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V6.(사진=기아)
▲ EV6.(사진=기아)

'전동화 전환'을 추진 중인 현대차그룹의 완성차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완전월급제' 도입을 조합원에게 약속했다. 완전월급제는 연장근로(OT)를 근로 유무와 관계없는 고정 연장근로(고정 OT)로 바꿔 기본급처럼 만드는 것이다. 임금체계를 완전 월급제로 바꾸는게 골자인데, 회사는 고정 OT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다.

만약 회사가 월급제 전환을 수용한다고 해도 '시간당 생산대수(UDH)'를 높이라고 노조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노동강도 상승은 불가피하다. 10여년 넘게 '완전 월급제'가 임단협에서 도입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조합원 중 절반 가량은 노동강도 상승으로 인해 월급제 전환을 꺼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기아의 임원선거 결과 홍진성 후보조가 당선됐다. 전체 조합원 2만8695명 중 2만6283명(투표율 91.6%)이 결선 투표에 참여했다. 홍진성 후보조는 52.8%(1만3874표)를 득표해 44.8%(1만1770표)를 획득한 윤민희 후보조를 제쳤다. 홍 후보조는 8.0% 포인트(2104표) 격차로 앞섰다. 홍 후보조는 내년 1월1일부터 2년 동안 기아 노조를 이끌게 됐다.

▲ 홍진성 후보.(사진=민주노총)
▲ 홍진성 후보.(사진=민주노총)

기아 노조의 임원선거는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치뤄졌다. 당선인인 홍진성 후보는 완전 월급제를, 윤민희 후보는 '7+7 근무제'를 공약했다. 현재 기아는 8시간씩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운영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1시간씩 단축하는게 골자다.

투표 결과 조합원들은 '노동시간 단축'보다 '안정적인 임금'을 택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를 통해 실 노동시간이 줄어든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보다 월급제를 통해 임금을 안정적으로 받는게 필요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현대차그룹의 핵심인 현대차 노조에서도 동일하다. 최근 완전 월급제를 공약한 강성 성향의 안현호 후보조가 당선돼 2년 동안 노조를 이끌게 됐다. 안 후보조는 월 30시간의 연장근로를 고정 연장근로로 바꾸고, 식사시간 1시간을 유급 휴게시간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국내 최대 제조업 노조인 현대차와 기아의 노조가 월급제를 골자로 한 임금체계 개편을 내세운 것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 차량의 단계적 퇴출로 인해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전동화(electrification)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하이브리드 차량과 같이 에너지원을 전기 모터로 대체하거나 보조하는걸 의미한다.

이전까지 자동차 회사들은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유지했다. 이러한 생산방식은 신차 개발에 수천억원을 투입해 인기 차종을 출시한 후 대량 생산하는 게 유리하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소수의 인기차종을 통해 많은 수익을 내왔고, 비인기차종의 적자를 보전해 왔다. 생산량을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노조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완성차 업종이 여타 제조업에 비해 노조가 힘이 센 이유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팰리세이드와 같이 특정 모델이 이른바 '대박'이 날 경우 생산량을 늘려 차량 인도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그런데 노조가 생산량 조절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회사와 고객이 피해를 입는다.

전동화 시대는 이러한 흐름이 확 달라진다. 자동차는 전용 플랫폼을 통해 생산되는데, 배터리 등을 차급에 따라 바꿔가며 생산할 수 있다.

생산라인별 노동시간은 조립 및 의장 라인보다 엔진과 변속기 등 파워 트레인 생산라인이 노동시간이 길다. 전기차는 엔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만큼 노동시간과 강도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점도 노동시간 단축에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와 기아의 노동자들은 전동화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특근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 노사는 2013년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노사 합의로 도입하면서 특근이 크게 줄었다. 주간 연속 2교대제란 주간에만 2교대를 한다는 의미다. 24시 이후에는 근무를 하지 않아 심야노동에서도 자유롭다.

과거 주야 2교대제에서는 주간조와 야간조가 각각 8시간의 근무를 한 뒤 2시간씩 연장근로를 했다. 그래서 '10+10 시스템'이라고 불렸다. 주야 2교대에서 주간조는 근무일 9시간 50분(주당 47.3시간)을 근무했고, 야간조는 10시간(주당 50시간)을 근무했다. 주야 2교대제에서 현대차 생산직의 노동시간은 약 2200시간에 달했다.

주간 연속 2교대제에서 1조는 8시간(주당 40시간), 2조는 9시간 10분(주당 45.8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 연속 2교대제의 연간 노동시간은 약 1980시간으로 주야 2교대제보다 200시간 적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의 생산직 노동자는 이른바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 노동계에서는 '주간 2교대제' 도입 이후 '완전 월급제'를 과제로 내세웠다. 현행 임금체계에서는 장시간 근로로 유인할 가능성이 있어 월급제로 개편해 안정적인 임금과 휴식 '두마리 토끼'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 완성차 노조는 장시간 근로가 아닌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월급제 전환을 꺼내 들었다. 전동화 전환 등을 이유로 생산 물량 축소가 불가피해 임금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신임 집행부가 완전 월급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다.

그렇다면 현대차와 기아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까.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은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주효했다. 법이 정한 것보다 더 오래 일하고 있어 임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했다.

완전 월급제는 어떨까. 법이 정한 것보다 적게 일하고, 생산 물량을 보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감독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노조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거나 임단협 때 파업 등 단체행동을 통해 월급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 향상은 조합원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현대차 노조가 조합원 2000여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고정월급제가 보장된다면 노동강도가 향상되는 걸 수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56.9%는 "수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34.0%는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의 노동강도를 묻는 질문에는 58.8%가 "힘들다"고 답했다. "적정하다"는 의견은 34.4%에 그쳤다. 결국 노조는 이른바 "힘의 논리"로 임금체계 개편을 이뤄내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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