있는 차폐(Electromagnetic InterferenceShielding, EMI shielding)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차폐의 목적은 차량의 전장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를 반사하거나 흡수해 전자기기 고유의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차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는 '고전압 정션박스 커버용 차폐 복합 소재'를 개발했다. 현대차는 "카본계 필러 복합소재를 개발해 고전압에 의한 전자파 노이즈 영향성을 금속 수준까지 감소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2018년 개발됐다.

이외에도 전장 장비가 늘어남에 따라 12V 배터리 시스템 대신 48V 배터리 시스템으로 바꾸는 추세다.

김 교수는 "전기차는 움직이는 가전제품과 같다"며 "전기차도 운전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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