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현대차)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사진=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과 유럽과 함께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전기차 시장이다. 현지 생산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만큼 전기차 시대를 맞아 '역내 생산' 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22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회장은 "전기차는 앞으로 2040년까지 계속 포션(비중)이 올라갈 것"이라며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은 "내년부터는 아니고 계획 중에 있는데 시기는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미국 내 전기차 직접 생산 계획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미국 시장에 74억 달러(한화 8조7875억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은 현대차와 기아의 현지 생산을 추진하는데 쏟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현재 현대차 미국법인(HMA)과 기아 미국법인(KUS)에는 별도 전기차 생산라인 및 전용 플랫폼(E-GMP)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출시될 전기차 모델을 현지에서 생산하려면 내연기관 설비를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교체해야 한다.

정 회장이 미국의 생산공장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밝힌 만큼 투자도 계획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관건은 현대차 노조의 반발이다.

노조는 현대차의 해외 투자에 대해 여러차례 성명을 통해 반대했다. 지난 5월 미국 내 8조원 규모의 투자를 두고서도 "5만명의 조합원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당시 노조는 성명을 통해 "지금은 해외공장을 확대하기 보다 품질력을 기반으로 한 국내 공장에 투자해야 할 때"라며 "회사가 일방적으로 해외 투자를 강행한다면 노사 공존공생은 요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노조는 "경고를 무시하다가는 2025 전략은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사진=현대차지부)
▲ (사진=현대차지부)

현대차의 2025 전략은 전기차 차종을 최소 12종까지 늘리고, 연 56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는 내용이다. 전동화 중심 미래형 모빌리티로 전환하기 위해 100조원을 투자한다는 내용도 전략에 담겼다.

노조가 반대하는 명분은 단체협약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5장 42조 3항)에는 "해외 공장 설립 또는 이전시 노조의 심의 및 의결이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해외가 아닌 국내 공장에 투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로 생산라인이 바뀔 경우 부품 감소 및 공정 단순화로 인해 30% 가량의 유휴인력이 발생한다. 현대차 노조는 고령화와 전동화 전환에 따른 조합원 고용 유지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2025년까지 생산직 1만2937(18%)의 정년이 도래하고, 2030년까지 약 40% 가량이 정년을 맞는다.

국내 공장의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는 한 노사관계의 중심은 사측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된다. E-GMP 방식의 생산라인은 컨베이어벨트와 달리 연속공정체계로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파업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공장 투자는 국내 공장의 고용을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가 해외 투자를 예민하게 보는 이유다. 노조는 최대한 국내 공장의 일자리를 유지하는게 목표인 반면 현대차는 전동화 시대를 대비해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길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 및 기아의 전기차 해외 생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현재 현대차는 △미국 △멕시코 △브라질 △터키 △체코 △인도 △중국에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기아는 미국과 슬로바키아, 중국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 현대차 미국 공장.(사진=현대차)
▲ 현대차 미국 공장.(사진=현대차)

그런데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자국 상품구입 촉진 정책)에 따라 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우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의회는 노조가 있는 공장에서 만든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현대차 등 다수의 글로벌 메이커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반대로 무노조 경영을 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워낙 강화된 상황에서 국내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해외로 탁송하는 체계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전기차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로 제작되는 만큼 과거와 같이 국내 공장에서 실어나르는 방식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단계적으로 전동화 체계에서는 해외 공장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이 과정에서 노사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정의선 회장은 이날 리튬이온배터리의 내재화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회장은 "배터리셀 연구는 가능하지만 생산은 배터리 업체가 맡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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