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시대, 시대적 변화 요구에 부응해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국내 대표 모빌리티그룹인 현대차그룹의 전략을 점검합니다.
▲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2016년 창저우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사진=현대차)
▲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이 2016년 창저우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사진=현대차)

현대차의 미래를 말할 때 중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국을 제패하지 못하고서는 글로벌을 제패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대차에겐 '잃어버린 중국'이라는 큰 아픔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이 상처를 치유하느냐 마느냐에 현대차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어 보입니다.

현대차가 겪은 중국 시장에서의 경험은 정말 다이내믹했습니다.

현대차(기아 제외)는 지난 20년 동안 중국 시장에서 9조5503억원의 순이익을 남겼습니다.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 진출한 2002년 9월부터 2020년까지의 당기순이익(손실 포함)을 합산한 수치입니다.

중국은 현대차가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했던 시장입니다. 2014년 중국 시장에서 판매된 현대차는 111만5000대. 유럽과 한국 시장에서 판매된 현대차는 각각 41만7000대, 68만5000대입니다. 단일 시장인 중국 시장의 판매량이 내수 시장과 유럽 시장을 합한 것보다 1만3000대 더 많죠.

중국 시장의 글로벌 파워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대차는 2002년 9월 중국기업 베이징기차와 함께 현지 합작사인 '베이징현대(BHMC)'를 설립했습니다. 6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습니다. EF쏘나타(현지명 밍위)와 아반떼XD(엘란트라)를 출시했죠.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인 2004년 판매순위 5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2009년 3위권에 진입해 2015년까지 줄곧 '톱3'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9월 처음으로 5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현재는 17위까지 밀려났습니다. 폭스바겐과 GM, 닛산 등 해외 브랜드는 여전히 강세이며, 지리자동차와 상하이GM우링 등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도 높습니다.

현대차는 과거 '톱 티어' 업체였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과 한중 관계의 변화 속에 표류하게 됐습니다. 이는 현대차의 사업보고서에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 (자료=금융감독원)

현대차의 중국 합작법인 BHMC(관계기업) 실적이 사업보고서에 반영된 건 2005년부터입니다. 2005년 BHMC 순손실은 22억원이었죠. 공장 설립과 현지화 제품 개발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BHMC는 적자 경영을 했습니다. 그러다 2006년 1211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공장이 정상 가동을 시작했고, '현지 생산·현지 판매' 체계가 갖춰진거죠.

현대차가 중국 시장의 '톱3'에 진입한 2009년 BHMC는 6078억원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2011년 최초로 순이익 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습니다. 2011년 현대차는 중국에서 74만7000대의 차량을 판매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 최초로 판매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순이익은 무려 2조5828억원에 달했죠. 2013년은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황금기'를 보낸 해로 기록됩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 (자료=금융감독원)

하지만 황금기는 4년을 못 갔습니다. 2015년 4월 "한반도에 사드 배치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고, 이듬해 3월 공식화했습니다. 중국의 반한 감정은 확산됐고 한국 제품 불매 운동까지 이어졌습니다.

2016년 현대차는 중국에서 114만2000대의 자동차를 판매했습니다. 20조1287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은 1조1719억원을 기록했죠. 한·중·미 '삼국'간 신경전은 거셌지만, 중국민의 불매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영향이었습니다. 

사드 불매운동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17년 현대차의 중국 시장 판매대수는 78만5000대로 전년에 비해 31.2%(35만7000대) 감소했습니다. 판매대수가 2011년 수준인 70만대로 주저앉은 거죠. 순손실은 159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 (자료=금융감독원)
▲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현대차는 중국시장에서 44만대를 판매했습니다. 2010년 이후 판매량이 가장 적죠. 지난해 매출은 6조8728억원을 기록했으며, 순손실은 1조1520억원에 달했습니다. 사드 사태가 불거진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차의 누적 손실은 6506억원입니다. 사실상 사드 이후 중국 시장에서 적자만 봤던 셈입니다.

현대차는 50%의 중국법인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순이익은 지분에 비례해 지배기업의 실적에 반영됩니다. 사드 사태 이후 BHMC의 지분법 손실은 2360억원입니다. 사드 여파가 민간부문으로 확산된 2017년 이후 실적을 반영할 경우 지분법 손실은 7957억원으로 불어납니다.

중국 시장은 과거 현대차에 있어 '황금알'을 낳던 시장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밑 빠진 독'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를 사드 사태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건 다소 편협한 시각입니다.

중국의 산업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해외 기업 수준으로 높아져 현대차 등 중위권의 자동차 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합작사를 통해 확보한 기술로 성장한 중국 기업들이 중위권 업체들의 자리를 꿰찬거죠.

현대차는 이른바 '가성비' 차량으로 값 싸고 성능 좋은 차량으로 현지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업체들이 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물량 공세를 펼쳤죠.

현대차는 제네시스 등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지만, 고급차 시장은 유럽 브랜드 위주였습니다. 중국 시장은 중위권인 현대차에게 더욱 어려운 시장으로 변모해갔죠.

이는 현대차도 예상 못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합작사를 설립할 때부터 기술 유출은 불가피했죠. 중국은 자국에 진출하는 해외 기업에 대해 '합작사'의 조건으로 진출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50:50의 비율로 지분을 나눠 해외 기업에 경영권이 쏠리는 현상도 제한했습니다. 이 때문에 디스플레이 등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서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높아졌죠.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기술 유출을 감수한거죠.

현대차의 '대중국 전략'은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현대차는 베이징 1공장과 2공장 매각을 진행 중입니다. 3공장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으로 전환해 운영할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현지화 비율을 상당히 축소하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엑싯(Exit)'을 준비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점유율을 볼 때 전기차 시장에서도 판을 뒤집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5%도 채 안 됩니다. SNE리서치의 자료를 보면 중국 시장의 미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음영 표시한 업체는 중국 업체.(자료=SNE리서치)
▲ 음영 표시한 업체는 중국 업체.(자료=SNE리서치)

SNE리서치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전세계 전기차 브랜드 순위'에 따르면 10위권 업체 중 5곳이 중국 업체입니다. 2위는 상하이GM울링으로 올해 상반기 19만1900대를 판매했습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판매량은 1388% 증가했습니다. 3위는 BYD로 같은 기간 동안 9만6300대 팔았고, 판매량은 180% 증가했죠. 5위인 장성기차는 5만2500대 팔았는데, 판매량은 무려 459.5% 늘었습니다.

현재 중국은 '애국 소비' 열풍으로 자국 기업이 만든 차를 사는게 트렌드로 자리잡았습니다. 중국 업체들은 더 싸고 멀리가는 전기차를 만들어, 내수용으로 팔고 있죠. 동시에 테슬라와 폭스바겐의 중국 내 인기는 여전히 높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중국 시장을 탈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현지화 전략을 포기하는 게 전략적으로도 맞고, 이익인 거죠.

여타 국내 기업들도 중국 시장의 '국가주의 장벽'으로 인해 백기투항했습니다. 유통 기업들은 현지 사업을 대부분 철수했고, 삼성은 스마트폰 사업을 대거 축소하고 반도체 등 첨단 제품으로 현지화 전략을 바꿨습니다. 현대차가 베이징 3공장을 남겨두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2025년부터 출시하는 신차를 전기차 또는 수소전기차(FCEV)로 출시할 예정입니다. 현대차는 이미 현지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 만큼 고급화 전략을 택해 수소전기차와 전기차 위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이마저 성공하지 못할 경우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서 완전 철수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시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공을 들인 곳입니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접수한 2000년 이후 중국 시장 진출이 추진됐죠. 2008년 정 명예회장은 "중국 시장은 현대차그룹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시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중국 시장은 여러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정 명예회장은 그때마다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정의선 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지금 현대차는 중국 시장을 어떻게 준비할까요. 중국은 미국 및 유럽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기차 시장 중 하나입니다. 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중국 시장은 과거와 달리 '가성비'가 아닌 고급화로 접근해야 하는 만큼 현지화 전략보다 고급화 전략과 수익성 위주로 전략을 짤 것으로 예상됩니다.

'포스트 정몽구' 체제를 맞은 현대차. 잃어버린 중국 어떻게 되찾느냐에 현대차 미래의 한 축이 달려 있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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