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지난 1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CBDC(디지털 법정화폐)가 발행되면 스테이블 코인도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최근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CBDC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파월의 이 발언은 마치 CBDC가 스테이블 코인을 대체할 거란 말처럼 들립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계한 가상자산(암호화폐)으로, 미국이 만약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면 정말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 없어 질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상용화가 멀지 않아 보이는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특징 및 입지 비교를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가, 민간이 발행한 가장 안정적인 디지털 자산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하는 주체가 다를 뿐 가치 변동성이 적은 안정적 자산으로 통합니다. 먼저 CBDC는 각국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입니다. 실물 없이 전자적으로만 발행되며 중앙은행이 보증하므로 그 가치는 기존 지폐와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매년 전세계 현금 사용량이 감소하는 추세와 더불어 전자 화폐를 통한 유연한 통화 정책 수립, 지하경제 활성화를 막고자 하는 나라들이 CBDC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1월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전세계 86%의 중앙은행이 어떤 방식으로든 CBDC를 연구 중인 것으로 나타났죠.

스테이블 코인은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일반 가상자산의 단점인 가치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입니다.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이 대표적입니다. 가치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USD)에 1:1로 고정돼 있어 이름 그대로 '안정적(Stable) 코인'으로 불리는 건데요. 예컨대 USDT 하나는 언제든 미국 1달러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달러 등의 법정화폐 대신 가상자산 담보로 운영되는 다이(Dai) 같은 스테이블 코인도 있지만 여기서선다루지 않겠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의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가상자산의 한 갈래이므로 국가에 상관없이 교환이 빠르고 쉽습니다. 이 덕분에 가상자산 시장 내에서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로 쓰이며 많은 거래소가 USDT 기반의 가상자산 거래를 지원합니다. 원화로 USDT를 구입해 거래하거나 가상자산을 매도해 USDT화할 수 있는 거죠. USDT는 다시 활용성 높은 달러로 간편하게 환전할 수 있다 보니 인기가 높습니다.

▲ 1달러로 고정된 USDT의 가치 (자료=코인마켓캡)
▲ 1달러로 고정된 USDT의 가치 (자료=코인마켓캡)

가치, 지급 신뢰도는 CBDC가 앞서
그럼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을 비교해볼까요? 둘의 공통점은 디지털 화폐로서 교환·관리가 쉽고 가치도 법정화폐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다만 가치, 지급 신뢰도 면에선 CBDC가 스테이블 코인보다 더 낫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에서는 급작스런 수요·공급 변화로 인해 일시적 가치 변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반면 CBDC 관리 주체가 중앙은행이므로 가치 변동성이 제로(0)이기 때문이죠.

지급 신뢰도 면에서도 CBDC가 앞섭니다. CBDC의 가치는 중앙은행이 담보하므로 언제든 실물 화폐로 교환될 수 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사의 현금 보유고가 지급 신뢰도를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1만달러의 USDT가 발행됐다면 테더의 계좌에도 1만달러의 현금이 준비돼 있어야 사용자는 언제든 즉각 USDT를 달러로 환전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테더만 하더라도 현금 보유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 5월 처음 공개된 테더의 자산 내역에 따르면 75.85%의 현금성 자산에서 현금 비중은 3.8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따랐습니다. 만약 어떤 문제로 단기에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디지털 뱅크런'이 테더에서 발생할 경우 현금 지급이 쉽지 않은 상황인 거죠. 은행과 달리 이 경우 보유자가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즉, 신뢰도만 놓고 보면 CBDC의 완승입니다.

▲ 테더의 2021년 3월 말 기준 지급자산 보유 현황, 현금(Cash)는 3.87%에 불과하다
▲ 테더의 2021년 3월 말 기준 지급자산 보유 현황, 현금(Cash)는 3.87%에 불과하다

가상자산 시장 내 활용도, 확장성은 스테이블 코인 '승'
화폐의 용도 면에선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CBDC의 단점은 법정화폐인 만큼 사용처가 주로 자국 내에 한정될 것이란 점입니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지금도 전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며 가치도 동일합니다. 이 때문에 전세계 이종 가상자산 간 거래 매개체 역할도 스테이블 코인이 훨씬 유리하고요. 일례로 20일 마스터카드는 사용자들이 가상자산으로 가맹점에서 결제를 요청하면 시스템 내부에서 USDC로 변환한 뒤 결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서비스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해 가상자산의 일상 내 거래 활용폭을 확대해보겠다는 시도입니다.

복잡한 은행 송금망 대신 상대적으로 단순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므로 송금 절차나 교환에 걸리는 시간, 수수료도 훨씬 절약됩니다. 이런 스테이블 코인의 잠재력은 과거 페이스북이 주도한 리브라(디엠) 프로젝트를 통해 엿볼 수 있는데요. 초기 리브라는 아예 전세계 통화와 연동되는 수준의 대형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로 기획되며 기대를 모았으나 글로벌 통화정책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각국 정부의 압박으로 좌초된 일이 있습니다.

각국의 스테이블 코인 허용, 규제 여부가 관건
특성만으론 CBDC가 스테이블 코인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작습니다. 같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란 점만 빼면 두 자산의 세부 특징이나 사용처는 다르니까요. 다만 정치적 관점의 리스크를 따져보면 최근 분위기상 스테이블 코인의 입지는 다소 불안한 상황입니다.

현재 미국, 중국, 한국 등 주요 가상자산 시장을 보유한 국가들은 모두 가상자산 시장 및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비트코인을 넘어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신들에 따르면 19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장관은 '대통령 직속 금융시장 실무그룹 회의'에서 수개월 내에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하자고 촉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전세계 주요 스테이블 코인 시가총액이 1100억달러(약 126조원)를 넘어서는 등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자 이에 따른 부작용 발생을 우려한 행보인데요. 스테이블 코인을 보유한 거래소는 자산을 해외로 자유롭게 전송할 수 있고 무분별한 외화 유출이 외환관리 정책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당국이 생각하는 주요 리스크로 꼽힙니다.

그동안 스테이블 코인은 손쉬운 달러화 통로란 점에서 자금 세탁이나 은닉에 악용될 우려가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8일 가상자산 거래소 에이프로빗이 특금법 사업신고를 앞두고 스테이블 코인에 의한 법적 리스크 발생 예방 차원에서 USDT의 거래 지원을 종료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데요. 같은 날 한국은행도 '스테이블 코인 규제 동향과 중앙은행 역할 연구' 용역을 내는 등 국가 차원의 스테이블 코인 관리 움직임이 관측되는 가운데 과연 스테이블 코인은 규제의 칼날에서 피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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