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회장.(사진=현대차)
▲ 정의선 회장.(사진=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전기차 배터리의 수직계열화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난해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면서 현대차의 수직계열화 가능성도 점쳐졌다.

오너인 정 회장이 배터리는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적어도 리튬이온배터리의 수직계열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회장은 22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 회장은 "업체들과 배터리 셀 연구를 할 수 있겠지만, 생산은 배터리 업체에서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이날 발언은 배터리의 수직계열화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의미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배터리 사업 진출 가능성을 반신반의했다.

현대차는 2018년 현대크래들을 통해 미국의 전고체 배터리 업체 솔리드파워에 투자했다. 투자금은 2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에는 남양연구소 내 배터리 연구개발 조직을 확대 강화했다. 선행기술·생산기술·배터리기술 3개 부문으로 확대해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기술과 함께 리튬이온배터리의 밀도 등을 고도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기로 했다.

▲ 현대차가 최근 LA 모터쇼에서 내놓은 전기차 콘셉트카 '세븐'.(사진=현대차)
▲ 현대차가 최근 LA 모터쇼에서 내놓은 전기차 콘셉트카 '세븐'.(사진=현대차)

이와 함께 서울대에 배터리 공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센터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배터리 관리시스템(BMS) △전고체 배터리 △리튬메탈 배터리 △배터리 공정기술 등 4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점을 이유로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목표로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 정 회장의 발언으로 짐작컨데 현대차는 적어도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수직계열화를 추진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선택과 집중' 때문이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의 직접 생산을 공식화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겸 북미 권역 본부장(사장)은 "차량용 반도체를 그룹에서 자체 개발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가 생산할 반도체는 현재 공급부족인 MCU(마이크로컨트롤러)칩이 아닌 전기차용 전력 반도체와 자율주행차용 통합칩(SoC) 등 고성능 제품이다.

현재 공급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수직계열화에 나서는 것이 아닌 전동화 및 자율주행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다.

호세 무뇨스 사장은 "많은 투자와 시간이 걸리지만, 이것이 우리가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수직계열화에 시간과 자본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서 배터리까지 수직계열화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했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배터리 1GWh의 생산라인을 건설할 경우 전기차 1만5000대에 납품할 수 있다. 투자비는 1GWh당 900억원이 들어간다.

현대차그룹의 '2025 전략'에 따르면 현대차는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연간 10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 경우 산술적으로 66GWh의 생산공장이 필요하다. 투자금은 약 6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차가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를 전량 직접 공급하겠다고 가정했을 경우다.

더욱 큰 문제는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공급사슬 관리'다. 고성능 전기차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배터리 원료는 니켈과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이다. 최근 전기차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배터리 성능을 높이기 위한 니켈의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니켈의 공급부족을 야기시켜, 가격 변동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톤당 1만5975 달러에 거래되던 니켈은 지난 22일 톤당 2만270 달러에 거래됐다.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은 매해 성장하고 있어 니켈과 리튬, 코발트 등 일부 원료를 자동차 제조사가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전지업체들은 중국과 호주 등에 지분 투자를 통해 거래선을 확보하고 있지만, 제조사 메이커들은 SCM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평이다.

끝으로 전기차 제조사는 배터리 가격을 갈수록 인하할 계획이다. 지난해 토마스 슈말 폭스바겐 기술부문 이사는 자사의 파워데이(Power Day) 행사에서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배터리 시스템 비용을 kWh당 평균 100유로 이하로 낮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회사의 목표는 전지가격을 kWh당 100 달러로 낮춰 정부 보조금없이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하는 것이다.

배터리는 이미 가격경쟁 시대에 접어들었고, 마진도 갈수록 낮아질 전망이다. 제조사는 전지업체에 배터리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으며, 시장에는 대체재들이 넘치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 회사는 이미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한 상황이다. 필요하면 '헤드헌팅'을 통해 인력을 데려올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대차가 배터리를 직접 생산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크지 않다.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의 배터리 내재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웃소싱'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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