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가상현실(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2' 기반 VR 게임 대중화에 속도를 낸다. 첫 포문은 이달 10일 출시한 '크레이지월드 VR'로 열었다. 넥슨이 보유한 인기 IP(지적재산권) '크레이지 아케이드' 캐릭터로 전세계 유저들과 다양한 스포츠 대전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출시일 당일 직접 구입해 플레이해봤다. 특히 출시 전 글로벌 베타테스트에 1년간 1만명 이상이 참여한 프로젝트인 만큼 완성도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약 몇 시간 플레이해본 후 느낌은 '잘 만든 게임에 그렇지 못한 가이드'로 정리됐다. 먼저 게임 전반적으로는 캐주얼 게임의 묘미를 잘 살렸다는 평가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크레이지 아케이드 캐릭터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유저들과 소통하거나(음성, 감정표현) 개인 공간인 마이룸을 관리하고 루찌(사이버머니)로 상점 아이템을 구입하는 등 기본적인 구조는 여타 캐주얼 게임과 다르지 않다.

메인 콘텐츠인 △사격 △양궁 △볼링 △테니스 △쇼다운으로 구성된 미니게임 조작도 단순하다. 게임을 클리어하면 내 점수가 실시간으로 측정돼 모드별 플레이어 순위가 산정되며 상위 10명의 랭커는 마을 전광판에 이름이 노출된다. 게임 플레이로 모은 루찌는 상점에서 캡슐형 아이템(뽑기)에 이용할 수 있다. 만약 기록에 관심이 없는 게이머라면 루찌 모으기가 어렵지 않은 만큼 아이템 모으기를 목표로 삼고 즐길 수 있어 보인다. 360도 VR게임인 데다가 게임 진행 속도가 빠른 편으로 몰입도가 높은 편이다. 그동안 주로 즐겼던 '비트세이버' 같은 리듬 VR 게임은 체력 소모가 커 30분 이상 플레이하기 어려웠다면 크레이지월드 VR은 1시간 이상 플레이에도 땀이 나지 않고 몸은 가뿐했다.

▲ 미니게임 사격(왼쪽), 테니스 플레이 화면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 미니게임 사격(왼쪽), 테니스 플레이 화면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다만 냉정히 말해 아직 세부적인 완성도, 특히 사용자에게 게임을 안내하는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게임 접속 후 NPC 캐릭터가 기본적인 조작법을 설명하고 각 미니게임 시작 전에도 간단한 조작법이 안내되지만 정교함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테니스'의 경우 상대방 공격 방향에 맞춰 내 캐릭터가 알아서 이동하므로 사용자는 공을 방향에 따라 쳐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플레이 중 자세히 보면 공이 라켓에 닿는 순간 'Good', 'Great', 'Perfect' 등 여러 판정이 표시되지만 어떻게 쳐야 'Perfect'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리뷰 영상 제작 시점에는 체험하지 못했지만 이후 다른 유저와 대전하는 멀티플레이 테니스를 경험해보니 역시 어떤 경우 내 공격이 유효타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어 쌍방간 '스매시 게이지'만 모으는 지루한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아이템 설명도 부실하다. 크레지지월드 VR에는 아직 과금 요소가 없고 게임 플레이를 통한 루찌 벌이가 수월한 편이라 '뽑기'를 통해 다양한 꾸미기, 미니게임용 장착 아이템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아이템의 기준이 모호하다. 각 아이템에는 별 하나부터 별 세개까지 아이템 등급, 혹은 희귀도로 추정되는 표식이 달려 있다.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 게임 내 장비 장착 메뉴(왼쪽)과 아이템 뽑기 장면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 게임 내 장비 장착 메뉴(왼쪽)과 아이템 뽑기 장면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플레이 초기에는 '혹시'했으나 계속 진행하다 보니 높은 등급의 아이템이 성능도 좋고 기록 세우기에도 유리하단 점이 가시적으로 확인됐다. '사격' 모드에서 4~5발을 쏴도 잘 죽지 않던 괴물 물고기가 별 3개 등급의 총으론 1~2방에 쓰러지는 걸 확인한 직후다. 양궁에서도 높은 등급 아이템이 덜 빗나가는 듯하다. 그러나 같은 등급 내 아이템 사이에선 어떤 능력 차이가 있는지 여전히 알 도리가 없다. 싱글플레이가 불가능한 쇼다운 모드는 온라인 매칭이 되더라도 게임 시작 전 승리 요건을 설명해주지 않아 더욱 난감하다. 몇 번인가 패배하며 루찌를 잃은 후에야 이것이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들의 1:1 권총 대결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받는 캐주얼 게임은 대개 손쉬운 조작 방식과 더불어 중독성 높은 목표 의식을 제공한다. 크레이지월드 VR은 둘 다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론 사소한 설명의 부재로 유저가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도록 한다. '게임 센스'가 부족한 라이트 유저라면 자신이 왜 낮은 점수를 기록할 수밖에 없는지 더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긴 베타테스트 기간을 고려할 때 사용자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모자란 점은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다.

▲ 플레이어들이 모이는 크레이지월드 마을, 1인칭 시점이다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 플레이어들이 모이는 크레이지월드 마을, 1인칭 시점이다 (자료=게임 플레이 영상 갈무리)

다만 지적된 문제가 게임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기에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기자기한 게임 구성과 짧은 플레이 타임, 목표 의식을 자극하는 구조로 가볍게 즐기기 좋으며 가족용 게임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정면 응시 위주의 화면 구성을 선택해 VR 게임의 단점인 '어지럼증'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SKT 앱마켓 자회사인 원스토어는 출시 기념으로 정가 2만7000원의 크레이지월드 VR을 9900원에 판매하며 초반 유통 지원을 돕고 있다.

한편 SKT 입장에서는 크레이지월드 VR이 VR 게임 생태계 확대에 필요한 운영 노하우를 쌓는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SKT는 국내 대기업 중 드물게 AR(증강현실)·VR 콘텐츠 자체 제작 스튜디오와 모바일 플랫폼을 보유했을 만큼 VR 사업에 높은 관심을 지닌 회사다. 게임 분야에서는 올해 하반기 카카오와 협업해 개발 중인 두 번째 오큘러스 퀘스트용 VR 게임 '프렌즈월드 VR'을 선보일 예정이며 파트너사들과 협업해 VR 게임을 지속해서 출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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