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주목할 만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업계 트렌드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95테라와트시(TWh). 올해 9월까지 비트코인 채굴(생산)에 쓰인 전력량입니다. 체감이 잘 안 된다고요? 그럼 이 전력이 '인구 2억2500만명의 파키스탄 한 해 전력 사용량과 같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비트코인이 아직 화폐나 안전자산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비트코인 생산에는 매년 국가 단위의 전력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또 이를 문제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면서 비트코인 채굴에도 친환경에너지 사용, 전력 절감 등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채굴 경쟁 확대될수록 전력 낭비↑
채굴에는 대체 왜 그리 많은 전력이 필요한 걸까요?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채굴이란 비트코인 생산 과정을 의미합니다. 채굴업자들은 자신의 컴퓨팅 장비로 비트코인 네트워크 유지에 필요한 수학적 검증 문제를 해결하고, 풀이에 먼저 성공한 일부 채굴자들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일정량의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는데요.

문제는 이 보상이 한정돼 있고, 경쟁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자원을 채굴에 투입해야 보상을 얻을 확률도 늘어난다는 거죠. 자연히 채굴 경쟁이 심화될수록 필요 이상의 불필요한 전력이 낭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95Twh는 이미 지난해 채굴에 소비된 에너지 총량을 넘어선 것이기도 합니다.

채굴은 본디 비트코인처럼 운영 주체가 없는 탈중앙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었습니다. 채굴자는 컴퓨팅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가상자산(암호화폐)을 보상으로 얻고, 사용자들은 이들을 통해 신뢰도 높은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으니 꽤 괜찮은 구조였죠. 하지만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정체불명)'조차 지금처럼 채굴 경쟁이 과열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들에 대해선 미처 예상하지 못했나 봅니다.

막대한 탄소 배출에 정전 유발까지…밉보인 비트코인
비트코인 채굴은 총 2100만개의 비트코인이 모두 분배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 시기는 산술적으로 약 2140년경이 될 전망인데, 한마디로 채굴은 100년 뒤에도 여전히 방대한 전력을 소모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이는 비트코인의 생존과 가치 유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 친 비트코인 사업가로 유명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테슬라 차량에 대한 비트코인 결제 옵션을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머스크는 "비트코인 채굴에 화석 연료가 너무 많이 낭비된다"고 지적하며 친환경 채굴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요. 최근 전세계적으로 친환경에너지 사용에 대한 공감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전체 전력 발전량 중 친환경에너지의 비중은 미미합니다. 통계청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친환경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고작 5.62%에 불과했는데요. 즉,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비트코인 채굴 경쟁이 심화될수록 화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 중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에너지도 그만큼 늘어나게 됩니다.

▲ 비트코인 결제 중단을 선언한 일론 머스크(자료=트위터)
▲ 비트코인 결제 중단을 선언한 일론 머스크(자료=트위터)

참고로 케임브리지대학의 비트코인 전기 소모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비트코인 채굴에는 전세계 전기 총생산량의 0.6%가 사용될 전망입니다. 이 역시 미미해 보이지만 전기란 에너지가 셀 수 없이 많은 시설과 장비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일 범주에선 무시하기 어려운 수치죠.

지난 4월 네이처에 실린 미국 코널대학, 영국 서리대학의 공동연구 논문에 따르면 문제가 한층 구체화됩니다. 이 논문은 중국이 자국에 몰린 채굴 업체들을 방치할 경우 2024년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네덜란드나, 스페인, 체코 등 국가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웃돌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이는 전세계적인 친환경 트렌드와 대치될뿐더러 시진핑 전부의 탄소중립 계획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로 귀결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게다가 채굴업체가 밀집한 곳에서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지난 7월 중국 정부가 스촨성, 네이멍구 자치구 등 4곳에서 채굴을 전면 금지한 이유도 해당 지역의 채굴 업체들로 인해 심각한 전력난이 야기된 까닭입니다. 채굴 업체들도 전력 사용비용이 곧 채산성과 맞물리다보니 전기료가 싼 중국 혹은 기타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정부 입장에선 채굴업체들이 내는 세금보다 그들이 낭비하는 자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훨씬 많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규제하지 않을 수 없죠. 결국 중국 내 비트코인 거래와 채굴이 전면 금지되면서 중국 채굴업자들은 현재 대부분 미국이나 제3의 국가로 이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친환경 전환 움직임 확대 긍정적…채굴 중심 시스템도 변화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우는 채굴기업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비트코인 391개를 채굴한 비트팜스는 99% 청정에너지를 사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5일 비트코인 채굴기 1만대를 새로 도입하기로 한 그리지니 제너레이션도 해당 장비들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탄소 중립 채굴장에 배치한다고 강조했고요.

또 아예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한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는 국유지 화산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 비트코인 채굴 인프라 연구를 지시한 바 있는데요. 효율은 아직 미지수지만 이처럼 주요 채굴 이해관계자들이 친환경 채굴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막대한 화석연료를 낭비했던 채굴업의 트렌드가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물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면 탄소 배출량만 줄어들 뿐 생산된 에너지가 낭비되는 부작용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장기적으로는 채굴 중심인 지금의 비트코인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는데요. 가상자산 분배 알고리즘 변경을 통해 채굴기의 필요성을 지우고 있는 또 다른 가상자산, 이더리움의 시도가 좋은 예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탈중앙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수많은 참여자의 이해관계, 동의, 개발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와 실제 변화까지는 앞으로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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